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의 내집 마련

6월 17일 정부가 22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계속된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좀처럼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숱한 정책에도 서울에서 내집을 마련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 40대 가장의 내집 마련 가능성을 살펴봤다. 내집을 마련할 방법도, 내 집을 마련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올해 5월 서울시 아파트의 중의가격이 9억2013만원을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서울살이 15년 차 직장인 박재석(가명· 43)씨는 최근 들려온 친구 소식에 마음이 못내 무겁다. “그 친구 꿈이 내집을 갖는 거였어요. 수년간 노력했다고 하던데, 최근 꿈을 내려놨다고 하더라고요.” 박씨의 친구는 지난 4월 강북구 미아동에 전용면적 84㎡(약 25.4평)의 아파트를 매입할 계획을 세웠다. 시가는 8억원이 조금 넘었다. 4억원 정도는 은행과 직장대출로 마련할 수 있었다.

1억2000만원은 전세보증금과 그동안 알뜰히 모은 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문제는 모자라는 돈 ‘3억여원’이었다. 부모님은 돕겠다고 했지만 박씨의 친구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다 큰 아들이 부모님 도움을 덥석 받는 것도 이상했지만 증여세도 마음에 걸렸다. 이것저것 따지던 친구는 결국 전셋집에 남기로 했다. 8억원은 그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친구는 최근 모임에서 이런 하소연을 늘어놨다. “가격이 치솟아 수중에 3억~4억원은 있어야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 아이 키우면서 평범하게 사는 가정 중에 수억원의 금융자산이 있는 집이 얼마나 되겠나. 높은 경쟁률 탓에 아파트 분양 당첨은 로또가 된 지 오래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지만 집을 사는 건 더 어려워졌다. 빚을 내 집을 사라고 했던 이전 정부가 나아 보일 지경이다.”

친구의 얘기를 들은 박씨는 한숨을 내쉬는 날이 잦아졌다. 박씨의 꿈 역시 내집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씨는 그토록 원하는 서울 아파트 마련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 박씨의 재무상황을 살펴보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의 연봉은 6081만원(정부 임금직무정보시스템 40~ 44세 중위 연봉과 같다)이다. 외벌이인 박씨는 부양가족으로 아내와 7살 아들, 3살배기 딸이 있다.

박씨 가계의 한달 평균 생활비 지출은 280만원이다[※ 참고: 이는 2017년 통계청 4인 가구 평균 생활비와 같다.] 매월 통장에 꽂치는 돈이 435만원가량이란 걸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155만원의 여유자금이 발생한다. 박씨는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빌라(전세 보증금 2억4000만원)에 살고 있다. 이중 박씨의 자산은 1억8000만원으로 9년 전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돈이다. 현금성 자산으로는 열심히 모은 적금 5200만원이 있다.

그렇다면 박씨가 이 돈을 활용해 내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시 아파트의 중위가격(아파트 매매가격 중 중간에 위치한 가격)은 9억2013만원이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8억8014만원보다 3399만원(4.5%) 올랐다. 1년 전인 지난해 5월 8억2926만원과 비교하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박씨가 서울시 중위가격의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연봉을 15.1년간 모아야 한다. 물론 연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 가능한 기간이다.

9억원 넘은 아파트 중위가격


155만원의 여유자금을 모아 집을 사려면 593.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씨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으로 계산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배율을 의미하는 PIR(Price to Income Ratio)는 지난해 1분기 10.5배에서 올 1분기 11.7배로 높아졌다. 연소득 6181만원인 중산층이 평균 7억2500만원인 서울시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연봉을 11.7년간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빚을 지지 않고 집을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빚을 내면 가능할까. 서울시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인 7억2500만원의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박씨의 자산은 전세보증금 1억8000만원과 예금 5200만원으로 총 2억3200만원이다. 박씨가 7억2500만원의 아파트를 장만할 때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은 2억9000만원이다.

6·17 부동산 정책으로 바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9억원 이하 주택)를 모두 적용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이를 합치면 5억2200만원. 서울시 평균가격의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선 2억300만원이라는 돈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모의 도움을 받든 복권에 당첨되든 2억원이 넘는 거금이 생기지 않으면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빚내도 내집 마련 어려워


물론 박씨가 괜찮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을 떠나면 된다.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경기도 김포·파주·동두천·광주·이천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볼 만한다. 서울보다 비교적 저렴한 아파트가 많은 데다 LTV 규정도 70%로 완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 직장이 있는 박씨는 하루 2~3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은 감내해야 한다.

박씨는 “최근 출퇴근에 3시간씩 걸리는 곳에 직원을 배치한 것을 두고 사실상 해고 통보나 다름없다고 비판한 기사를 봤다”며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고 수준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듯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계속해서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집값은 떨어질 줄 모른다”며 “서울에서 내집을 마련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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