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vs 하이트진로 브랜드 전략싸움

오비맥주는 ‘카스’란 메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카스를 축으로 하위 브랜드를 배치하는 전략이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다양한 브랜드를 줄기차게 출시했다. 하이트, 에스, 테라 등 크고 작은 브랜드를 수평적으로 론칭했던 거다. 흥미롭게도 두 업체는 각기 다른 브랜드 전략에 웃고 울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브랜드 전략싸움을 취재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서로 다른 브랜딩 전략을 써왔다. [사진=연합뉴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서로 다른 브랜딩 전략을 써왔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맥주시장의 양강인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서로 다른 전략을 펼쳐왔다. 오비맥주는 대표 제품인 ‘카스(CASS)’를 내세운 메가 브랜드 전략을, 하이트진로는 ‘하이트’ ‘맥스’ ‘드라이피니쉬d’ ‘테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출시하는 다多브랜드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두 업체의 상반된 전략은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초 오비맥주는 카프리·오비라거 등 여러 제품으로 맥주시장 1위(점유율 60~70%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1993년 하이트진로는 ‘100% 암반천연수로 만든 맥주’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이트맥주를 출시했다. 소비자는 하이트의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에 반응했다. 그 덕에 하이트진로는 1996년 오비맥주를 제치고 맥주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역전을 허용하기 전 오비맥주도 1994년 카스(카스 후레쉬)를 출시하면서 반전을 노렸지만 승승장구하는 하이트를 끌어내리긴 쉽지 않았다. 카스의 점유율은 30%대로 내려갔고, 하이트맥주의 점유율은 61.2% (2006년)까지 치솟았다. 맥주시장은 그야말로 ‘하이트’ 세상이었다. 승리에 취한 하이트맥주는 다브랜드 전략을 강화했다.

2006년 ‘맛있는 맥주’를 표방한 신제품 맥스를 출시했다. 100% 보리맥주(올 몰트)란 콘셉트 덕분인지 시장서 주목받았다. 이듬해엔 20~30대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국내 최초 식이섬유 맥주인 ‘에스’, 2010년엔 드라이타입 맥주 드라이피니시d를 출시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레귤러 맥주(하이트) 외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왔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가 다양한 맥주를 줄줄이 낼 동안 와신상담하던 오비맥주는 상반된 전략을 펼쳤다. 카스를 메가브랜드로 세우고, ‘카스 레드(2007년)’ ‘카스 레몬(2008년)’ ‘카스 라이트(2010년)’ 등 하위제품을 잇따라 내놨다. 동시에 20~30대를 타깃으로 ‘젊음’ ‘짜릿함’ ‘청춘’ 등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카스 브랜드를 밀어붙여 충성 고객을 확보함과 동시에 젊은 층에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전략을 사용한 거다. 

여기서 잠깐. 하이트진로가 선택한 다브랜드 전략과 오비맥주가 내세운 메가 브랜드 전략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다브랜드 전략의 장점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히트제품이 없으면 힘을 얻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각각의 브랜드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마케팅 비용과 영업 인력 등 막대한 물량 공세에도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건 만만치 않다. 반대로 메가 브랜드 전략은 입지만 확실히 다진다면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가령, 해당 카테고리에서 ‘국민○○’로 불릴 만큼의 포지션을 확보한다면 신제품 론칭이나 인지도 상승을 위해 투입할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치열한 두뇌싸움의 승자는 ‘메가 브랜드 전략’을 들고 나온 오비맥주였다. 

시장 뒤엎은 메가 브랜드 전략

수년째 하락세를 타던 오비맥주의 점유율은 2007년을 기점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2007년 40.8%, 2009년 43.7%에 이어 2011년 51.9%를 기록하며 하이트진로(48.2%)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한국주류산업협회, 과세·면세 포함). 자연히 실적도 좋아졌다. 오비맥주의 매출액은 2007년 6621억원에서 2009년 8161억원, 2011년엔 1조원을 돌파했다(1조735억원).

반대로 뚜렷한 히트제품을 내지 못했던 하이트진로의 점유율은 2007년 59.1%에서 2009년 56.3%으로 하락세를 타더니 2011년부턴 40%대로 떨어졌다. 매출액도 들쭉날쭉했다(2008년 7352억원, 2009년 6819억원, 2011년 9849억원).  

그런데도 하이트진로는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오비맥주가 카스를 고집할 동안 하이트진로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계속 론칭했다. 2016년에는 망고맛 저도수(2.5도) 맥주 ‘망고링고’를, 2017년에는 국내 최초로 발포주(맥아 비율 10% 미만) ‘필라이트’를 출시했다. 각각은 저도수 술을 찾는 소비자와 가성비 좋은 맥주를 찾는 가정시장에서 통했지만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하이트진로 안팎에서 ‘카스’처럼 ‘하이트’를 메가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양한 맥주 브랜드가 ‘카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로부터 10년여, 하이트진로의 ‘뚝심’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출시한 맥주 ‘테라’가 선풍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하더니, 이내 카스를 위협할 제품으로 떠올랐다. 테라 출시 이후 국내 맥주시장서 하이트진로의 점유율이 40%대까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의 인기 원동력은 ‘청정라거’라는 이미지에 맞는 청량한 맛과 갈색 맥주병 사이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초록색 병 등이다. 하이트진로 측은 “마케팅에 힘을 쏟기도 했지만 소비자가 맛이나 디자인 면에서 테라를 신선하다고 여긴 게 크다”며 “‘테슬라(테라+참이슬)’ ‘테진아(테라+진로이즈백)’와 같은 신조어도 인기에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대세보다 취향 중요해진 시장

전문가들은 “시장의 트렌드가 다브랜드 전략에 유리하게 바뀐 게 테라의 인기를 부채질했다”고 말한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옛날에는 남들이 많이 먹고 마시는 것, 이를테면 대세를 따르는 소비자가 많았다. 지금은 맥주 한캔을 마셔도 나와 맞는 게 어떤 건지 고민하고 마신다. ‘곰표 맥주’처럼 개성 있는 제품이 소비자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는 카스엔 위기다. ‘올드해질 수 있다’는 게 메가 브랜드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스의 위기를 꼬집는 전문가도 많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초기의 이미지를 꾸준히 지키는 메가 브랜드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면서 “카스 브랜드가 언제까지 1위를 지킬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업소용 시장서 판매량이 높다고 안심할 순 없다”며 “식당에선 맥주의 선택지가 적은 만큼 소비자의 선호도가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오비맥주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오비맥주 측은 “코로나19로 전체 주류시장이 타격을 입었지만 가정용 시장서 오히려 오비맥주의 점유율이 상승했다(20 19년 49.1%→지난 1~4월 49.5%·닐슨코리아)”며 “여기에 신제품 호가든 그린그레이프는 국내에서 개발·제조한 신제품으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엔 갈 길이 멀다. ‘넥스트 테라’를 찾지 못한다면 다브랜드 전략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두 주류酒類 공룡의 지략다툼은 지금부터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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