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처벌 규정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데다, 불법 촬영물을 시청·공유하는 것을 ‘놀이문화’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년간 ‘손정우 사건’ ‘n번방 사건’ 등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관련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자를 엄벌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제 디지털 성범죄자에게 무거운 처벌을 적용하는 것만 남았다.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이 개정 · 시행됐지만 갈 길은 멀다. 사진은 출소하는 디지털 성범죄자 손정우.[사진=뉴시스]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이 개정 · 시행됐지만 갈 길은 멀다. 사진은 출소하는 디지털 성범죄자 손정우.[사진=뉴시스]

“한국 검찰은 너무 허기져 달걀 18개를 훔친 남성에게 1년 6개월 실형을 구형했고, 세계 최대 아동 음란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도 같은 형량을 받았다.” 지난 7월 6일 영국 BBC의 로라 비커 서울 특파원은 자신의 SNS에 이런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한국 법원이 다크웹(dark webㆍ특정 브라우저로만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에서 아동 성착취물 거래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데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참고: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요구했다.] 

한국 법원 측은 ‘손정우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송환 불허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손정우가 미국으로 인도돼 처벌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미국에서 처벌받을 경우 최소 징역 50년에서 최대 200년까지 징벌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 재판부가 손정우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쨌거나 손정우는 미국 법원에 불려가지 않게 됐고 지난 6일 만기 출소했다. ‘솜방망이 처벌’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률(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지난 6월 25일 시행됐다는 점이다. 지지부진하던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탄 건 지난 2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대중을 경악하게 한 n번방 사건의 주범 ‘갓갓’ 문형욱의 수법은 이랬다. 그는 트위터 ‘일탈계(일탈 행위를 하는 계정)’에 올라온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수사대입니다.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신고됐으니 링크를 통해 진술하십시오”라는 메시지와 해킹 링크를 보냈다. 링크를 통해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고 신상정보를 알아냈다. 이후 문형욱은 “부모나 가족, 학교에 알리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해 나체사진이나 음란 동영상을 강제로 찍게 했다. 

또다른 가해자 ‘박사’ 조주빈은 메신저 등에 ‘스폰 알바 모집’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 ‘데이트 아르바이트 모집’ 등의 글을 올려 피해자를 유인했다. 그리고 피해자들로부터 얼굴이 나온 나체사진 등을 받아내 이를 빌미로 협박을 이어갔다.

피해자들로 하여금 음란한 행위, 굴욕적인 표정, 수치스러운 행동 등을 촬영하도록 조종했다. 조주빈은 해당 동영상을 n번방에 유포했다. n번방에 입장한 1만~3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동영상을 시청했다. 박사방의 경우 피해자가 74명에 달했고 이중 아동·청소년 등 미성년자가 16명이나 됐다. 

24시간 출구 없는 고통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엄중한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장비·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온라인상에서 제작·유포되는 형식의 범죄를 말한다. ‘온라인 성폭력’이나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문제는 그 수법이 더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부터 정보통신망을 통한 음란물 유포, 모욕, 명예훼손, 범죄사용 목적 불법촬영, 배포, 판매, 소비, 소지까지 디지털 성범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끔찍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익명성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성범죄가 끔찍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익명성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피해자는 24시간 내내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또 전파속도가 워낙 빨라 음란물 등이 한번 유포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어디까지 유포됐는지 파악조차 어렵고, 온라인상에 영원히 남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피해자의 주변인부터 피해자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될 수 있다는 점도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디지털 성범죄가 이처럼 끔찍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원인은 뭘까. 첫째 ‘익명성’이다. 숨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도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주빈은 현실 세계에선 NGO(비정부기구) 단체에서 장애인지원팀장을 맡아 활동했고 재활원ㆍ보육원ㆍ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오프라인 상에선 선량한 시민으로, 온라인 상에선 끔찍한 가해자로 쉽게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디지털 성범죄 등 사이버 폭력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수만명의 사람이 참여해 성 착취물을 공유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데 가담했다. ‘남들이 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피해자를 직접 보는 게 아니니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성범죄를 놀이문화처럼 여기다 가해자로 전락한 셈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법은 이들을 제대로 엄벌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불법 촬영물 등을 단순 시청만 해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4항에는 “불법 촬영물 등을 소지, 구입, 저장, 시청한 자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불법 촬영물을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불법 촬영물 제작ㆍ유포를 조장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불법 촬영물 등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금전 지급, 음란행위를 강요해도 경미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던 점도 보완했다. 이제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할 경우 1년 이상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다. 강요나 공갈을 했을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3)에 처해진다.

‘딥 페이크(deepfake)’를 처벌할 규정도 생겼다. 딥 페이크란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ㆍ음성 등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합성ㆍ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딥 페이크를 제작ㆍ유포하는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 2)에 처해진다. 

이번엔 솜방망이 처벌 끝날까 

또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신체를 촬영했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유포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을 받을 수 있다. 이제 디지털 성범죄자를 엄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면 개정안도 ‘종이호랑이’에 그칠 수 있다. ‘제2의 n번방’ ‘제2의 손정우’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디지털 성범죄가 일종의 가십거리나 놀이문화가 아니라 무서운 범죄라는 인식을 갖는 게 먼저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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