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착시’ 통계는 이면을 보지 못했다 

경기침체와 코로나19 여파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계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만 보면 자영업자의 사업소득 수준은 분명 좋아졌다. 자영업계의 현실과 통계가 다른 이유는 뭘까. 자영업자가 엄살을 피우는 걸까. 자영업자의 현실은 정말 좋아진 걸까. 결과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통계청의 주장대로 자영업자 소득이 정말 늘었는지 분석해 봤다. 

자영업자 사업소득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하지만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생긴 착시일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자영업자 사업소득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하지만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생긴 착시일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통계와 현실엔 간극이 생기게 마련이다. 주로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르거나 표본이나 평균치가 전체를 대표하지 못할 때 그런 현상이 도드라진다. 다소 부정적인 간극도 있다. 통계의 일부분만 봤을 때 생기는 착시현상에서 비롯되는 경우다. 아쉽지만 통계청이 지난 1분기에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사업소득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통계청은 가계의 소득ㆍ지출 등을 조사해 매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가계 재정과 경기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통계로 꼽힌다. 그중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주목을 받는 지표 중 하나가 사업소득이다. 자영업자의 ‘벌이 수준’을 말해주는 사업소득을 통해 자영업계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최근 가계동향조사의 사업소득 통계는 좋지 않았다. 2018년 4분기 이후 줄곧 감소세(전년 동기 대비)를 그렸다. 올해 전망도 부정적이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자영업계를 덮쳤으니 좋을 리 없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영업계의 곡소리도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지난 5월 21일 발표된 올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통계청은 2인 이상 비농림어가(이하 같은 기준) 전체 가구의 사업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양量만 그런 게 아니었다. 소득의 질質도 좋았다. 영세 자영업자는 소득이 늘고, 고소득 자영업자는 사업소득이 줄었다. 

전체 가구는 소득 수준에 따라 1분위(소득 하위 20%)부터 5분위(소득 상위 20%)까지 나뉘는데, 소득이 낮은 1~3분위의 사업소득은 각각 6.9%, 4.3%, 25.2% 증가한 반면, 4ㆍ5분위는 -12.3%, -1.3% 줄었다. 소득 불균형 문제가 완화되고 있다는 시그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부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쏟아내고, 소비침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도 숱하다. 일례로 소득에서 세금 등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소비ㆍ저축을 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비성 지출’은 6.0% 줄었다. 통계청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꺾였다. 

그밖에 자영업자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지표들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최종 수요자에게 판매된 실적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같은 기간 5% 하락했다. ‘도매ㆍ소매업 생산지수’와 ‘숙박ㆍ음식업 생산지수’도 각각 3.2%, 16.3% 떨어졌다. 자영업자의 현실이 좋아졌다는 시그널을 받을 수 있는 지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정말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늘어난 게 사실일까. 통계와 현실의 체감온도 차이 때문이거나 표본이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오류 탓에 생긴 오해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영업자 개개인의 사업소득이 통계만큼 증가하지는 않았을 공산이 크다. 올 1분기 전체 가구의 사업소득이 증가한 건 가계동향조사 통계의 허점이 불러온 착시현상일 뿐이란 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먼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통계가 어떻게 나오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통계청은 약 7200가구의 표본을 뽑아 통계를 낸다. 지난 1분기 전체 가구의 사업소득이 93만7872원이라는 건 7200가구가 각각 벌어들인 사업소득의 평균이 93만7872원이라는 얘기다. 중요한 건 각 가구의 소득이 가구주ㆍ배우자ㆍ가구원 소득의 합산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 말은 가구 내에 자영업자가 많을수록 사업소득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월 100만원을 버는 자영업자 가구주 A와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가구원 B가 있는 ‘이필구(가명)씨 가구’가 있다고 치자. 이필구씨 가구의 경상소득은 사업소득 100만원, 근로소득 100만원이다. 그런데 올해 가구원 B가 퇴직을 하면서 작은 음식점을 차렸고, 월 50만원씩 벌고 있다. 그렇다면 이필구씨 가구의 경상소득은 사업소득 150만원이다. 전체소득은 줄었는데, 사업소득은 늘어난 셈이다. 

자영업자 늘면 사업소득도 증가

더스쿠프가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 1분기 사업소득이 늘어난 것도 이필구씨 가구의 사례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분기 전체 가구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한 비중은 28.7%였지만 올해 1분기엔 30.4%로 상승했다. 분위별로 보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저소득층일수록 자영업계로 내몰리는 일이 많다는 방증이다.[사진=연합뉴스]
영세 자영업자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저소득층일수록 자영업계로 내몰리는 일이 많다는 방증이다.[사진=연합뉴스]

올 1분기 사업소득이 증가한 1~3분위는 각각 15.3%→18.3%, 29.6%→30.7%, 34.4%→39.2%로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났다. 반면 4분위는 38.1%에서 34.6%로 줄었고, 5분위는 29.4%에서 31.2%로 소폭 증가했다. 통계청이 밝힌 것처럼 사업소득이 늘어났다고 자영업자의 벌이가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는 거다. 단순히 자영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사업소득 역시 증가했다고 볼 여지가 더 크다. 더 쉽게 말하면 이필구씨 가구가 주위에 많아졌다는 거다.

[※참고 :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와 마찬가지로 2인 이상 비농림어가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ㆍ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ㆍ사업소득을 올린 기타종사자를 자영업자로 구분했다. 가구마다 가구원 수가 다르기 때문에 전체 가구 수 대비 전체 자영업자 수 비율로 따졌다. 1~5분위는 가중치를 적용해 20%씩 나눴는데, 통계청의 분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이뿐만이 아니다.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위해 추출한 표본 가구는 크게 근로자가구와 근로자외 가구로 나뉜다. 가구주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임금근로자면 근로자가구, 자영업자나 무직자면 근로자외 가구다. 

그중 가구주가 자영업자인 근로자외 가구의 비중은 지난해 1분기 21.9%에서 올 1분기 22.1%로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구주의 사업소득은 66만3729원에서 66만3977원으로 248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각 가구주의 사업소득은 크게 증가하지 않거나 되레 줄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사업소득은 다른 부분에서 증가했을 공산이 크다. 그 차이를 메운 건 가구원과 임대소득이었다. 가구원 사업소득은 같은 기간 14만8142원에서 16만9712원으로 2만1570원 늘었다. 자영업에 뛰어든 가구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증가한 것처럼 보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 사업소득을 올린 가구는 전체의 35.8%에 그쳤지만 올 1분기엔 37%로 증가했다.

[※참고 : 근로자가구라고 가구원까지 근로자인 건 아니다. 가구주는 가구당 1명이지만 가구원은 다수다. 가구원 사업소득이 증가한 걸 두고 자영업자의 벌이 수준이 개선된 것으로 연결 짓긴 어렵다.] 

사업소득에는 임대소득도 포함되는데 이 부분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분기 8만8053원이었던 임대소득은 올해 1분기 9만9134원으로 1만1081원 증가했다. 이를 감안하면 부동산 임대업자들의 소득이 자영업자 사업소득 수준을 부풀려놨을 가능성도 있다. 

전체 가구의 사업소득이 늘었다고 자영업자 개개인의 벌이가 나아졌다고 보긴 어려운 이유다. 통계청 관계자 역시 “가구주의 사업소득이 줄어든 가구가 많지만 자영업자 비중이 늘면서 사업소득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직자ㆍ영세 자영업자 늘어

자영업자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1분기 대비 올해 1분기 임금근로자 비중이 2.4%포인트 하락했음에도 전체 근로소득은 1.8%(6만3734원)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졌다는 건 그만큼 취업전선에서 밀려나거나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가구주가 무직자인 근로자외 가구 비중도 지난해 1분기 19.1%에서 올해 1분기 19.2%로 근소하지만 높아졌다. 

자영업계에 뛰어드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자영업자의 생존력도 취약해지게 마련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1~3분위 영세 자영업자 비중이 대폭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자영업계를 휘감은 2분기부턴 자영업자의 현실이 더 팍팍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통계는 “자영업자의 사정이 좋아졌다”고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통계를 받아들여 ‘자영업자 소득이 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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