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여인의 향기 ❹

심스가 재학 중인 동부의 명문사립 베어드 고등학교 트라스크 교장은 대단히 깐깐하고 엄격한 규율을 강조한다. 당연히 학생들에겐 인기가 없지만 재단이사회에서는 엄지척할 인물이다. 트라스크 교장은 엄격한 학생관리의 공을 인정받아 재단으로부터 고급 승용차를 선물 받고 기뻐한다. 일부 ‘문제적’인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숨통을 졸라 받은 승용차와 교장 선생님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순교자(martyr)’의 본래 의미가 ‘목격(witness)’과 ‘기억(remember)’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순교자(martyr)’의 본래 의미는 ‘목격(witness)’과 ‘기억(remember)’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결국 몇몇 ‘문제적’ 학생들이 교장과 승용차를 응징하기로 모의한다. 트라스크 교장의 지정 주차공간 가로등 위에 하얀 페인트를 가득 채운 대형 풍선을 매달아 놓고, 트라스크 교장이 출근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대형풍선을 원격조정해 터트린다. 부잣집 도련님들답게 악동짓도 스케일이 블록버스터급이다. 호기롭게 차에서 내리던 트라스크 교장과 자동차는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다. 이쯤 되면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 아니라 거의 교내 테러사건이 된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던 트라스크 교장이 이런 ‘교내 테러사건’을 덮고 지나갈 리 없다. 당장 범인 색출에 나선 그는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심스가 ‘테러’를 준비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범인’은 오리무중인 가운데 교장의 수사는 온통 ‘목격자’인 심스에게 집중된다. 동료를 고발해야 하는 증언이 달가울 리 없는 심스를 향해 트라스크 교장의 회유와 겁박이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범인’을 지목하면 하버드대 입학이 거의 보장되는 ‘교장추천서’를 써주겠지만, 증언을 거부하면 퇴학처분이 기다린다. 트라스크 교장은 한 손엔 당근, 다른 손엔 채찍을 들고 심스를 압박한다.

커다란 말썽이 되는 무엇인가를 보거나 들었다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침묵이 허용되거나 존중되지 않는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증언하면 누군가에게는 하버드대 입학추천서라도 기꺼이 써줄 정도로 은인이 되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원수가 되고 만다. 교장에게도 스케일 큰 테러를 감행하는 ‘악동’들이 심스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이런 경우 어떤 ‘증언’을 하든 그 증언은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교장을 향한 테러(?)의 목격자 심스는 ‘진실의 딜레마’에 빠진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교장을 향한 테러(?)의 목격자 심스는 ‘진실의 딜레마’에 빠진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순교자(martyr)’의 본래 의미가 ‘목격(witness)’과 ‘기억(remember)’이다. 무엇인가 엄청난 사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기억나는 대로 증언하는 것은 곧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면 이교도들에게 화형을 당해야 할 것이며, 보고도 못 봤다고 거짓 증언한다면 다른 쪽 사람들이 달려들어 파문하려 들 것이다.

무엇이든 함부로 목격할 일도 아니고, 목격했다고 함부로 떠들 일도 아니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위험천만한 오나라 손권의 진영으로 떠나는 조자룡에게 위험에 닥칠 때마다 하나씩 열어보라고 건넨 3개의 비단주머니처럼, 우리네 부모들이 ‘위험천만’한 시집으로 떠나는 딸들에게 건넸다는 3가지 생존비책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사찰과 민간에 널리 퍼진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막은 3마리 원숭이의 지혜도 같은 내용이다. 

칼 차고 돌아다니는 사나운 ‘사무라이’들이 득실대던 시대에 함부로 무엇인가 듣고 봤다고 떠벌리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짓이다. 그것을 유학자儒學者들은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자못 근엄한 윤리로 가르치지만, 민간에서는 생존의 지혜에 가깝다.
오늘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 뒤흔들고 있는 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뜨겁다.

법정으로 간 진실공방엔 예외 없이 ‘목격자’와 ‘증인’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증언대에서 선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한쪽으로부터 돌팔매와 인격살인을 당한다. 핵심증인들은 외국으로 튀어 잠적해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살을 택해 증언의 공포와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목격자’의 운명은 역시 ‘순교자’다. 크고 작은 공직생활도 시집살이처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곳인 듯하다.

 

진실과 진리는 어쩌면 ‘알면 다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실과 진리는 어쩌면 ‘알면 다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도의 현자賢者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일본의 이 ‘현명한 원숭이 3마리’를 달리 해석한다. “진실을 듣지 마라. 너를 위로하는 거짓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실을 보지 마라. 너의 신神이 죽게 되고, 너의 천국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마라. 모든 사람들이 너를 비난하고 고문하고 죽이려 들 것이다.”

오늘도 우리 사회의 온갖 ‘사건’과 ‘사태’들을 목도하고 있는 모두가 ‘진실 규명’과 ‘진리’를 외친다. 그러나 어쩌면 ‘진실/진리’란 라즈니쉬가 파악한 것처럼 ‘알면 다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니체가 눈치챈 것처럼 ‘진실/진리(Truth)’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모두 자신이 믿는 ‘진실/진리’를 절대적인 ‘진실/진리’로 만들고자 하는 전투적인 ‘진리 의지(Will to Truth)’에 충만했을 뿐일 수도 있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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