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의 성공 조건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일이 더 많다. 현 정부에서 할 일과 차기 정부에서 할 일을 구분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긴요하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일이 더 많다. 현 정부에서 할 일과 차기 정부에서 할 일을 구분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긴요하다.[사진=뉴시스]

정부가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2025년까지 총 160조원(국비 114조원)을 투입해 190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도약시키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다.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을 촉진ㆍ확산시키는 ‘디지털 뉴딜’, 친환경ㆍ저탄소 전환을 가속화하는 ‘그린 뉴딜’, 고용ㆍ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안전망 강화’ 등 3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 충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미국ㆍ중국 간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대외 환경이 매우 불확실하다. 이런 대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국가 차원의 경제부흥 계획을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럴싸한 구호와 선언적 계획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지만 상당 부분 정부가 이미 추진해온 정책의 재탕삼탕이거나 짜깁기 수준이다.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을 육성한다는 디지털 뉴딜부터 그렇다. 그린 뉴딜은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녹색성장 정책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다.

뉴딜 사업 중에는 신산업ㆍ신기술 육성과는 거리가 있는 학교의 낡은 컴퓨터 교체나 무선네트워크 구축, 노후 공공임대주택의 에너지 효율 높이기(그린 리모델링)와 같은 것들도 포함돼 있다. 전기차ㆍ수소차 등 친환경차와 빅데이터 관련 사업과 기술개발 지원은 이미 주요 기업들이 하는 일을 ‘뉴딜’로 포장하거나 정부가 숟가락을 하나 더 얹은 모양새다.

그러면서 국민이 직접 체감하며 성과를 공유할 만한 부문은 빠져 있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서 비대면 산업을 육성한다며 스마트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필요성이 커진 원격의료는 포함하지 않았다.

3대 축 가운데 핵심은 디지털 뉴딜이다. 58조20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90만3000개를 창출하겠다지만 계획대로 될지 의문이다. 170만명이 이용하던 ‘타다’ 서비스가 불법으로 낙인 찍혀 기사 1만2000명의 일자리가 흔들렸듯 적지 않은 디지털 기반 신사업이 기득권의 저항이나 규제의 덫에 걸려 좌초했다. 오죽하면 세계적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에 ‘K팝의 나라가 왜 혁신에 실패했나’라는 칼럼이 실렸을까. 

규제 시스템을 ‘이것만 하라’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이것만 빼고 다하라’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기 위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지난해 3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이에 맞춰 개별 법령에 존재하는 각종 포지티브 규제 조항을 ‘선先허용ㆍ후後규제’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는 작업은 더디기 짝이 없다. 

디지털 뉴딜이든, 그린 뉴딜이든 나름 성과를 내려면 각 부처가 소관 법령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불합리한 규제를 네거티브 체제로 전환하면서 걷어내야 한다. 규정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관료들의 마인드가 변해야 한다. 공연히 관官이 나서 시시콜콜 간섭하지 말고, 민간기업들이 열심히 뛰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데 그쳐야 한다. 

경직된 고용ㆍ근로제 또한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신사업은 개발 속도가 관건이다. 그런데 국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현실은 주 52시간 근로제에 묶여 자발적으로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해 연구개발이 지장을 받고 스타트업의 성장이 힘들다는 현장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현 정부보다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일이 더 많다. 2년이 채 남지 않은 현 정부에서 할 일과 차기 정부에서 할 일을 구분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조강국인 우리나라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고용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디지털과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짜였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을 지하화하고 지상 녹지공간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교통ㆍSOC 뉴딜사업도 검토해보자. 지상도로 부지에 공공임대주택과 공원을 건설하면 물류비용 절감과 함께 주택공급도 늘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횡행하면서 식량안보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농업의 미래 비전이 미흡하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한국판 뉴딜 계획은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발표됐다. 현 정부 들어 ‘대국민 보고’ 형식을 통한 정책 발표와 국정 홍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보여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판 뉴딜은 한달에 한두 차례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진행 상황을 챙기겠다니 조금 달라질까. 국민은 구호만 요란하지 않은, 작은 성과라도 국민이 체감하는 실용적인 정부 정책과 착실한 실천을 고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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