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도의 오해와 진실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건 쉽다. 언뜻 허점투성이 복지제도로 보이기 일쑤라서다. 하지만 제대로 파고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필자는 우리 국민들의 생계나 소비를 기본소득으로 뒷받침할 때가 언젠가는 오리라 믿는다. 그때 가서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 지금부터 논의해 두는 건 어떨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기본소득제도의 갑론을박을 따져봤다. 김의철 경제칼럼니스트가 주장을 펼쳤다. 

국민들의 생계나 소비를 기본소득으로 뒷받침해야 할 때가 언젠간 올 것이다.[사진=뉴시스]
국민들의 생계나 소비를 기본소득으로 뒷받침해야 할 때가 언젠간 올 것이다.[사진=뉴시스]

‘기본소득’ 도입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아쉬운 면이 많다. ‘기본소득 제도가 옳다, 그르다’식으로 평가하는 데 그치고 있어서다. 여야간 ‘현금 퍼주기 경쟁’으로만 비치기도 한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돈을 퍼주는 제도’로 이해하는 국민도 많다. 

이 때문인지 기본소득을 둘러싼 오해도 많다. 예컨대,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는 이들이 있다. 잘못된 표현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지급 대상이 ‘가구’란 점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기본소득과 다른 이유다. 

이런 면에서 모든 도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한 경기도가 기본소득제도와 가깝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으로 이름을 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경기도 역시 기본소득제도의 여러 조건 중 ‘모두에게 준다는 조건’ 하나만 충족했을 뿐이다. 

필자는 인류가 언젠가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제도 속엔 굉장히 복잡한 경제시스템이 숨어 있다. 이 때문에 더 깊이 있는 논의와 이해가 필요하다. 오해와 비판을 하나하나 푸는 것도 의미가 크다.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보자.  

■기본소득은 공산주의 = “아무것도 안하는데 돈을 주는 건 공산주의나 다름없다.” 기본소득을 향한 대표적인 비판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제창하는 전문가의 설명은 다르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건 헌법이 제시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국가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권리의 일환으로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본소득은 공산주의제도’란 지적은 옳지 않다. 공산주의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심이 없다. 북한도 배급을 제대로 못한 지 수십년이 흘렀다. 

꼭 일을 해야만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기본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저 노동의 대가일 뿐이다. ‘일하지 않으면 굶으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공산주의에 더 가까운 발상이다. 

물론 기본소득을 지원해주면 놀고먹는 베짱이만 양산할 것이란 비판도 있다. 동의하는가. 그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지자체와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받았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가. 재난지원금이 ‘공돈’이라는 생각에 허투루 썼는가. 

재난지원금 지급은 기본소득을 흉내낸 실험이었지만, 대다수의 국민의 숨통을 틔워주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건 분명하다. 이렇듯 기본소득은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주는 소득이다. 추가소득은 각자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취해야 한다. 

■세금 폭탄 터질 텐데 = 이번엔 기본소득을 향한 가장 거센 비판을 들어보자.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는가. 기본소득을 주느라 세금이나 정부부채가 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아닌가.” 물론 현금을 준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제도는 재원 문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지금이라고 세금이 줄었거나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는가. 아니다. 올해 중앙정부에 책정된 본예산만 해도 512조3000억원이다. 내년엔 600조원을 넘게 쓸 계획이다. 지방정부 예산과 공공기관 예산까지 더하면 공공부문의 전체 예산은 1000조원에 육박한다. 이중 복지 관련 예산만 200조원가량이다. 

이런 예산 대부분이 국민들의 삶의 안정을 주기 위해 쓰인다. 반면 전국민에게 매달 10만원의 기본소득을 줄 때, 필요한 예산은 연간 60조원 수준이다. 재원 문제에 부딪혀 제도 도입을 결사반대해야 할 만큼 기본소득이 허무맹랑한 일일까. 

이런 비판의 근거는 모두 산업자본주의에 기반한 것이다. 기업은 좋은 제품 만들어서 잘 팔고, 가계는 열심히 일해 아껴 쓰고 저축하다 보면 경제가 성장할 거란 이상론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제도의 전제는 다르다. ‘사회신용론’이란 경제 이론이 바탕이다. 

복잡한 이론이지만 최대한 간단히 설명해보자. 이 이론을 만든 경제학자 클리포드 더글러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노동자가 기업에서 임금 급여를 받더라도, 그것으로는 절대 기업이 생산한 제품 모두를 구매할 수 없다.” 당연한 얘기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인건비뿐만 아니라 각종 투자비용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건비의 합은 기업의 매출의 합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기업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물건을 사줄 사람이 필요한데, 인건비로는 이 물건을 모두 살 수 없어서다. 현실 경제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준 게 바로 부채다. 국가든 가계든 구분할 것 없이 우리는 부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부채는 무한정 늘릴 수 없다. 결국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본소득이 곧 기본권 보장”

지금의 청년 세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집 한 채를 구하기 어렵다. 반면 공공부문 예산이 1000조원에 이르는 나라에서 100조원만 있어도 시행이 가능한 기본소득제도는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확보해 준다. 기본소득을 발판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 다시 정부의 세수기반이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도 형성될 수 있다. 

일부의 우려처럼 기본소득제도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고 있다. 약자를 보듬고 미래사회에 다가서는 정책 대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누가 더 많이 줄지 환상만 키우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공산이 크다.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하자. 지금이 그 타이밍이다. 

글 = 김의철 경제칼럼니스트 
dosin4746@naver.com 

정리 =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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