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 깃든 서점업계의 명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도서시장에 오랜만에 활력이 깃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곡점은 코로나19였다. 야외활동이 여의치 않자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서점이 웃는 건 아니다. 온라인 판매망이 약한 중소형 서점은 그야말로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서점업을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골목서점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서점업계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취재했다. 

서점업은 전체 사업자 중 소상공인이 약 90%에 이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점업은 전체 사업자 중 소상공인이 약 90%에 이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 국면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은 시장은 없지 않다. 대표적인 곳은 도서시장이다. 집안에 갇힌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면서 도서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 올 1~5월 교보문고 온라인(웹+모바일) 매출 점유율은 56.3%로 처음으로 오프라인(영업점) 매출(43.7%)을 따돌렸을 정도다. 

당연히 온라인 전문서점도 활기를 띠었다. 예스24는 ‘2020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책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전체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6%가량 늘었다”며 “어린이·청소년, 건강·취미, 소설·시 등 여러 도서 분야에서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모든 서점이 수혜를 입은 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생존 위기에 시달리던 중소형 서점들은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 매장을 찾는 손님이 줄면서 매출이 ‘뚝’ 꺾인 탓이다. 코로나19가 온라인 판매망이 약한 중소형 서점엔 호재로 작용하지 않은 셈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책방이음’을 운영하는 조진석 전국책방네트워크(책방넷) 사무국장은 “오프라인 서점들의 매출은 전반적으로 최소 30%에서 50%까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 사태로 가계 소득이 줄어 할인율이 높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독서인구 자체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 서점의 매출이 늘면 결국 오프라인 전문매장의 매출이 줄어든다는 거다. 

실제로 중소형 서점들은 운영 형태마다 상황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만화전문서점 사장은 “주말에 홍익대 인근을 찾는 유동인구가 줄자 서점을 찾는 이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코로나 사태 이전의 매출이 10이었다면 지금은 6 정도로 꺾였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의 중형 서점 대표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며 “상황이 하루 이틀 만에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책 판매량 늘어도 함께 웃지 못해

학습지나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는 ‘기타서점’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년간 훌쩍 늘어난 (2015년 49개→2019년 344개) 기타서점은 예술·인문학·건축·문학 등 특정 분야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특성화 서점’이 주를 이룬다. 이들 중엔 음료 판매나 세미나 등 도서 이외의 상품이 주 수입원인 경우가 많다. [※ 참고 : 기타서점은 학습지·참고서·단행본을 모두 판매하는 서점과 구분된다. 지역서점은 책을 종합적으로 판매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서점을 뜻한다.]

이런 기타서점 중엔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소수의 단골손님 중심으로 운영해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곳도 있지만, 버티지 못한 채 문을 닫는 곳도 있다. 홍익대 인근에서 30여년 해외 서적을 다뤄온 오송준 온고당서점 대표는 “원래도 디지털화 이후 출판·도서업계가 어려웠는데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더 힘들어졌다”며 “해외 서적의 경우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출판사가 신간을 내지 못해 발간 일정이 미뤄지는 등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중소형 서점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서점은 수년째 줄어들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서점 수는 2013년 2331개에서 2015년 2116개, 지난해 1976개로 줄어들었다. 대형 체인서점과 온라인 서점 매장이 2015년 73개에서 지난해 10월 150개로 소폭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형 서점은 더 가파르게 줄었단 거다. 김성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부회장은 “지역서점들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그나마 5월부터는 매출이 조금씩 돌아왔지만 아직 회복세라고 볼 수 없다. 하반기엔 문을 닫는 지역서점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휘청거리는 중소형 서점을 돕겠다며 추진된 지자체의 지원책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서울시는 지난 4~5월 ‘책방활성화’ 사업을 통해 문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서점에 최대 100만원을 지원했지만 땜질식 처방전이란 지적도 나왔다. 서울 중구의 한 소형 서점 대표는 “프로그램 운영에 지원금이 도움이 된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임대료 부담이 여전히 크고, 단발성 지원으론 하반기까지 버티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버틸 만한 대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늦어도 너무 늦은 지원

문제는 또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서점업(서적·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을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지원 약속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5월 13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역서점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업계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부족한 지원 예산과 수단을 개선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서점 도서의 적시 배송, 도서 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책값을 정가 대비 표시한 비율로 도서 공급률이 높을수록 서점의 이윤 감소) 인하에 기여할 수 있는 배송체계를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에서 책을 사는 사람은 늘었지만 지역서점을 찾는 이들은 줄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에서 책을 사는 사람은 늘었지만 지역서점을 찾는 이들은 줄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에선 도서 공급률 하향조정 등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을 섣불리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도서 공급률 인하를 두고 출판사와 서점 간 수차례 논의를 진행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왜 중소형 서점을 보호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답은 영세상인 보호에 있다. 서점업은 전체 사업자 중 소상공인이 약 90%에 이르는 업종이다. 이렇다 보니 대형 서점이 세를 확장할수록 중소형 서점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중기청이 서점업을 가장 먼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주로 골목에 둥지를 틀고 있는 중소형 서점의 문화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진석 사무국장은 “독서 경험은 성장 과정에서 동네 서점을 통해 쌓을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전자책이 책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콘텐트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다만 학생들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체험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지는 건 동네 서점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매일 책을 만지는 서점 주인은 훌륭한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이는 지역서점이 나아갈 방향이자 ‘왜 지역서점을 살려야 하는가’의 답이기도 하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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