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청원까지 오른 ‘인국공 사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옳은 방향이다.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만 그치면 효과가 미미하므로 민간기업의 협력도 긴요하다.[사진=연합뉴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옳은 방향이다.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만 그치면 효과가 미미하므로 민간기업의 협력도 긴요하다.[사진=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요원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집단이 동시다발로 반발하고 나섰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가 원칙이 없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면서. 

공사는 6월 말까지 계약이 끝나는 보안요원 1902명을 자회사 인천공항경비에 편입시킨 뒤 채용 절차를 통과한 합격자를 올해 안에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이런 방침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사자인 보안요원들이다. 

인천공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당선 직후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하며 1호 정책으로 정규직화를 약속한 상징적 장소다. 바로 이 시점 이전에 입사한 보안요원과 이후 입사자의 정규직 전환 절차가 다른 점이 불만의 1차 원인이다.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는 공개경쟁 없이 정규직으로 직고용할 방침이다. 

반면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자는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공개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보안요원 중 상당수가 탈락할 수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같은 직역인데도 입사 시점에 따라 정규직 전환방식이 다른 데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의 1호 정책 실현에 집착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인천공항공사 취업을 준비해온 청년들의 동요와 불만 또한 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오른 지 사흘 만에 정부가 직접 답해야 하는 기준인 동의자 20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 현직자들은 무슨 죄냐.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빼앗는 게 평등이냐”고 항의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이력서를 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절박한 심정이 읽힌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이 어려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닥쳐 신규 공개채용이 거의 끊긴 판에 불공정하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박탈감이 들 수 있다. 그럴 만한 것이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3년 연속으로 대학생이 꼽은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에 올랐다(취업포털 인쿠르트 조사).

정부는 ‘연중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ㆍ지속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인천공항공사는 졸속으로 일을 처리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애초 보안요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한 뒤 법률을 정비해 직접 채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즉각적인 직고용 요구에 직면하자 청와대가 관여했고, 청원경찰 형태로 직고용하기로 했다. 당장 왜 누구는 본사, 누구는 자회사냐는 불만과 함께 ‘노노勞勞 갈등’이 불거졌다.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인천공항공사의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한국공항공사, 인천항만공사 등의 비정규직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정치권의 여론에 편승한 인기 발언이나 사실을 왜곡한 언론 보도도 경계해야 한다. ‘알바’로 일하는 보안요원들이 초봉 5000만원 수준의 5급 대졸 신입사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돌지만 사실과 다르다. 일반직과 다른 별도 임금체계를 적용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편입되는 다른 비정규직들과 동일한 처우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정규직화는 고용을 안정적으로 하자는 것이지 특정인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다. 올바른 정규직화, 특히 다수가 입사를 선호하는 공공기관은 정규직 전환 대상 일자리를 투명하게 정하고, 외부에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 채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일하는 비정규직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 적절하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근로권 보장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비정규직 축소와 정규직 전환은 우리 사회가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이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불안한 고용 상태를 해소하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직고용 확대가 맞는 방향이다.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만 그치면 효과가 미미하므로 민간기업의 협력도 긴요하다. 

차분히 이성적으로 접근하자. 이번 사태가 청년과 비정규직 간 ‘을乙 대 을乙’ 갈등으로 번져선 안 된다. 정치권도 갈등 조장이 아닌 조정에 적극 나서야 마땅하다. 지난해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은 748만1000명,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4%로 12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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