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푸드 시장의 빛과 그림자

국내 식품업체 중 펫푸드 시장에 뛰어든 곳이 숱하다. 이들이 시장에 발을 담근 건 관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봤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도 업체에는 호재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시름시름 앓고 있는 펫푸드 업체들이 적지 않다. 시장에서 발을 뺀 곳도 있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대기업마저 꼬리를 내린 그곳의 비밀을 취재했다. 

국내 펫푸드 시장 전망엔 거품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펫푸드 시장 전망엔 거품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펫푸드가 ‘뜨는 마켓’으로 이목을 끈 건 오래전 일이다. 반려동물 보유가구가 전체의 30%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수익원이 절실했던 하림펫푸드(더리얼), KGC인삼공사(지니펫), 동원F&B(뉴트리플랜) 등 식품업체들이 펫푸드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식품업체가 펫푸드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간단하다. 

겉으로 보기엔 시장 규모가 작지 않다(1조7400억원·농촌진흥청 2020년 기준). 펫푸드 원료를 조달하고 공정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언급했듯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도 증가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려동물에게 사료를 주기 전에 직접 먹어보는 등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품질 좋은 펫푸드를 향한 니즈가 높아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근 펫푸드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는 곳은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하림펫푸드)이다. 2017년 ‘더리얼’이란 브랜드로 시장에 뛰어든 하림은 각종 유통채널에 입점하고 마케팅을 펼치는 등 펫푸드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덕분인지 매출은 2017년 2억원에서 지난해 103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동원F&B는 2018년 애묘시장을 타깃으로 뉴트리플랜을 론칭했다. 대표 제품은 고양이 습식 사료(캔)인데, 주재료는 당연히 참치다. 동원F&B는 최근 펫 전문몰 ‘츄츄닷컴’을 열고 펫팸족을 잡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펫푸드 시장은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숱한 업체들이 뛰어든 만큼 ‘장밋빛 미래’가 담보돼 있는 걸까. 업계 관계자들의 답은 뜻밖이다. “장밋빛 전망을 그리기엔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고 꼬집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국내 펫푸드 시장에 진출한 업체 중 눈에 띌 만한 성과를 거둔 곳은 거의 없다. 하림펫푸드는 매출이 크게 늘긴 했지만 영업손실도 켜켜이 쌓였다(2018년 -74억원, 2019년 -73억원). 동원F&B는 지난해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는데, 이는 진출 당시 목표치보다 100억원이나 밑도는 수치다. 원료에 홍삼을 포함한 프리미엄 펫푸드를 내세운 KGC인삼공사의 지난해 매출 역시 32억원대에 머물렀다. KGC인삼공사의 전체 매출이 1조4037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여기까진 약과다. 사업을 아예 접은 곳도 있다. 빙그레는 2018년 펫밀크 브랜드 ‘에버그로’로 시장에 진출했지만 1년 반 만에 OEM 업체에 넘기고 발을 뺐다.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자 빠르게 ‘철수’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빙그레 관계자는 “반려동물 간식업계엔 크고 작은 브랜드가 많고 브랜드별 마니아층이 확고하다”며 “주식(사료)에 비해 시장 규모 자체도 작아 큰 수익을 얻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며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국내시장에서 7년간 펫푸드 사업을 전개했던 CJ제일제당(브랜드명 오네이처)도 지난해 철수했다. 매출이 100억원대에 그치는 등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베트남 등에서 B2B 사료사업은 유지하고 있지만 펫푸드 사업은 정리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했다”며 “사료제조시설의 일부를 썼기 때문에 시설 투자로 인한 손해는 크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선 궁금한 게 있다. 시장 규모는 2조원에 육박하고, 반려인은 늘어나는데, 국내 펫푸드 업체는 왜 고전을 면치 못한 걸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다. 무엇보다 시장 규모가 과대포장됐다. 1조700억원이라는 국내 사료시장엔 가축사료와 반려동물사료가 혼재돼 있는데, 가축용 사료를 제외하면 규모가 확 줄어든다. 국내 펫푸드 브랜드 중 1·2위 동원F&B와 하림의 매출이 각각 200억원, 100억원대란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시장 환경도 만만치 않다. 외국 브랜드의 바잉(Buying) 파워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더구나 외국 업체들은 국내 펫푸드 업체들이 난립하자 더욱 활발하게 영업망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펫푸드 전문 업체 로얄캐닌이 2018년 김제에 잠실야구장 7배 규모의 공장을 지은 게 그 예다. 업계 관계자는 “비공식적인 판매채널까지 포함하면 외국 브랜드의 점유율이 90%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외국 업체들이 10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를 고작 10~20년 역사의 국내 업체가 넘기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국내 펫푸드 업체가 시장에서 밀려난 이유는 또 있다. 소비자(반려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려인 중엔 국산 사료 구매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 국내 펫푸드 역사가 짧은 데다 사료 재료로 쓰이는 육분이나 내장, 부산물 등을 향한 불신이 커서다. 

반려인들은 위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유명 외국 사료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려인들은 위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유명 외국 사료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위험 부담을 피하려는 것도 있다. 잘 모르는 국내 제품을 먹였다가 부작용에 시달릴 바엔 ‘모두가 다 아는’ 해외 제품을 먹이겠다는 거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동물병원에서 동물 건강에 맞게 종류도 다양하고 마진율도 높은 외국 사료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내 펫푸드 시장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농업·식품·농촌 분야 10대 유망 분야를 발표했는데, 이 안案엔 ▲국내 펫 산업 육성을 위한 펫푸드 전용 표시기준 인증제 ▲프리미엄 펫푸드 연구 개발 확대 등의 정책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한국사료협회와도 TF팀을 꾸려 산업관리, 진흥책 등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사료협회관계자는 “국내 업체의 기술력도 외국과 견줄 만큼 많이 신장됐다”며 “법 정비와 인식 개선을 통해 국내 산업 활성화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부를 등에 업은 국내 펫푸드 업체들은 반려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