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 말면 살고 접으면 죽는다 

“2021년 LG전자의 롤러블폰이 나온다.” 업계에서 들려오는 얘기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통해 2021년엔 흑자전환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는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들 역시 “변화하는 시장에 걸맞은 선도적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면 LG전자가 부활의 날갯짓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LG의 돌돌 말리는 롤러블폰, 2021년엔 기대할 수 있을까. 

LG전자가 오는 2021년 롤러블폰을 출시할 거란 얘기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LG전자가 오는 2021년 롤러블폰을 출시할 거란 얘기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2021년까지 스마트폰 사업의 흑자전환을 이뤄내겠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ㆍIT전시회 CES2020에 참석한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밝힌 각오다.

분명 쉽지 않은 목표다. LG전자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부는 2015년 2분기 이후 내리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때 LG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전담했을 정도로 효자사업이었던 휴대전화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LG전자 MC사업부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권 사장은 MC사업부의 흑자전환 조건으로 크게 두가지를 꼽았다. 라인업을 바꾸고, 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5월 LG전자가 출시한 새 전략폰 ‘벨벳’은 라인업 변화의 결과물이다. LG전자 스마트폰을 대표하던 기존 브랜드인 ‘G시리즈’와 ‘V시리즈’를 떼내고 주력 라인업이었던 플래그십 모델도 과감히 포기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긴 어렵다. 한편에선 “과감한 시도와 참신한 디자인”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일부 기능이 빠지고 성능이 낮아진 데 반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면서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실제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도 적지 않다.

이제 권 사장에게 남은 조건은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선도적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이 조건은 LG전자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LG전자의 패인을 “시류를 읽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어서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LG전자가 피처폰을 고집한 건 대표적인 예다. 뒤늦게서야 스마트폰을 내놨지만 이미 경쟁사들이 시장 주도권을 거머쥔 뒤였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LG전자도 모듈형 배터리, 탈착식 카메라 등 새로운 혁신을 시도한 적이 많다”면서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나 애플과 달리 타이밍을 놓칠 때가 많았고, 마케팅도 약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건 휴대전화 시장이 또 한번 큰 변화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폼팩터(제품의 물리적 형태)의 변화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휴대전화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 주요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앞다퉈 폴더블폰을 출시하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물론 아직 폴더블폰의 장점을 극대화할 만한 콘텐트가 부족하고 사용자경험(UX)ㆍ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개선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스마트폰 시장은 폼팩터를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옥현 서강대(전자공학) 교수는 “새로운 폼팩터가 나오면서 기기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휴대전화 시장이 다시 커지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면서 “새로운 폼팩터 안에서 성능과 기능, 사용자 편의, 디자인 등을 어떻게 개선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판도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LG전자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은 제품을 선보인다면 시장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동안의 침체를 딛고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피처폰을 고집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뒤처졌던 과오를 반복할 수 있어서다.

아쉽게도 시장 안팎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다. 언급했듯 삼성전자, 화웨이 등이 새로운 폼팩터의 스마트폰을 공개한 것과 달리 LG전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시장에선 LG전자가 폴더블폰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LG전자는 듀얼스크린을 출시하며 폴더블폰 경쟁에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물론 긍정적인 소식도 있다. LG전자가 롤러블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다. 이른바 ‘B프로젝트’로 알려졌는데, 권봉석 사장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있는 만큼 권 사장이 언급했던 ‘시장을 선도할 제품’이 롤러블폰일 공산이 크다. 
 
김종기 연구위원은 “투자여력이 부족한 LG전자로서는 아직 확실하게 개화하지 않은 플렉시블(폴더블ㆍ롤러블의 기반이 되는 디스플레이)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조업자 개발생산(ODM)을 통한 원가절감과 중저가 모델 위주로 적자 폭을 줄여나가면서 시장 상황을 살피는 게 LG전자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중저가 모델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렵다”면서 “결국 프리미엄 모델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는 삼성전자처럼 투자여력이 크지도, 애플처럼 브랜드파워가 높지도 않다. LG전자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한방’일지 모른다. LG전자는 비축해 놓은 힘을 제때 터뜨릴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시류를 읽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리는 과오를 반복할까. 2021년 그 답이 나온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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