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 일본어판
더스쿠프 5년 전 단독보도와 그 후 이야기  

정부 최초 일본군 위안부 구술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의 일본어판 발간 작업이 5년 만에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이 구술집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제작이 중단됐다. 이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기 직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의 제작은 왜 중단됐던 걸까. 5년 전 더스쿠프(The SCOOP)의 기록을 다시 살펴봤다. 

「들리나요」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구술이 생생히 담겨있다.[사진=뉴시스]
「들리나요」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구술이 생생히 담겨있다.[사진=뉴시스]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이하 「들리나요」)의 일본어판版 발간 작업이 다시 추진된다. 행정안전부 산하의 공익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최근 멈춰 있던 일본어판 제작에 다시 착수했다”면서 “올해 안에 일본어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들리나요」는 2013년 2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발간한 자료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의 구술 기록을 정리했다.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최초의 위안부 구술기록집이란 점에서 「들리나요」의 의미는 상당하다. 피해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소중한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들리나요」의 발간 작업은 순조로웠다.

2014년엔 일본어판 번역작업을 완료했고, 이듬해 1월엔 영문판을 미국 현지에서 발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본어판의 작업은 2015년 돌연 중단됐다. 당시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밝힌 중단 이유는 ‘감수비용 400만원 부족’이었다. 

이 이슈를 독점 발굴한 더스쿠프는 2015년 5월 「들리나요」 일본어판 제작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자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응답했다. “7월부터 일본어번역본평가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순차적으로 일본어판의 발간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끝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본어판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발간 주체 대일항쟁조사위원회는 2015년 12월 31일부로 활동을 중단했다. 공교롭게도 이는 한ㆍ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두고 “쌍방간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불가역적 합의’를 맺은 시기와 맞물린다. 「들리나요」 일본어판이 발간되지 않은 결정적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일본어판 발간 작업에 다시 시동이 걸린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예전엔 정부 차원의 사업이었는데, 지금은 공익법인 주도 사업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특별법으로 만들어졌던 대일항쟁조사위처럼 권한이 집중된 위원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반발이 거셀 가능성도 높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 맺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긴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합의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 문제를 들먹이면서 발간 작업에 발목을 잡을 게 뻔하다. 무엇보다 「들리나요」가 국내 대중에게도 낯선 자료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배경을 이해한 후에, 2015년 5월 보도된 더스쿠프 기사를 다시 읽어보자. 뼈아픈 ‘400만원의 촌극寸劇’을 보도한 특종이었지만 세상에서 잊힌 기사다. 보도 시점은 2015년 5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되기 전이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과 김정덕 기자가 취재했다. [※참고 : 당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시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더스쿠프는 2015년 5월 「들리나요」 일본어판 제작을 촉구하는 기사를 작성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더스쿠프는 2015년 5월 「들리나요」 일본어판 제작을 촉구하는 기사를 작성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더스쿠프 통권 143호 2015년 5월 25일자 기사]
위안부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일본판 없는 이유
“국무총리 소속 지원위원회, 400만원 없다며 제작 중단”


올 1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2명의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이하 들리나요)」 영문판版이 미국 현지에서 발간됐다. 이 구술집을 만든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미국은 일본에 큰 영향을 행사하는 국가이므로 (이 영문판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들리나요」 일본어판은 발간작업이 중단된 지 오래다. 왜일까. 답은 충격적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2명의 절규가 담긴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이하 「들리나요」)」의 일본어판版 발간작업이 예산부족, 복잡한 승인절차 등을 이유로 중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들리나요」를 일본어로 번역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보고회-일본어 번역협력위원회(이하 번역협력위원회ㆍ일본 소재)’ 이양수 공동대표(재일교포)는 “위안부의 뼈아픈 한과 현실을 일본 내에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들리나요」의 일본어 번역작업을 마무리했지만 헛수고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2013년 2월 발간한 「들리나요」는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최초의 구술기록집이다. 다른 구술기록집(14권)은 정부로부터 ‘채록採錄(필요한 자료를 모아 적거나 녹음함)’을 의뢰 받은 민간단체가 만들었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 측이 「들리나요」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유다. “… 일본의 우경화로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발간된 이번 구술기록집은 위안부 피해실태 조사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2013년 2월 27일 발간 보도자료 중 일부).”

「들리나요」의 일본어판 발간작업은 2014년에 시작됐다. 이양수 번역협력위원회 공동대표가 그해 6월 번역을 마쳤고, 그 원고를 대일항쟁조사위원회에 전달했다. 

번역협력위원회는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33권, 자료집 1권, 구술기록집 15권 총 49권의 번역을 담당한 검증된 곳이다. 이중 「일본 나가사키현 사키토정 기재 조선인 사망자 문제 진상조사」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 포로문제 진상조사」 등 보고서 2권은 인쇄ㆍ출판ㆍ배포됐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조선인 원폭피해에 대한 진상조사-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올해 8월 중 배포될 예정이다.

특히 「들리나요」를 손수 번역한 이양수 공동대표는 1994년 6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당시 일본 총리 하타 쓰토무羽田 孜와 만났을 때 통역을 맡았던 이다. 일본 지바현千葉縣에선 한국인 수용자의 통역을 20년 넘게 담당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 검정시험 1급에도 합격(1997년 6월)했다. 이는 「들리나요」 일본어판에서 오역誤譯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신뢰 때문인지 대일항쟁조사위원회도 「들리나요」 일본어판 출판작업에 서둘러 착수했다. 2014년 9월 23일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한 실무자가 이양수 공동대표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자. 

“… 번역을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내용과 뉘앙스가 어려워 번역에 노고가 크셨다고 들었습니다. 번역문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감수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간부회의에서 일본에서 감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습니다. … 감수비용은 400만원이고, 감수자는 2명 이상입니다. 만약 감수자가 2명이라면, 1인당 200만원의 감수비를 드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 감수자로서 적절한 분을 선정해 주시면 어떨지요.” 

이에 따라 이양수 공동대표는 2014년 10월 번역협력위원회 공동대표 중 한명인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씨의 추천을 받아 나고야 주쿄대中京大 A교수에게 감수를 의뢰했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들리나요」 일본어판 발간작업은 2015년 들어 제동이 걸렸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번역협력위원회 측에 예산부족을 이유로 ‘발간작업 중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들리나요」 일본어판의 감수ㆍ인쇄비용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실무자가 2015년 1월 12일 이양수 공동대표에게 보낸 두번째 이메일을 보자.

“… 지난해 구술기록집(「들리나요」)의 감수를 부탁드렸는데, 예산(400만원)을 집행하지 못하고 마감돼 올해엔 사용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올해 위안부 구술기록집 감수비용을 제공해 드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감수비용은 물론 인쇄비용도 확보하지 못해 작업 진행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우리 위원회는 한시 조직이라서 연장이 필요한데, 그 (연장) 과정에서 감수비용 400만원이 예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발족된 대일항쟁조사위원회는 2012년 12월 31일(1차), 2013년 6월 30일(2차), 2013년 12월 31일(3차), 2015년 6월 30일(4차) 등 총 네차례 연장됐다. 이에 따르면 4차 연장 단계에서 ‘감수비용 400만원’이 자취를 감춘 듯하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들리나요」 일본어판 발간작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행정자치부와 총리실이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일을 추진하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 말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운영비는 연 76억원(2015년 기준ㆍ행자부 예산)이다.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를 위한 보상금까지 포함하면 한해 예산은 276억원에 달한다. ‘4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들리나요」 일본어판 발간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수용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들리나요」 영문판은 진통 없이 발간

실제로 「들리나요」 일본어판의 발간작업이 중단된 건 ‘예산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출판사 ‘창사사創史社’가 「들리나요」 일본어판의 감수ㆍ인쇄비용을 지원하기로 했음에도 대일항쟁조사위원회 측은 ‘발간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5년 3월 29일 대일항쟁조사위원회 실무자가 이양수 공동대표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을 보자. “… 일반출판사가 발간해 판매할 경우에 구술자들에게 사례謝禮를 해야 하는 점이라든가 위원회가 정부여서 발간을 위탁하는 절차를 별도로 밟아야 하는 점 등 여러 복잡한 점이 있어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발간불가’ 이유를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들리나요」 일본어판은 비매품이어야 한다. 이 구술기록집을 유가有價로 팔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판매 인세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드려야 하는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예산이 없어 발간을 못하겠다더니, 비용을 댄다니까 비매품이라며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양수 공동대표는 “「들리나요」 일본어판은 작은 발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할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들리나요」 영문판 「Can you Hear Us? : The Untold Narratives of Comfort Women」은 2015년 1월 순조롭게 발간됐다는 점이다.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한인 사회적기업 ‘미디어 조아(Media Jo ha Ltd)’가 번역ㆍ발간했는데, 대일항쟁조사위원회는 총 상금 1000달러(대일항쟁조사위원회 500달러 부담)를 걸고 ‘영문판 제목 공모전’을 개최할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들리나요」 영문판 출판 당시 대일항쟁조사위원회는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 미국은 일본에 큰 영향을 행사하는 국가이므로 미주에서의 인식 확산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2015년 1월 5일 보도자료 일부).”

「들리나요」가 ‘일본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에선 별문제 없이 발간된 반면 전범국戰犯國 일본에선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들리나요」 영문판은 ‘미디어 조아’가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발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들리나요」 일본어판은 ‘공짜’가 아니라서 못 만들었다는 건데, 언급했듯 부족한 초기 비용은 고작 400만원이었다. 비극悲劇만큼 뼈아픈 ‘400 만원 촌극寸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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