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와 소나기

지난해부터 줄줄이 터지고 있는 사모펀드 사태로 펀드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판매사가 불법·편법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탓에 투자자가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2018년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 많은 상품에서 폭탄이 터질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이 당분간 사모펀드 투자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얘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터지는 사모펀드의 민낯을 살펴봤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부실투자, 환매연기 등의 사태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환매연기, 디스커버리자산운용 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모펀드의 부실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선 피해 규모가 최대 4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알려진 사모펀드가 투자자를 속이는 투기상품으로 전락한 셈이다.

사모펀드 논란의 불씨를 지핀 DLF 사태부터 살펴보자. DLF는 독일 10년물 국채금리 등과 연계한 파생상품이다.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판매사가 3243명(법인 222개 포함) 투자자에게 7950억원어치의 상품을 판매했다. “독일 국채금리가 -0.25%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4.0%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은행 측의 설명을 들은 투자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초저금리의 영향으로 국채금리가 -0.25%를 밑돌면서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계속된 사모펀드 논란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7%의 고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부실기업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 사채(BW) 등에 투자해 부실을 키운 사례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는 ‘깜깜이’ 투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부동산을 재개발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인허가 문제와 사업을 진행하는 현지 시행사의 사기 논란이 발생하면서 만기 상환이 연기됐다. 문제는 상품의 판매사가 현지 실사 등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도 마찬가지다. 이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이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하지만 기초자산에 다른 매출채권이 섞여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꼼꼼한 검증 작업을 거치지 않은 결과였다. 두 펀드의 예상 피해액은 각각 5280억원, 11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900억원대의 환매연기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 옵티머스는 편입 자산의 95% 이상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3%의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투자한 곳은 대부업체와 부실기업 등이었다. 펀드명세서를 위변조해 판매사인 대형증권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처럼 사모펀드 시장은 불완전판매·부실투자·사기 등으로 얼룩져 있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감독시스템을 간소화한 게 2018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리스크가 있는 사모펀드는 숱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4월 발표한 ‘사모펀드 감독프로세스 개편방안’을 통해 사모펀드 설정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운용사가 자율 점검하고, 사후보고 시 자료를 첨부하도록 간소화했다. 결과, 2017년 285조9700억원이었던 사모펀드 설정액은 2018년 333조2100억원, 2019년 412조400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사모펀드 논란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감독시스템을 간소화한 2018년부터 시장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며 “당시 판매한 사모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사모펀드의 만기가 일반적으로 2~3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 많은 펀드에서 부실투자, 환매연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모펀드가 투자한 대체투자처인 해외부동산, 기업 매출채권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당장은 사모펀드를 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한 시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경만 엉클조아카데미 금융컨설턴트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사모펀드는 문제가 발생하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김성숙 계명대(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사모펀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판매 과정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펀드 판매 과정에서 고객에게 펀드의 주요 내용을 알려주는 과정(의무적 설명)이 개선됐다곤 하지만 체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펀드 이해도가 낮은 투자자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펀드 설명 단계, 최종 서명 단계 등 특정 시점에서 상품의 위험성과 손실 가능성을 환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가 고객의 수익률과 안정성보단 수수료를 챙기는 데 급급한 게 사모펀드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연 1~3%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사모펀드는 프로모션을 거는 등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1조원어치의 사모펀드를 팔면 100억~300억원의 수익을 챙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펀드규제 완화 정책이 사모펀드의 문제점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펀드규제 완화 정책이 사모펀드의 문제점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지금이야말로 공모펀드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의견도 있다. 투자자의 관심을 사모펀드와 비교해 안정성이 높은 공모펀드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소현 이화여대(소비자학과) 교수는 “펀드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상품이 필요하다”며 “투자지역·투자방식·포트폴리오 운용 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숙 교수는 “투자시장에 밝은 지식인들도 펀드투자를 꺼릴 만큼 투자자의 신뢰가 떨어졌다”며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 투자회사의 개선 노력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규제 강화로 인한 펀드시장의 침체를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며 “투자자가 펀드투자를 외면하는 게 낫다고 여기면 시장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