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9단 김영호의 유통 트렌드 | 벤&제리스의 정의 경영학

“진실과 정의를 팔아라.” 요즘처럼 경영활동하기 힘든 시기에 이런 격언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간신히 만든 제품도 팔리지 않는 세상에 웬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며 비판하는 이가 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란 바이러스가 시장을 휩쓸었든 그렇지 않든 시장의 트렌드는 바뀐 지 오래고, 기업 CEO라면 그 트렌드를 좇아야 한다. ‘진실과 정의를 파는 기업’이 승리하는 현장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아이스크림업체 벤&제리스는 사회정의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기업으로 유명하다.[사진=벤&제리스 홈페이지]
미국 아이스크림업체 벤&제리스는 사회정의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기업으로 유명하다.[사진=벤&제리스 홈페이지]

미국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벤&제리스(Ben&Jerry’s)를 아는가. 이 업체는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경영전략과 마케팅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핵심은 ‘진실과 정의는 이긴다’이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벤&제리스’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벤 코헨(Ben Cohen)과 제리 그린필드(Jerry Greenfield)가 1978년에 창업했다. 벤 코헨은 수공예를 좋아했고, 제리 그린필드는 의사를 꿈꿨다. 이랬던 두 사람이 아이스크림에 빠진 계기는 1977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진행한 독특한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대량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유기농 우유와 방목란 등으로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거였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두 사람은 이듬해 5월 5일 1만2000달러를 투자해 미국 북동부 버몬트주 벌링턴에 매장을 열었다. 가족을 위한 맛과 영향을 갖춘 아이스크림이 탄생하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이는 지역 대기업 아이스크림 업체 ‘필즈버리’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대기업이 작고 꼴 보기 싫은 업체를 그냥 둘 리 만무했다. 필즈버리는 중간상에게 벤&제리스의 아이스크림을 취급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유도 모른 채 시장을 빼앗긴 벤&제리스는 흥분했다. 대기업에 피해를 본 다른 중소기업처럼 소송을 고려했다. 하지만 벤&제리스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고객에게 그들의 진실을 보여주기로 했던 거다. 이를테면 여론전이었다.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도우보이(필즈버리의 마스코트 인형)는 세상이 두렵지 않은가’란 피켓을 만들어 필즈버리 본사 앞에 섰다. 같은 내용의 대형 스티커도 거리에 붙였다. 아이스크림 포장상자에도 똑같은 문구와 함께 800번 전화서비스 안내를 기재했다. [※참고 : 800번은 농가보존 후원 무료전화번호다. 벤&제리스가 지역 양농업자와 함께 ‘착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걸 우회적으로 광고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벤&제리스의 전략은 통했다. 고객들 사이에서 ‘착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이를 발판으로 벤&제리스는 필즈버리의 공격을 이겨냈다. 그 원동력은 앞서 언급했듯 ‘진실과 정의는 이긴다’였다. 이후에도 벤&제리스는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섰다. 1990년대 초, 자신들의 공장이 있던 버몬트 지역의 우유 가격이 폭락하자, 지역 축산농가를 위해 우유를 더 비싸게 공급받은 사례는 대표적이다. 1985년부턴 벤&제리스재단을 설립해 세전이익의 7.5%를 지역사회에 환원했다.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도전

아울러 국방예산의 1%는 평화를 장려하는 프로젝트나 활동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 ‘평화를 위한 1%’의 설립을 지지하기도 했다. 벤&제리스는 2000년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됐지만, ‘진실과 정의는 이긴다’는 철학은 이어지고 있다. 유니레버 측이 벤&제리스의 미션을 지킬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벤&제리스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 [※참고 : 지난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다. 당시 경찰의 무릎 밑에 깔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의 진압은 8〜9분여 지속됐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선 경찰의 강제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들이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을 보자. “우리 벤&제리스 직원들은 너무 화가 납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흑인 한명을 살해한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소리 높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인의 피해자와 함께 서야 합니다. 피부색 때문에 억압하는 자들을 향해 말입니다. 우리는 백인우월주의를 철저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놀랍게도 벤&제리스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우리는 그 방법으로 4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대통령과 의회 등은 사과할 것. 둘째, 1619년부터 이어진 흑인 차별의 부정적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법률안을 통과시킬 것. 셋째,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국가적 태스크포스를 만들 것. 넷째, 법무부는 시민권리 관련 부서를 통해 유색인종의 권리를 보호할 것.” 

한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들의 이름을 그려넣은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
한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들의 이름을 그려넣은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런 용감한 행동 덕분인지 벤&제리스는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IT기업의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창업 이후 이익만을 좇는 회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우선으로 여기는 회사라는 걸 끊임없이 호소하고, 실천한 결과다. 

이는 벤&제리스의 사례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공헌활동(CSR)을 활발하게 펼치는 기업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건 정설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착한 소비’와 관련한 설문조사(2017년)를 실시한 결과, 전체 10명 중 9명(90.8%)은 ‘자신의 소비가 남을 돕는 데 쓰이는 것이 뿌듯하다’고 답했다. 

착한 소비 즐기는 소비자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려는 소비태도 역시 뚜렷했다. 응답자의 83.0%는 ‘소비할 때 기업의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동의했고, 68.9%는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려는 기업의 제품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 설문조사는 우리나라의 기업이 벤&제리스의 사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아마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거다. “사회적 운동에 적극 동참하시라. 기업가정신을 보여주시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동체에 기업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정책도 유지하시라. 사회와 함께 기업을 키우시라.”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 더스쿠프 전문기자
tiger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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