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임대료 도입된다면…

이번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가가 산정하는 ‘표준임대료’가 만들어질 수 있다.[사진=뉴시스]
이번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가가 산정하는 ‘표준임대료’가 만들어질 수 있다.[사진=뉴시스]

계약기간이 끝나면 임대료가 오르는 것이 마치 법처럼 여겨진다. 물가가 상승했으니 임대료도 오르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임대료 상승폭이 물가상승폭에 발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사는 집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을 한 것도 아닌데 임대료가 이유 없이 오른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발의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는 임대료 기준이 될 수 있는 ‘표준임대료’가 등장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표준임대료의 경제학을 풀어봤다. 

집을 살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실거래가다. ‘시세’나 ‘호가’도 있지만 실제로 거래된 가격은 대부분 주택 구매의 기준이 된다. ‘진짜 가격’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을 국가가 발표하는 만큼 주택을 구매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여러 가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월세다. 집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는 많지 않다. 주택 매매는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지만 전월세는 다르다. 주민센터 등에 신고되는 확정일자 데이터를 기준으로 전월세 정보가 축적되고 있지만 실거래가와 비교하면 빈약하다. 일부 부동산 모바일 플랫폼은 원룸 등의 임대료 호가를 정리해 매달 평균치를 발표하지만 가격을 흥정할 때 큰 영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공식적인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차 시장에서 쓸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지난 9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전월세 무한 갱신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임차인이 3기 이상 임대료를 내지 않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집주인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고 임대료 인상 역시 연 5%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참고 : ‘기’는 임대료 내는 기준일이다. 일반적으로는 3개월을 뜻한다.] 

그러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핵심은 전월세 갱신 보장에만 있지 않다. 주거 안정을 위한 ‘표준임대료’ 지정이 제안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에 도입할 ‘표준임대료’는 주택임대차 시장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여기에 주택 위치ㆍ종류ㆍ면적ㆍ상태 등까지 반영해 1년 주기로 고시된다. 호가 외에 실질적으로 가격 기준이 없었던 임대차 시장에 공식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간 국내에는 임차인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임대료 기준이 없었다. 한국감정원에서 매달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나 분기별로 발표되는 오피스텔 가격동향조사 등이 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실생활에 접목해 쓰이기보다는 주택시장의 흐름을 읽는 부차적인 지표처럼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임대료 통계

역세권 여부나 주택 인근 인프라가 큰 영향을 미치는 임대료 시장에서는 세밀한 범위 설정이 필요하지만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해온 자료들은 대부분 광역자치단체를 기준으로 하거나 세분화한다 해도 지자체 내 권역별로 다뤄졌다. 실제 임차인이 사용하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임대료는 ‘집주인’의 마음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집값이 오를 때 임대료를 함께 올리는 건 기본. 해당 주택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인근 시장 가격이 변할 때 올리는 일도 숱하다. 심지어 물가상승률을 초과하는 임대료 인상도 흔한 일이다. 당연히 모든 부담은 임차인에게 쏠린다. 임대인이 집을 고치거나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주지 않는데도 국내의 임차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집 자체의 상태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준임대료’가 자리를 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임차인은 임대료 상승폭을 예상할 수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까지 인정된다면 과도한 임대료 인상에 거절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임대료를 높일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해지면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때 근거 제시가 가능해진다.

물론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들도 있다. ‘표준임대료’를 산정하는 주택임대료산정위원회의 구성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산정위원회는 총 30명까지 위원을 둘 수 있고 위원장은 시도지사가 맡는다. 
자격, 임기, 운영 사항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위원 대다수가 해당 시도 내에서 투기 목적의 부동산 매입이나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면 표준임대료 산정의 의미가 흐려질 수도 있다.

표준임대료 안착, 장기전 될 수 있어

강제성이 크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표준임대료는 말 그대로 ‘표준’일 뿐이지 모든 임대 거래에 적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집주인과 임차인 간 문제가 발생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간다면 표준임대료가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처음으로 임대차 계약을 하면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에선 집주인이 임대료를 인상하려면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에선 집주인이 임대료를 인상하려면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동 단위까지 세분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구 단위까지 표준임대료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임대료 산정을 위해 정부 기관이 협력해 방대한 수준의 데이터를 축적해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국내 부동산 시장은 정보가 투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항상 단점으로 지적됐다. ‘표준임대료’가 시행된다면 많은 양의 임대료 데이터가 실제 기준이 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1970년대 ‘표준임대료’ 개념을 처음 도입한 독일도 제도가 정착하는 데까지 20년이 걸렸다. 20년 뒤를 바라보고 계획을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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