끝나지 않은 키코 사태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키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br>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키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키코 사태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보상의 길’이 열렸다.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은행에 배상 권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2008년 사건 발생 이후 12년 만이었다. 하지만 피해기업들은 또 한번 좌절해야 했다. 권고안 수용 여부를 저울질하던 은행들이 배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키코 피해기업에 남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을 만나 대응 전략을 물었다.

✚ 2018년 금융감독원의 키코 재조사 착수 이후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은행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은행의 조정안 수용 거부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은행협의체와 자율조정을 다툴 2라운드를 잘 준비하겠다.”

✚ 은행의 배상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두가지인 것 같다. 키코 공대위와 시민단체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피해기업들이 목소리를 내 은행을 압박하는 게 부족했다. 가장 큰 패착은 은행을 또다시 믿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은행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 피해기업의 실망감이 클 것 같다.
“그렇다. 사실 피해기업은 50% 이상의 배상을 바랐다. 2013년 대법원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1심에선 피해금액의 70%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배상금액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높았다는 얘기다.”

✚ 하지만 금감원 분조위의 권고안 평균은 20%에 불과했다.
“피해기업이 분조위 결과를 받아들인 것은 금감원의 피해 보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은행이 거부해 배상금으로 재기를 노리던 기업들의 계획이 더 늦춰지게 됐다.”

✚ 우리은행은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우리은행은 42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은행들이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공대위는 은행 항의 방문, 집회 등을 통해 계속해서 문제 제기에 나설 예정이다.”

✚ 어떻게 문제제기를 할 건가.
“은행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대법원이 문제없다고 판결한 상황에서 키코 피해기업에 보상을 하면 배임이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은행을 배임혐의로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은행연합회 등 관련 기구를 방문해 우리은행을 처벌하든지 다 같이 보상하든지 일관된 입장을 정리해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 금감원에 키코 상품의 수학적 증명을 요청했다. 어떤 이유에선가.
“금감원은 불완전 판매의 책임만 물었다. 이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된 근거로 이뤄졌다는 걸 밝혀야 한다. 그 시작이 키코 상품의 문제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대법원은 은행의 마진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키코를 불공정 계약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적용한 마진율 산정방법은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수학적 증명을 통해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걸 주장할 것이다.”


약간 복잡한 내용을 풀어보자. 2013년 7월 대법원은 키코 상품을 불공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키코 상품 판매로 거둬들인 은행의 수익이 많지 않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쉽게 말해, 마진율이 낮으니 사기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 수학정 증명을 통해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걸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판결 자체를 뒤집을 순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우리는 키코 사태와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오류가 있다는 걸 꼭 밝혀야 한다. 그래야 ‘대법원이 결론 내린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다’는 반대 여론에 맞설 수 있다. 키코 특별법 제정에 힘을 싣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과정이다.”

✚ 키코 특별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있나.
“키코 사태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이 금융분야 3대 적폐로 선정하면서 다시 공론화됐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지금이 적기다. 최근 파생상품과 관련한 문제점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 이제 은행협의체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여기엔 금감원이 참여하지 않는다. 피해기업에 불리한 게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송을 거치고 은행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도 영리해졌다. 시민단체와 법조인 등 많은 우군도 확보했다. 혼자 싸우던 과거와는 다르다.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 은행을 설득할 카드가 있나.
“배상이 어렵다면 공동기금을 만들어 피해기업을 구제하는 방안을 요청할 생각이다. 밝히긴 어렵지만 물밑 협상용 카드도 하나 있다.”

✚ 금융당국의 권고까지 거부한 은행과의 싸움이다.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완전히 꺼졌던 키코 사태의 불씨가 되살아나지 않았나. 은행이 합리적인 판단을 거부한다면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맞받아치면 된다.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시위 열어 은행을 괴롭게 만들 것이다.”


✚ 배상을 받으면 키코 사태는 마무리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2018년 검찰에 키코 사태 재수사를 요청했다. 재수사를 통해 반드시 책임자를 법정에 세울 것이다. 그래야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일이 없어진다.”

✚ 은행으로부터 배상을 받아도 정작 피해기업이 받는 돈은 적다는 지적도 있다.
“키코 사태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의 경영권이 유암코와 같은 자산관리 업체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은행에서 배상을 받았지만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이 필요하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마 금융 피해자의 첫번째 목표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일 것이다. 소송과정에서의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필요하다.”
 

주요 은행이 배임 논란을 이유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키코 배상 권고안 수용을 거부했다. [사진=뉴시스]
주요 은행이 배임 논란을 이유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키코 배상 권고안 수용을 거부했다. [사진=뉴시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현재는 금융 피해자가 관련 소송에서 승소해도 피해액의 20~30%를 돌려받기 힘들다. 10억원의 손해를 봐도 건질 수 있는 돈이 2억~3억원에 불과하다는 거다. 당연히 변호사에게 줄 수 있는 수임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수익이 적으니 변호사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소송기간이 길어지면 피해자보다 변호사가 먼저 사건을 포기하는 이유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렇다. 5배의 징벌적 배상이 이뤄지면 10억원의 피해를 본 피해자의 배상금은 50억원이 된다. 여기서 20%를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로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1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유능한 변호사와 대형 로펌이 기업이 아닌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키코 사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을 겪으면서 많은 금융 피해자가 금융회사의 탐욕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걸 목격했다. 금융피해 구제재단을 만들어 금융 피해자의 제기를 돕고 싶다. 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금융논리만 앞세워 기업을 지원하지만 제대로 살아난 기업은 손에 꼽힌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기업의 회생을 돕고 싶다는 게 최종 목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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