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출혈경쟁의 서막

라면 1봉지 400원, 욕실화 2개 4900원, 수박 1통 7000원…. ‘웬 횡재인가’ 싶은 이 가격표는 대형마트 빅3가 초저가 전략을 내세우며 판매하는 상품들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 부담이 확 줄어들어 좋긴 한데, 출혈경쟁의 단초가 될지 걱정도 된다. 대형마트 3사 실적을 보면 그런 징조가 보이기도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형마트 출혈경쟁의 서막을 취재했다. 

초저가 전략으로 대형마트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초저가 전략으로 대형마트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직 미지의 영역인 초저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지난해 신년사 화두는 ‘중간은 없다’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은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된다”고 강조한 정 부회장은 “신세계가 만들 스마트한 초저가 모델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 시장을 선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이어졌다. 정 부회장은 “결국 답은 고객의 불만에서 찾아야 한다”며 이마트에 “상시적 초저가, 독자상품 개발, 그로서리 매장 경험 등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장보기 지킴이’라는 머스트해브(must-have·반드시 가져야 하는)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이 때문인지 이마트는 ‘초저가 전략’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상시적 초특가 브랜드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이하 국민가격)’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는 한정판 초저가 상품까지 선보였다. 

‘국민가격’은 최대 30~60% 저렴한 가격을 책정해 한번 정한 가격은 끝까지 바꾸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1차로 와인과 비누 등 30여개 상품을 선보인 후 점차 품목을 늘려왔다. 지금은 생수·물티슈·키친타월등 생활용품은 물론 식용유·고추장·콘칩·땅콩카라멜콘 같은 식품류까지 상시 초저가로 내놓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엔 한정판 초저가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름하여 ‘리미티드 딜(Limited Deal)’이다.

이마트는 지난 2일 “고객에 대한 가격투자에 나선다”며 리미티드 딜을 선보였다. 이마트가 협력업체와 사전 기획해 자체 마진을 축소해 내놓은 상품이다. 월 10여가지 상품을 물량 한정으로 초저가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한정물량으로 기획하고, 물량이 소진되면 행사는 자동 종료된다. 

이마트는 “그동안 축적해온 매출 데이터와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상품을 선정했다”며 첫 상품으로 수박·달걀·양파·멸치 등 12개 품목을 선보였다. 지난 4~5일 이틀간 15만통 한정으로 진행한 수박은 중량과 품종에 상관없이 행사카드 이용 시 7000원으로 구매 가능했다. 달걀은 연중 최저가인 2780원(30개)에 판매했다. 이마트 측은 “리미티드 딜은 단순히 가격이 저렴한 상품이 아니다”면서 “고객의 관점에서 최신 트렌드에 맞는 상품과 제철 상품을 고객이 필요한 시기에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형마트의 전략은 어떨까. 롯데마트의 대표적인 초저가 정책은 ‘통큰세일’이다. 2010년 처음으로 5000원짜리 통큰 치킨을 선보인 이후 다양한 카테고리 안에서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동행세일’을 맞아 최근엔 4~5일 이틀 동안 인기상품을 최대 50% 할인된 금액에 판매하는 ‘통큰절’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의성마늘 빅그릴 비엔나(720g)’를 50% 할인하거나 ‘룸바이홈 구슬 욕실화’를 1+1에 판매했다. 

여기도 저기도 초저가


홈플러스는 ‘대한민국 빅딜가격(이하 빅딜가격)’을 선보이고 있다. 빅딜가격은 경쟁사가 따라잡기 힘든 가격에 내놓는 상품이다. 신선식품에서부터 가공식품·생활용품·가전에 이르기까지 핵심 생필품을 선정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가령 2019년 6월 출시한 ‘빅딜가격’ 국민라면과 국민짜장은 1봉당 가격이 400원이다. 삼양식품과 손잡고 만든 국민컵라면도 1개당 가격이 500원 수준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국내외 우수 협력사와 대규모 물량을 사전계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낮은 가격대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가 최근 몇년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초저가 전략은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매출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수익성 측면에선 늘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대형마트 3사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마트 할인점 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11조395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098억원에서 2827억원으로 44.6%나 줄었다. 롯데마트의 마트 부문은 지난해 248억원의 손실을 냈다. 2018년 80억원에 그친 영업이익은 그나마 양반이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성적표다. 

최근 실적을 공개한 홈플러스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홈플러스는 2019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쪼그라들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4.7% 감소한 7조3002억원을, 영업이익은 38.4% 줄어든 1602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마저도 새로운 회계기준을 적용한 결과이지 기존 기준을 적용하면 영업이익은 1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홈플러스는 ‘대한민국 빅딜가격’을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홈플러스는 ‘대한민국 빅딜가격’을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에서도 대형마트의 전략은 어김없이 ‘초저가’다. 점포 리뉴얼, PB상품 확대, 그로서리 강화 등 표면적인 전략은 다양하지만 기본은 출혈을 부추기는 ‘초저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저가 전략은 고객을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남는 건 악화하는 성적표

물론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게 대형마트의 본질이다. 너도나도 공격적으로 초저가 공세를 펼치면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분별한 초저가 전략을 펼치면 굳이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초저가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마진을 줄이려다 보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납품업체에 갈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원래의 퀄리티를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초저가라고 포장하지만 실제 퀄리티와 중량 등을 따져보면 초저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초저가 전략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다 보면 수익성이 기대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재고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의 전략을 고수하는 한 마트의 반등은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