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규제품목 일본 의존도 낮아졌나

포토레지스트ㆍ고순도 불화수소ㆍ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지난해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을 규제한 3대 품목이다. 일본이 이 품목들을 규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쓰이는 필수소재인 데다, 일본 의존도가 유독 높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소재ㆍ부품ㆍ장비의 자립화가 국내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계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그로부터 1년, 3대 규제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낮아졌을까.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불화수소를 제외하곤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사진=연합뉴스]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불화수소를 제외하곤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국내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계를 뜨겁게 달군 건 ‘자립화’ 이슈였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의 자급력을 높이자는 게 핵심이었다. 발단은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겨냥해 수출규제 정책을 꺼내든 것이었다.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7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분야 핵심 소재로 꼽히는 포토레지스트ㆍ고순도 불화수소ㆍ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당장 수출이 중단된 건 아니지만 허가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참고 :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쓰인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일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대일對日 수입 비중은 각각 93.2%, 41.9%, 84.5%에 달했다. 이는 큰 리스크였다. 일본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하면 당장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업계에선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해도 추후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면 일본이 수출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규제 품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반도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소부장을 공급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건데, 탈일본화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계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1년, 우리는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을까. 더스쿠프(The SCOOP)는 중간 점검을 위해 포토레지스트ㆍ고순도 불화수소ㆍ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대 품목의 대일 수입 비중 변화를 살펴봤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고순도 불화수소다. 이는 반도체 제조공정 중 에칭공정(반도체 회로 패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공정)과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쓰이는데 일본이 가장 마지막까지 수출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품목이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자립화 의지가 높았다. 

성과도 있었다. 불화수소는 액체형과 기체형으로 나뉘는데, 액체형은 국내 업체인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가 공장을 증설해 생산량을 늘렸다. 기체형은 미국산으로 일부 대체했다. 그 결과, 2018년 7월~2019년 5월 6256만 달러였던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일 수입액은 2019년 7월(일본 규제 시작)~2020년 5월 664만 달러로 89.4% 줄었다. 

같은 기간 대일 수입액 비중도 42.4%에서 9.5%로 대폭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7일 좋은 소식도 전해졌다. SK머티리얼즈가 국내 최초로 기체형 불화수소의 양산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실제 반도체 제조공정에 투입하려면 별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일본 의존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 나머지 두 규제품목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상황은 어떨까. 아쉽게도 자립화 속도가 더디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데 쓰는 감광액을 말하는데, 2018년 대일 수입 비중이 93.2%에 달했을 정도로 일본 의존도가 높았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인 10~11월 70%대까지 떨어지면서 일본 의존도가 낮아지는 듯 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80%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기간(2019년 7월~2020년 5월)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포토레지스트의 대일 수출 비중은 86.7%로 전년 동기 대비 6.1%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이는 수입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다. 순수하게 수입중량만 따져보면 규제 전보다 되레 0.7%포인트(93.1%→93.8%) 늘어났다. 전체 포토레지스트 수입량 중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보다 높아졌다는 얘기다. 

반면 OLED 패널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갈수록 일본 의존도가 높아졌다. 2018년 84.5%였던 대일 수입 비중은 2019년 93.0%, 2020년(5월 누적) 93.9%로 커졌다. 수출규제 이후 기간을 봐도 수입 비중은 92.9%로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포토레지스트와 반대로 수입중량만 따졌을 때는 86.5%에서 85.3%로 대일 수입 비중이 다소 줄었다. 

그럼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자립화에 진척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에 따르면 포토레지스트는 유럽산 제품으로 수입 다변화를 꾀했고, 글로벌 기업 듀폰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에서 자체 생산기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1~5월 벨기에산 포토레지스트의 수입액이 전년 동기 대비 1696.2% 증가하긴 했지만 전체 대비 비중은 아직 5.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듀폰의 생산시설 역시 일러야 2021년에 준공될 예정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생산기술은 갖췄다지만 수요기업에서 검증을 거치고 실제 생산공정에 투입하는 게 언제가 될 진 아직 알 수 없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자립화도 아직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일본 의존도를 완전히 떨쳐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불화수소의 경우 순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면서 일본 의존도를 낮추긴 했지만 초고순도는 대체가 쉽지 않다. 지금은 일본에서 수출 승인을 해주고 있지만 당장 규제가 강화되면 또다시 위기론이 대두될 수 있다.” 일본 수출규제 1년, 개선된 부분도 분명 있지만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타격은 없었지만 위기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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