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잃은 대북 리스크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2거래일, 2013년 3차 핵실험 1거래일, 2017년 6차 핵실험 4거래일. 대북 리스크가 터졌을 때 하락했던 코스피지수가 반등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이다. 그렇다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까지 이어진 이번 대북 리스크는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결과는 뜻밖이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17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에도 상승세로 장을 마감했는데, 그 뒤엔 개미가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된 그날의 증시를 분석해 봤다.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사진=연합뉴스] 

“머지않아 쓸모없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비난 담화에서 밝힌 경고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6월 16일 오후 2시 49분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것으로 말을 실행에 옮겼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대표적 상징물은 그렇게 잿더미가 됐다.

남북관계가 빠르게 악화한 건 6월부터다.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은 북한이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북한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17일엔 9·19 군사합의(2018년)로 무장을 해제한 지역을 다시 요새화하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정부는 대북 리스크의 파급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청와대는 지난 14일과 16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그렇다면 대북 리스크가 시장에 미친 영향은 어땠을까. 대북 리스크의 파급력을 가장 빠르게 살필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증시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대북 리스크가 미칠 영향과 시장의 반응을 전망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대북 리스크에 반응하는 주식시장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자.

■평균 하락률 0.68% = 대북 리스크 가운데 주식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2011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12월 27일)이었다. 그날 코스피지수는 1776. 93포인트를 기록하며 전일(1839.96포인트) 대비 3.4% 하락했다. 2010년 이후 발생한 주요 대북 리스크 9건(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2013년 제3차 핵실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2016년 제4~5차 핵실험·2017년 북미 갈등, 제6차 핵실험)의 코스피지수 평균 하락률(0.68%)보다 2.72%포인트나 높았다.

■평균 2.5일이면 잠잠 = 대북 리스크가 코스피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평균 2.5일로 나타났다.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하락했던 코스피지수는 2거래일 후인 3월 30일 반등에 성공했다. 그해 11월에 터진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의 영향 역시 2거래일 만에 끝이 났다.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 9월 제5차 핵실험에 나섰을 때도 코스피지수는 2거래일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9건의 사건 중 2거래일을 벗어난 경우는 4건이었다. 제3차 핵실험은 이튿날 상승세로 돌아섰다. 장성택 숙청 사건과 제6차 핵실험 이후 코스피지수가 반등하는 데는 각각 3거래일과 4거래일이 걸렸다.

■길어야 4거래일 = 대북 리스크가 연이어 발생했을 때도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은 길게 가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미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던 2017년이다. 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병든 강아지’ ‘로켓맨’ ‘노망난 늙다리’라고 부르며 말 폭탄을 주고받았다.

8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발언에 김 국무위원장이 “미국 괌 기지 포위 사격”으로 응수하면서 ‘한반도 위기설’까지 제기됐다. 두 사람의 말 폭탄에 8월 9일 1.09% 하락했던 코스피지수는 고작 3거래일 뒤인 14일 반등했다. 그해 9월 3일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단행했을 때 하락했던 코스피가 상승세로 돌아서는 데 걸린 시간도 4거래일(9월 7일)에 불과했다.

■2020년 대북 리스크 글쎄 =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대북전단 살포→김여정 발언→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진 이번 대북 리스크는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북한의 추가 행동에 따라 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은 있지만 이번 대북 리스크가 코스피지수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17일 코스피지수(2141.05포인트)는 전일 대비 소폭 상승(0.14%·3포인트)했다. 대북 리스크 발생 직후 코스피지수가 평균 0.68% 하락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조적인 행보였다. 이날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끈 건 개인투자자였다. 외국인과 기관투자자가 각각 530억678만원, 1136억6786만원 순매도했지만 개인투자자가 1525억3631만원의 매수세를 기록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개인투자자가 느끼는 대북 리스크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북한이 원하는 게 전쟁이 아닌 경제적 이득이나 체제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개인투자자들이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대북 리스크에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건데, 전문가들도 이번 대북 리스크의 원인이 체제 강화와 남한 정부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있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사건의 발단은 대북전단 살포에 있다”며 “전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모독하는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훼손하는 문제만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밝혀왔다”면서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위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학습효과가 쌓인 만큼 대북 리스크의 영향은 크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북한발 이슈는 일회성 사건에 그친 경우가 많다”며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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