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0일 그날 무슨 일 있었나

합의서 비밀유지 조항을 둘러싼 롯데푸드-후로즌델리의 법정 공방이 치열하다. 롯데 측은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가 국회와 언론에 합의내용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은배 대표는 “국회에 합의서 전달을 지시한 건 롯데였고, 당시 롯데푸드 대표의 업무용 차를 타고 국회를 방문했다”며 맞섰다. 그러자 롯데푸드가 증거로 반격했다. 롯데푸드 사장 업무용 차량을 모는 운전기사 A씨의 진술서였다. “본인은 전은배 대표를 국회에 데려다준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진술서에 담긴 주장을 반박하는 녹취록이 나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푸드 운전기사 A씨의 이상한 진술서와 녹취록을 단독입수했다.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사진=뉴시스]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사진=뉴시스]

2014년 8월 20일. 롯데푸드 대표와 후로즌델리 대표가 마주 앉았다. 4년 전부터 하도급 분쟁을 벌이던 와중의 일이었다. 후로즌델리는 롯데 측의 ‘갑질’을 분쟁의 이유로 들었다. 

롯데푸드 측이 후로즌델리에만 설비를 지원하지 않거나, 인증 기간에 여유가 있던 해썹(HACCP)을 들먹이면서 거래를 중단하려 했다는 거였다. 롯데푸드 직원 일부가 공장을 방문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반면 롯데푸드는 후로즌델리의 ‘부실경영’을 문제 삼았다. 갑질은 없었다는 얘기였다.

언제나 그렇듯 갑의 위용은 대단했다. 후로즌델리가 롯데그룹 신문고, 공정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롯데푸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후로즌델리는 부도가 났고 전은배 대표는 빚더미에 앉았다. 롯데푸드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건 2014년 바로 그때였다. 내용은 더 의외였다. “직접 만나서 상생을 이야기합시다.” 

두 회사의 갈등은 2014년 8월 20일 종결됐다. 상생합의서에 양측의 서명을 적어 넣었다. 당시 롯데푸드 대표(현 이영호 롯데그룹 식품BU장)는 위로금 7억원을 전달하면서 전 대표의 재기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자사에 납품되는 수많은 물품 중 조건이 맞는 게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납품 기회를 주겠다는 거였다. 늘 그렇듯 양측의 합의서엔 비밀유지조항이 담겼다. 민원제기, 언론제보 등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어길 경우엔 전 대표가 롯데푸드에 7억원을 위약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갈등 끝 4년 만에 합의

후로즌델리 측의 숱한 민원과 문제제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롯데푸드가 느닷없이 ‘상생 카드’를 들고나온 덴 이유가 있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후로즌델리 갑질 문제’로 증인 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고고하던 롯데푸드가 후로즌델리에 먼저 손을 내밀었던 이유다.

실제로 상생합의서가 쓰인 날, 합의서 사본이 국회에 전달됐고, 이인원 부회장은 그해 국감 증인 명단에서 빠졌다. 이 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던 이명수 의원(미래통합당) 측이 증인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었다. 2014년 국감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냉혹한 현실은 또 찾아왔다. 롯데푸드 측이 상생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은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을은 이용만 당한 꼴이 됐다. 돈도, 힘도 없는 전 대표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곳저곳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중엔 언론도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롯데푸드가 전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전 대표가 합의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간 하도급 분쟁을 국회와 언론에 공개했으니, 7억원을 돌려달라”는 거였다. 

전은배 대표 측은 즉각 반박했다. 언론 취재에 대응하면서 사실관계를 밝힌 건 사실이지만, 국회에 합의서가 유출된 건 롯데푸드의 지시를 따른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전 대표 측의 준비서면을 보자. “합의서를 작성한 직후 합의서 사본을 국회의원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한 건 롯데푸드였다. 롯데푸드가 회사 대표이사의 업무용 차량까지 빌려줘 전은배 대표를 여의도까지 데려다줬다. 덕분에 전은배 대표는 신속하게 국회에 합의서 사본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자 롯데푸드 측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6월 10일 법원에 제출된 한 장의 서류를 보자. 롯데푸드 사장의 업무용 차량을 모는 운전기사 A씨의 자필 진술서였다. “제가 사장님 승용차를 이용해 전은배 대표를 국회로 데려다준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영호 대표님이나 조경수 대표님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은 일도 없습니다. … 법정에서 증인이 필요하다 하면 언제든지 출석하겠습니다.”


운전기사 A씨의 이상한 진술서 

한쪽은 차를 타고 국회에 갔는데, 다른 쪽은 차에 태운 사실조차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체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가 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는 1시간 36분 분량의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녹취 일자는 양측이 상생합의서에 서명했던 그날, 2014년 8월 20일이다. 전은배 대표와 이영호 당시 롯데푸드 대표, 그리고 롯데푸드 경영지원 이사가 대표이사실에 모여 나눈 얘기가 담겨 있다. 

갈등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던 만큼, 녹취록 속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국회와 의원실’ 얘기가 나왔다. 전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을 하던 도중의 일이었다. 이영호 대표가 말했다. “이명수 의원을 만나든 보좌관을 만나든 좋은 쪽으로 말을 해달라. 이제는 같이 상생한다고.” 전 대표가 서명을 마친 뒤엔 경영지원이사의 음성이 들렸다. “의원님 드려야 할 건 여기(합의서) 사본입니다.”

미팅이 끝나자 이영호 대표가 다시 말을 꺼냈다. “국회 앞까지 (전 대표를) 자네가 모셔다 드려라. 지하 2층까지 같이 가주고. 전 대표는 나오면서 전화 한번 주시죠.” 

이영호 대표가 말한 ‘자네’는 누구일까. 진술서를 냈던 A씨일까. 일단 전은배 대표가 올라탄 차는 이영호 대표의 업무용 차였을 가능성이 높다. 차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온 전 대표의 음성을 들어보자. “사장님 앉는 자리에 제가 앉는 건 예의가 아니죠. 어떻게 사장님 자리에 앉아요.”

전 대표가 차에 탑승하고도 녹취록은 이어졌다. 전은배 대표가 이영호 대표의 주소지를 물었다. 합의를 잘 마쳤으니, 명절에 선물이라도 보낼 요량이었다. 운전기사는 동·호수까지 정확하게 맞춰 답변했다. CEO 담당 운전기사가 아니라면, 굳이 외우고 다닐 필요가 없는 내밀한 정보였다. 

A씨는 진술서를 통해 ‘2006년 2월 롯데푸드에 입사해 지금까지 사장님 업무용 차량을 운전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이 대표의 주소를 설명한 목소리가 A씨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차의 행선지가 국회였음을 시사하는 대화도 오갔다.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봤다. 

운전기사 : “어느 의원님 만나러 가는 거죠? 이름을 대야 들어갈 수 있는데요. 그냥 들어가면 못 들어가요.”
전은배 대표 : “이명수 의원님인데, 그냥 정문 앞에서 내려주세요. 제가 걸어갈게요.”
운전기사 : “걸어가시게요?”
전은배 대표 : “네, 맨날 걸어갔습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롯데푸드 CEO 운전기사 A씨의 기억이 꼬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전 대표와 관련된 일을 새까맣게 잊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A씨의 진술서를 다시 보자. “정확한 일자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전 대표를 당산역에 한번 데려다준 일은 기억이 납니다.”

전은배 대표는 이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기 이틀 전인 2014년 8월 18일, 전 대표는 롯데푸드 본사 대표이사실을 찾았다. 이영호 대표와 처음 만나 상생 합의의 물꼬를 텄다. 미팅이 끝나고 식사를 마친 뒤, 롯데푸드 대표의 업무용 차에 올랐다. 그리고 롯데푸드 본사와 가까운 당산역에 내렸다. 이때도 차를 몰았던 건 당연히 운전기사 A씨였다.

전 대표는 “롯데푸드의 협력업체로 일할 때부터 A씨와는 두어번 얼굴을 마주쳤었기 때문에 착각할 수가 없다”면서 “합의서를 작성한 날, 국회에 전달해달라며 나를 태운 차는 분명 이영호 대표의 업무용 차였던 구형 ‘제네시스’였고, 그걸 운전한 건 A씨였다”고 설명했다.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나

만에 하나, 당시 운전기사가 A씨가 아니었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상생합의서가 롯데푸드의 지시로 국회에 전달된 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전은배 대표가 국회와 언론에 합의내용을 누설했다”고 주장한 롯데푸드 측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이는 8월 20일 오후 5시 6분, 이영호 대표가 전은배 대표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금 보좌관(이명수 의원실)으로부터 즉시 조치(증인신청 철회)하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전 부회장의 증인신청 철회가 가능했던 건 양측이 합의한 사실이 바로 국회에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진술서를 낸 운전기사 A씨는 “전 대표를 국회에 데려다준 사실은 기억에 없다”면서 “회사 측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라 언급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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