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中 판로 막힌 한국게임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이 막힌 지 3년이 지났다. 그사이 중국 시장에서의 한국 게임 입지는 좁아진 반면, 중국산 게임은 국내 안방을 휘젓고 있다. 새로운 판로를 찾고 있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입김이 한국 게임이 진출할 수 있는 다른 판로마저 닫고 있어서다.

한국 게임이 3년째 중국 서비스 유통을 제한받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게임이 3년째 중국 서비스 유통을 제한받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한류’는 무엇일까. 바로 게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트 산업별 수출 규모 중 게임은 69억8000만 달러(8조4109억원)를 기록해 전체(103억9000만 달러) 산업의 67.2%를 차지했다. 2위인 ‘캐릭터(8억2000만 달러·7.9%)’와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비중을 자랑하는 만큼 사실상 게임이 한류 문화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게임의 점유율도 상당하다. 2018년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6.3%로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특히 PC게임에선 시장점유율 13. 9%를 차지해 2위에 올라섰다.

잘나가는 한국 게임을 견제하는 건 중국산 게임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릴리스게임즈는 지난해 9월 게임 ‘라이즈 오브 킹덤즈’를 출시하면서 홍보모델로 배우 하정우를 발탁한 바 있는데, 출시 직후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2위, 인기 순위 2위를 달성하기도 했다(구글플레이). 최근엔 새 홍보모델로 연예인 유재석도 내세웠다. 그 덕분인지 중국 게임은 국내에서 1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모바일 게임 시장점유율의 20%를 차지했다(문화체육관광부).

중국산 게임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15일 ‘걸카페건’, 21일 ‘왕좌의 게임:윈터 이즈 커밍’ ‘가디스 오브 제네시스’가 잇달아 국내 출시되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동명의 미국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왕좌의 게임은 국내에서만 사전예약자 1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게임 업계에서 “이대로라면 중국산 게임에 안방을 내주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한국 게임이 중국 게임과 불공정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1분기 이후 한국 게임 대부분이 중국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중국에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중국 정부로부터 ‘판호’를 발급 받아야 한다. 판호는 중국의 미디어정책을 총괄하는 ‘중국국가신문광전총국’이 게임 업체에 발급하는 서비스 허가권이다. 이 기관은 매월 1회 이상 새로 판호를 발급받은 게임들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 진출 막힌 국산 게임

하지만 한국 게임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판호를 발급받지 못했다. 광전총국이 지난해 발급한 판호는 총 4161개인데, 그중 한국 게임 비중은 0.7%에 불과했다.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를 하면서 중국 정부가 보복성 징계를 내린 결과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연루된 만큼 앞으로도 국산 게임이 판호를 발급 받을 가능성은 희박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

그 결과, 중국 내의 한국 게임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7년 60.5%였던 국내 게임업체의 중화권(대만·홍콩 포함) 수출 비중이 2018년 46.5%로 14.0%포인트 줄어든 게 이를 잘 보여준다(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이 한국 게임의 가장 큰 수출국(30.8%)임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의 견제가 지속할수록 한국 게임 산업이 입는 타격이 커질 거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국내 게임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과도 올리고 있다. 넷마블의 경우 자회사 카밤이 개발한 ‘마블 콘테스트 오브 챔피언’이 북미에서 히트를 쳤다. 북미에서 인기가 높은 지적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한 덕분인지 이 게임은 지난해 넷마블의 4분기 해외 매출 중 17.0%를 차지하며 넷마블의 실적을 끌어올렸다.

펄어비스도 북미 지역을 적극 공략 중이다. 지난해 3월 자사 최고 히트작인 ‘검은 사막’을 게임기(콘솔) 버전으로 만들어 북미·유럽·일본·호주에 출시했다. 이 게임은 출시 이후 ‘2020년 최고의 MMORPG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톱5’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넷마블도 지난 3월 공개한 ‘일곱개의 대죄:그랜드 크로스’로 출시 직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매출 1위를 달성했다(앱스토어 기준).

자체적인 유통망을 만들기 어려운 중소 게임사들도 게임 전문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해 성과를 내고 있다. 일례로, 국내 중소 게임사인 사우스포게임즈가 지난 3월 세계 최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 출시한 PC게임 ‘스컬:더 히어로 슬레이어’가 스팀 내 매출 톱10에 입성하면서 소비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스팀 판로까지 막혀 “아뿔싸”

엔젤게임즈가 스팀을 통해 선보인 ‘프로젝트 랜타디’도 출시 후 스팀 내 국내 판매게임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대형 기업들도 속속 스팀에 진출을 꾀하고 있다. 스팀이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로 각광을 받으면서부터다. 판호 발급을 받지 못한 펍지주식회사의 ‘배틀그라운드’가 스팀을 통해 중국에서만 1500만장이 팔린 건 유명한 일화다(니코 파트너스).

하지만 이마저도 중국 정부에 의해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말 중국 당국이 스팀 접속 경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스팀은 글로벌 서비스와 별도로 중국 서비스를 따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버전의 스팀에선 판호를 받은 게임만 즐길 수 있다. 판호 발급이 막힌 한국 게임의 유통망이 또 하나 사라지게 된 셈이다.

게임 업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말 방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중 관계가 완화되면 판호 발급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아져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정부도 판호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말 방한 시 문화적 협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판호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혁기 더스쿠프 IT 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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