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와 2건의 소송

보톡스 기술 도용 여부를 둘러싸고 2016년 시작된 ‘보톡스 전쟁’.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4년여간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드디어 승기를 잡았다. 일부에선 메디톡스가 기사회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며 환호했지만, 마냥 반길 분위기는 아니다. 메디톡스의 주력 제품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를 둘러싼 행정소송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메디톡스가 보톡스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음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위기의 메디톡스와 소송 두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메디톡스가 식약처의 행정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톡스가 식약처의 행정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6년 바이오벤처였던 메디톡스는 일명 보톡스로 통하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메디톡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번째로 개발된 보툴리눔 톡신 제제였다. 2005년까지만 해도 매출 3억원, 영업손실 2억원이란 초라한 실적을 올렸던 메디톡스는 1년 만에 매출 35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벌어들이며 국내 바이오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로부터 14년, 메디톡스는 현재 위태로운 기로에 섰다. 메디톡스의 명운이 달려 있는 굵직한 소송이 2건 진행 중이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2건의 소송은 ▲메디톡신의 품목허가를 취소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 ▲대웅제약의 균주 도용 여부를 가리는 소송이다.

■가처분 신청 퇴짜 = 그중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건 전자다. 소송 내용부터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식약처는 지난 6월 18일 메디톡스의 주력 제품 메디톡신의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청주지방검찰청 수사 결과에 따라 메디톡스가 2012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서류를 조작해 허가 받은 원액을 사용해 메디톡신을 생산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결정이 과하다고 여긴 메디톡스는 곧장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참고 : 처분취소 청구소송은 식약처의 행정처분(메디톡신 품목허가 취소)을 취소해달라는 본안소송을 뜻하고, 가처분 신청은 소송기간에 행정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걸 말한다.] 

품목허가가 취소되면 사실상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을 판매할 수 없다. 식약처의 품목허가 취소 결정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내뿐만이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품목허가가 취소되면 수출에도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라면서 “제품에 문제가 있어 품목허가가 취소된 걸 어떤 의사가 쓰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식약처는 지난 9일 국제협의체인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에 가입한 49개국에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 사실을 알렸다. 

메디톡신은 메디톡스의 전체 매출에서 약 40%를 차지한다. 메디톡스로선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본안소송에 소요되는 기간은 아무리 짧아도 1~2년이다. 메디톡스가 그동안 메디톡신을 판매할 수 없다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품목허가 취소처분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해달라”는 메디톡스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일 것이냐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하지만 현 상황은 메디톡스에 유리하지 않다. 지난 9일 대전법원은 메디톡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메디톡스는 즉각 항고했지만 고등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도 미지수다. 고등법원의 판결은 오는 8월 14일 안에 나올 예정이다. 

■보톡스 전쟁서 승기 = 그렇다고 부정적인 이슈만 있는 건 아니다. 균주 도용 문제를 둘러싼 대웅제약과의 법정 다툼에선 메디톡스가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보톡스 전쟁’이라고 불리는 양사의 법정 다툼은 2016년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이 우리 기술을 탈취했다”고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국내 소송은 아직 1심에 머물러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법원은 “자국의 판결을 받으라”면서 돌려보냈다. 

4년여 이어져 온 양사의 팽팽한 대립각을 무너뜨린 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였다. 지난해 1월 메디톡스의 제소로 조사에 들어간 ITC는 지난 7일 예비판결을 내렸는데, 메디톡스가 공개한 판결문은 이렇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한 게 맞다.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를 미국 시장에서 배척하기 위해 10년간 수입을 금지한다.”

물론 이는 예비판결이다. ITC의 최종판결은 오는 11월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비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내다본다. ITC 소송에 정통한 한 법조계 전문가는 “공식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속단하긴 이르지만, 예비판결(약식판결ㆍSummary Judgment)이라고 해도 판사가 확실한 근거를 두고 판결하기 때문에 가볍게 봐선 안 된다”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소송이라거나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모를까, 조사기간이 충분했고 나올 만한 증거는 나온 상황이라고 보면 예비판결이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ITC의 판결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의 국내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이미 양사에 ITC에 제출한 자료를 요청한 상황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ITC에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했고, 국내에서도 동일한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린다면 국내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보톡스 전쟁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보톡스 전쟁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소송은 메디톡스에 훨씬 유리한 상황인 게 분명하다. 최근 좋지 않은 이슈만 쏟아냈던 메디톡스에 한줄기 단비 같은 소식인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메디톡스가 보톡스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기사회생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에선 대웅제약과의 소송에서 승리하면 지금의 위기를 모두 상쇄하고 극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오랜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얻을 이익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소송 결과가 메디톡신 품목허가 취소처분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 품목허가 취소처분을 간신히 모면하더라도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단번에 회복하거나 등 돌린 소비자들의 맘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다른 한편에선 대웅제약과의 소송이 메디톡스의 미국 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보톡스 전쟁의 중심에 있는 건 ‘메디톡신’의 기술 도용 여부다. 

하지만 메디톡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 바이오업체 앨러간(미국 제약사 애브비가 인수)에 수출한 기술은 메디톡신이 아닌 신제형 보툴리눔 톡신 제제(국내 제품명 이노톡스)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메디톡신과는 다른 제품이란 거다. 더구나 메디톡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현재 진행 중인 임상을 끝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참고 : 다만, 미국 시장에 먼저 진출한 대웅제약을 견제한다는 측면에선 메디톡스가 승소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

그래서인지 냉정한 시각도 숱하다. 메디톡스가 각종 소송 등으로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을 것이란 지적이 대표적이다. 메디톡스가 소송으로 쓴 돈만 분기당 최대 100억원꼴이다. 메디톡스가 지난해 25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는 걸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솔직히 소송비용 때문에 회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메디톡스 본연의 사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발목이 잡힌 건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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