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자영업자의 눈물

직원을 내보낸다. 나홀로 버틴다. 폐업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수순을 밟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한편에선 “차라리 폐업이라도 하면 속이 후련하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임대 계약 때문에, 대출 때문에 폐업도 못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퇴로가 없어서 한계 상황을 버티는 자영업자가 숱하다는 점이다. 자영업자가 ‘침체의 사슬’에 묶여버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벼랑에 선 자영업자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가 한계에 내몰렸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가 한계에 내몰렸다.[사진=뉴시스]

1년 새 자영업자가 15만명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기준 자영업자는 555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570만6000명) 대비 2.7%(15만5000명) 줄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4.7%ㆍ28만8000명)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자영업자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자영업계 관계자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올 연말이면 자영업 시장이 초토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자영업자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폐업 지원금을 신청한 자영업자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건 단적인 예다. [※참고 : 2017년 처음 시작한 이 사업은 소상공인의 폐업 시 점포 철거비용·원상복구비용을 3.3㎡(약 1평)당 8만원씩 최대 200만원 지원한다.]

추경호(미래통합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점포 철거 지원비 신청자는 4526명에 달했다. 6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신청자 수(6503명)의 69.5%에 육박한 셈이다. 정부는 3차 추경예산까지 끌어다 총 1만4800만개 점포의 폐업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제는 폐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한계’에 내몰리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상가임대차 계약기간이나 가맹사업 계약기간이 남아있을 경우, 적자가 쌓인다고 해서 마음대로 장사를 접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현숙(57)씨는 요즘 가게 문을 열지도 닫지도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손님이 급감해 일하던 직원도 내보냈지만 매출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차라리 장사를 접고 싶지만 임대기간이 5개월 남아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오씨는 “매달 2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마저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장사를 할 수도 없고 접을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용산구 후암동에서 소매점을 운용하는 박기웅(48)씨는 가게 계약기간을 남겨두고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손해를 볼 바에 임대료를 보증금에서 차감하더라도 장사를 접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중은행에서 사업자 자격으로 받은 코로나19 관련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박씨는 “1000만원을 대출받아 임대료와 생활비로 끌어다 썼다”면서 “원금을 못 갚아 폐업도 못하고 있었는데 더 버티기 어려웠다”고 한탄했다. 

폐업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소상공인진흥공단 관계자는 “사업자대출(정책자금)을 받고 폐업할 경우 일시 상환하는 게 원칙이지만, 연체 이력이 없는 경우 상환을 유예해주고 있다”면서 “시중은행 대출 건에도 이런 지침을 준용하고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폐업 지원금을 신청한 자영업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폐업 지원금을 신청한 자영업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한편에선 자영업자가 폐업도 못하고 버티는 게 ‘퇴로’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자영업자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폐업 이후 업종 전환이나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버티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썬 정부의 정책자금이 자영업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들어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정부가 경제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위해 지난 5월부터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일시적으로나마 자영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분석이 많다. 통계청은 “2~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폭으로 감소한 소매판매액이 5월 반등했다”면서 “재난지원금 효과 등으로 숙박·음식점업, 이ㆍ미용 개인서비스업 등 소매점 판매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7월 24일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 속보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2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3.3% 감소하며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민간소비는 오히려 되살아났다. 2분기 민간소비는 전 분기 대비 1.4% 증가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1분기 민간소비가 –6.5%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긴급재난지원금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6월까지 풀린 긴급재난지원금이 11조원가량이다”면서 “재난지원금이 소비에 활용되거나 이전 소비를 대체하면서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극약처방만큼 중요한 장기 대책

실제로 신용ㆍ체크카드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9조5866억원)의 경우 6월 2일까지 64.2%(6조1553억원)가 소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기홍 회장은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소비처를 한정하고 단기간 내(8월 31일까지) 모두 사용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자영업 시장에 일시적으로 활력을 줬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진 이런 극약처방이 자영업자에 필요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지원책이 급한 불 끄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영업계 과밀, 퇴로의 부재, 기울어진 운동장 등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자영업계에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벼랑 끝 자영업자들을 위한 장기대책이 긴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정부 정책이 일시적인 지원책에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자영업 시장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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