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벨벳 두달의 기록

‘G시리즈’와 ‘V시리즈’를 모두 버렸다. LG란 이름도 떼버렸다. 오로지 ‘벨벳’, LG전자의 새 스마트폰은 그렇게 탄생했다. LG전자의 ‘피처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대박을 쳤던 ‘초콜릿폰’을 소환했다. LG전자 역시 그때 그 영예를 기대했다. 그로부터 두달여 벨벳은 어떻게 됐을까. 실적이 발표되지 않아 구체적인 성적표를 알 순 없다. 다만 이동통신사들이 최근 벨벳의 공시지원금을 상향조정한 건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재고를 털어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방증이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벨벳 출시 두달의 기록을 살펴봤다.

LG전자는 지난 5월 G시리즈와 V시리즈를 버리고 가격과 성능을 낮춘 매스 프리미엄 모델 벨벳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LG전자는 지난 5월 G시리즈와 V시리즈를 버리고 가격과 성능을 낮춘 매스 프리미엄 모델 벨벳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올 상반기 휴대전화 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LG전자의 ‘벨벳(5월 15일 출시)’이었다. 참신한 디자인과 광학 패턴ㆍ나노 적층 기술로 표현한 이색적인 컬러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 이목을 끈 건 LG전자의 새 사업 전략이었다.

LG전자는 가장 먼저 브랜드명에 메스를 댔다. 2012ㆍ2015년에 처음 출시돼 LG전자의 대표 스마트폰 모델로 자리 잡은 ‘G시리즈’와 ‘V시리즈’를 과감히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주력 라인업으로 꼽히는 플래그십(최상위) 모델도 포기했다. 그 대신 가격과 성능을 조금 낮춘 매스 프리미엄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벨벳은 그 결과물이었다. 일부에선 세련된 디자인과 펫네임(별칭)으로 피처폰 시절 LG전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초콜릿폰’을 떠올렸다. 그만큼 ‘휴대전화 명가’란 옛 타이틀을 되찾겠다는 LG전자의 강한 의지가 벨벳에 담겼다. 

그렇다면 출시된 지 두달이 흐른 벨벳은 LG전자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성적표를 거뒀을까.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치가 없어 벨벳의 정확한 판매량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벨벳의 성과를 가늠할 만한 지표들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부의 실적을 살펴보자. 지난 7일 LG전자가 발표한 올 2분기 잠정 실적에 따르면 MC사업부는 매출 9300억원, 영업손실 2079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실적(매출 1조6133억원ㆍ영업손실 3130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은 6833억원 줄고, 영업손실은 1051억원 개선됐다. 2015년 2분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적자 행렬’을 피하진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영업손실 폭을 줄였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벨벳이 MC사업부의 2분기 실적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미지수다. 생산지 효율화와 원가절감, 코로나19로 인한 마케팅 비용 감소로 영업손실 폭이 줄었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매출이 감소했다는 점도 벨벳 효과가 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매출이 줄었다는 건 절대적인 판매실적이 떨어졌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김록호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영업손실이 줄었지만 축소 폭이 (LG전자의) 기대엔 못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지표도 있다. 공시지원금이다. 이는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이동통신사에서 주는 지원금이다. 이통3사는 최근 벨벳의 공시지원금을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KT가 6월 24일 기존 24만원(최대 기준)에서 48만원으로 올린 데 이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각각 17만원에서 42만원, 21만원에서 5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벨벳이 시장에 출시된 지 40여일 만이었다.

그럼 이통사는 언제 공시지원금을 올릴까. 시장 상황, 경쟁사 동향, 제조사와의 협의, 차기 모델 출시계획 등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재고 소진이다. 이동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재고를 소진해야 할 때가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가령, 새로운 모델이 곧 출시되는데 이전 모델의 재고가 많다고 치자. 그런 경우 지원금을 늘려 재고를 털어내지 않으면 가치가 낮아진다. 또는, 판매 목표치가 높았는데 실제 판매량이 미진한 경우에도 공시지원금을 올릴 때가 있다. 공시지원금 조정 시기가 빠르다면 후자일 공산이 크다.”

출시 40여일 만에 공시지원금 상향

공시지원금은 일종의 마케팅 비용이다. 이통사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고를 털어내려 한다는 건 그만큼 판매실적이 신통치 않다는 방증이다. 물론 벨벳의 공시지원금만 상향된 건 아니다. 이통3사는 벨벳과 함께 삼성전자 갤럭시노트10의 공시지원금도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갤럭시노트10의 상황은 벨벳과 다르다. 갤럭시노트10은 지난해 8월 출시된 제품이다. 차기 모델인 갤럭시노트20의 출시일도 오는 8월 21일로 정해졌다. 시장에 나온 지 40여일밖에 안 된 벨벳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벨벳의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무엇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신통치 않다. 벨벳은 89만9000원으로 출시됐다. 지난해 5월 출시된 LG전자의 ‘V50 씽큐’의 출고가(119만9000원)보단 저렴하다. 하지만 V50 씽큐가 플래그십 모델, 벨벳이 매스 프리미엄 모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벨벳의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같은 기간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A51’은 벨벳과 비슷한 사양을 갖췄음에도 출고가(57만2000원)가 30만원가량 싸다. 애플의 중저가 모델 ‘아이폰SE2’의 출고가도 벨벳보다 14만원 저렴한 76만원(256GB 기준)이다. “아이폰SE2 64GB 모델(출고가 53만9000원)과 ‘에어팟 프로(출고가 32만9000원)’를 사고 치킨을 사먹어도 벨벳보다 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 배경이다. 

벨벳의 또다른 강점인 디자인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물방울 모양을 형상화한 카메라 디자인과 첨단기술로 구현한 이색적인 컬러가 찬사를 받았지만 일부 소비자는 ‘스카치 캔디’로 비유하면서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벨벳의 색감이 롯데제과 스카치 캔디의 포장지 색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소비자는 “어차피 케이스를 끼면 디자인과 색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그정도 가격을 주고 살 만한 사양의 제품인지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옥현 서강대(전자공학) 교수는 “폼팩터(제품의 물리적 형태)와 하드웨어 변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디자인만으로 승부를 보긴 어렵다”면서 “특히 바(bar) 형태의 스마트폰은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데다, 케이스를 끼우면 큰 차이가 없어 고생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두꺼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애플이 디자인 이전에 소비자 편의성을 중시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콩나물이어폰’ ‘인덕션폰’이라는 오명을 썼던 애플이 소비자 편의성과 참신한 기능으로 차갑게 식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린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히 감각적인 디자인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긴 어렵다는 얘기다.

벨벳은 스카치 캔디폰이라는 오명을 씻고 LG전자 MC사업부를 구원할 수 있을까. 20분기 연속 적자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숨에 끊어내는 게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코로나19라는 변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8년간 LG전자를 대표한 브랜드를 버린 초강수를 뒀다면 적어도 LG전자 스마트폰의 새로운 방향성에 기대를 걸어 볼 만한 ‘가능성’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으로 미뤄봤을 때 벨벳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LG전자가 하반기 전략폰을 어떻게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노브랜드 전략을 이어갈지,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전략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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