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고희동 동서울터미널 임차인 비대위원장 

1990년 만들어진 동서울터미널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아직까진 사전협상만 진행되고 있어 구체적 플랜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건 있다. 현 상인들이 우선임차권 없이 가게를 빼야 한다는 거다. 상인들은 “어떤 고지도 받지 못했고, 건물주와 의논하거나 동의한 적도 없다”고 반발한다. 하지만 건물주인 한진중공업 측은 임차인과 임대인이 ‘제소 전 화해조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어찌 된 영문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고희동 동서울터미널 임차인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은 제소 전 화해조서가 부당하게 작성됐다고 주장했다.[사진=천막사진관]

자. 재건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건물에 임차인이 있다면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제소 전 화해조서’다. 건물 명도 소송 전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의를 끝내두는 거다. 임차인에게도 그렇고 임대인에게도 중요한 절차다. 

동서울터미널은 지금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은 “건물주(한진중공업)가 아무런 협의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건물주와 소송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진중공업과 상인들은 이미 ‘제소 전 화해조서’를 작성했다. 그렇다면 상인들로선 대항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참고: 상인들은 14일 ‘동서울터미널에서 나가라’는 강제집행의 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이 승인했다.] 

동서울터미널 임차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자, 동서울터미널 1층에서 장사하고 있는 고희동 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제소 전 화해조서를 썼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어떻게 된 건가.
“도장이야 찍었지만 우리는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 정상적으로 쓰인 화해조서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2018년 11월에 제소 전 화해조서 쓰는 일을 변호사에게 맡기는 위임장에 도장을 찍은 것인데, 우리는 그 위임장을 읽어본 적도 없다.”

✚ 어떻게 위임장을 안 읽어볼 수가 있나. 이해가 안 간다.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 자세히 말해 달라. 
“2018년 11월에 관리사무소에서 우리를 불렀다. 임차 계약 갱신 때문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상인들을 부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동서울터미널이 문을 연 1990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11~12월이 되면 관리사무소에서 우리를 불러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 공인중개사도 없이 말인가?
“공인중개사 없이 동서울터미널 7층에 있는 관리사무소로 올라가서 거기 직원이 주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왔다. 그게 아니면 직원들이 도장을 달라고 해서 자기들이 찍는다.”

임차계약서의 독소조항으로 상인들은 30년간 상인회조차 반들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그렇게 하면 계약 갱신이 끝나는 건가.
“그렇다. 매번 그렇게 해왔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장사해 본 경험이 없다. 다른 곳도 다 이런 줄 알았다.”

✚ ‘제소 전 화해’를 변호사에게 맡긴다는 위임장도 그렇게 도장을 찍었다는 건가. 
“그렇다. 그날은 관리사무소에서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다.”

2018년 11월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은 ‘마지막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때는 마지막이 될 줄도 몰랐다. 한진중공업 측은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면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말했고 상인들은 그대로 따랐다. 평소처럼 관리사무소에서는 상인들에게 계약서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하나 있었다. 그날 받은 것은 계약서가 아닌 서류 봉투였다.

✚ 서류 봉투?
“그걸 들고 ‘공증인 사무소’로 가라고 했다. 거기서 도장을 찍어 오라고 했다. 그래서 공증인 사무소로 가서 도장을 건네줬고, 사무소 관계자가 도장을 찍어주더니 다시 돌려줬다. 관리사무소가 했던 것처럼.”

✚ 봉투 안에 임대차 계약서와 위임장이 있었나.
“그랬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제소 전 화해조서를 쓴 게 돼버렸다.” 

✚ 도장을 직접 못 찍었다고 해도, 그날 받아서 계약서와 위임장을 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도장 찍은 날 계약서를 바로 돌려받지 못한다. 항상 그랬다.”

일반적인 임대차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한부씩 나눠 가진다. 당연히 계약이 끝나자마자 다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동서울터미널의 임차 계약 과정에선 그런 적이 없었다.

✚ 그럼 도대체 언제 계약서를 다시 볼 수 있었나.
“보통은 그다음 해다.”

✚ 직전해에 쓴 계약서를 올해 확인한다는 건가?
“맞다. 1월 쯤이다. 설이 되기 전에 보통 계약서를 다시 나눠줬다. 그럼 그때 계약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 계약서에 재건축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나중에 읽어서 알게 됐다. 하지만 재건축 얘기는 2018년 이전에도 매번 쓰여 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게 특별히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계약서 내용을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상인들은 2019년 9월 퇴거 통보를 받고 그 이후에야 변호사가 이미 화해조서를 써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계약 기간을 2개월 남긴 상황이었다.

✚ 제소 전 화해조서를 쓸 때 협의를 시도하려고 했던 건가.
“사실 화해조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재건축을 한다고 했을 때 한진중공업과 우리가 협의하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시도, 한진중공업도 재건축 계획을 공개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다.” 

 

✚ 퇴거 통보를 받고 의견을 내려고 했더니 이미 화해조서가 쓰여 있던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얼굴도 본 적 없는 변호사가 화해조서를 쓰고 사건을 끝냈다고 말했다. 직접 통화도 했는데, 수임료는 한진이 줬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상인 측 변호사의 수임료를 건물주 측에서 내줬다는 건데, 이는 이상한 일이다. 변호사에게 권리를 위임한 상인들은 의뢰인인데도 정작 변호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인 측 변호사가 ‘제소 전 화해조서’를 써주면서 한진은 명도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했다. 상인들이 부당함을 호소하는 이유다.

✚ 원래 합의하고 싶었던 내용은 뭔가.
“새 건물에서도 장사하고 싶다. 노량진도 신시장으로 옮겨가지 않았나. 보상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냥 장사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지금처럼 임대료도 당연히 낼 거다. 그것만 약속해주길 바라는 거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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