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원 대기자의 사람
DB號 새 선장 입체분석

지난 7월 1일 창립 반세기 만에 DB그룹(옛 동부그룹)의 경영권이 오너 2세 김남호(45) 회장에게 넘어갔다. DB호號 새 선장에 오른 그는 취임 일성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직 젊은 그가 실추된 그룹 이미지를 쇄신하고 미래 성장동력도 확보해 쪼그라든 그룹을 재건해 낼지 주목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김남호 회장의 면면을 탐구해 봤다. 

DB그룹의 새 선장 김남호 회장, 그는 김준기 창업자의 외아들이다.[사진=뉴시스]
DB그룹의 새 선장 김남호 회장, 그는 김준기 창업자의 외아들이다.[사진=뉴시스]

김남호 회장은 취임사 서두에서 대뜸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거론했다. 언뜻 인사치레 같은 말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취임에 임하는 그의 속내가 다 담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재계 10대 그룹으로 승승장구했던 DB그룹이 지난해 39위로 추락하는 가운데 취임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경영 풍파 속에서 DB호를 몰게 됐다. 그것뿐인가. 창업자인 아버지 김준기(76) 전 회장이 남겨 놓은 오너리스크 잔재도 자신이 털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주지하다시피 김 전 회장은 회장 말년에 성추문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그로 인해 자신이 보란 듯이 쌓아 올린 그룹 이미지를 훼손하고 3년간 총수 공백 사태도 초래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취임에 임하는 김 회장의 걱정이 태산 같을 것이며 무한책임과 사명감을 느끼고도 남을 것 같다. 오너 2세이자 대주주 회장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김남호 회장을 보는 재계의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한편에선 “젊고 촉망받는, 잘 준비된 회장”이라 하고, 다른 편에선 “승계 수업 기간 내내 별 특징이 안 보여 리더십에 의문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공부와 군 복무를 마치고 2009년 34세 때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한 후 11년(2009~2020년) 동안 승계 수업을 받았다. 동부제철 차장으로 4년, 동부팜한농 부장으로 2년, DB금융연구소 부장ㆍ상무ㆍ부사장으로 5년을 보냈다. 1남 1녀를 둔 김 전 회장의 외아들로 그의 경영 승계는 시간문제였다. 

“젊고 촉망받는, 잘 준비된 회장”이라며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는 DB금융연구소에 재직하며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등의 매각 작업에 깊숙이 관여해 그룹을 현재의 금융ㆍIT 중심으로 구조조정하고 부실을 정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최근엔 골치 아팠던 계열사 DB메탈(합금철 업체)의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유상증자를 이끄는 등 경영정상화에도 일조했다. 나아가 보험ㆍ금융혁신 TF를 이끌며 마케팅 다변화, 자산운용 효율화,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해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주력인 DB금융부문이 선방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DB그룹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에서 생산ㆍ영업ㆍ공정관리ㆍ인사 등 여러 가지 실무를 통해 승계 훈련을 받았다”고 옹호한다. 외부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착실하게 승계 수업을 받았고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또 UC버클리대에서 파이낸스과정도 수료해 금융 분야에 관한 한 이론적 토대가 상당하다는 얘기를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언급했듯 “승계 수업 중 그가 세간에 특별한 리더십이나 존재감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지적에는 창업자 김준기의 승계 철학이나 승계자 교육 스타일이 다른 그룹과 달랐던 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대개의 그룹 오너 회장들은 승계자를 애초부터 주요 보직이나 이슈가 되는 자리에 임원급 간부로 배치해 훈련시킨 다음 적절한 시기에 부회장ㆍ회장 등으로 승진시키며 승계 작업을 완성한다. 하지만 김준기 전 회장은 ‘외아들 김남호’를 자기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히 훈련시킨 다음 본인이 정말 물러나도 되겠다고 판단될 때에 회장직을 넘겨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남호 둘러싼 엇갈리는 시선

사실 김 전 회장은 승계에 대비해 외아들 김남호를 누구보다 엄격하게 훈련시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미국 미주리주 소도시 풀턴 소재 웨스트민스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한인이 많은 큰 도시로 유학 가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한인이 별로 없는 소도시, 그것도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승계 수업도 주요 계열사 동부제철 당진 공장에서 시작했다. 김준기 회장이 당시 동부제철을 통해 ‘한국의 철강왕’을 꿈꾸던 시기여서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승계 작업은 2017년 중대 변수를 맞는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가운데 성추문에도 휩싸이면서 회장직을 ‘외아들 김남호’가 아닌 중량급 공무원 출신 인사 이근영(83ㆍ전 금융감독원장)씨에게 넘겼다. 자신이 반세기 가까이 지켜왔던 그룹명마저 ‘동부’에서 ‘DB’로 바뀌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3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총수대행체제(전문경영인 체제)라는 과도기를 허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 이근영 회장이 나이와 체력 등을 이유로 오너 2세에게 바통을 넘기고 싶다는 뜻을 거듭 피력해 승계가 앞당겨졌다는 후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남호 선장이 모는 ‘뉴DB호’는 7월 1일 뱃고동을 크게 울리고 출항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40대 중반의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김남호는 앞으로 자신의 색깔로 빚은 술을 새 부대에 부지런히 담아나갈 것이다.

그는 취임 2주 만인 지난 7월 13일 우선 4명의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기용해 자신의 보좌진을 짰다. 세대교체 신호탄으로도 풀이됐는데 앞으로 그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을 경영하면서 ‘새 판 짜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를 통해 그는 많은 각오를 내비쳤다. “새로운 도전과 성공을 만드는 일이 ‘수성守成’ 못지않게 어렵다” “DB를 어떤 환경에서도 지속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 “기존 사업 경쟁력을 키우면서 미래 성장 발판도 하나씩 만들어 나가겠다”는 등의 말에선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는 “기업인 가문에서 태어나 경영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소개했다. 

부회장 4명 임명, 세대교체 신호탄

현재 DB그룹의 사업 구조는 금융업이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편중돼 있다. 건설ㆍ제조업 등 그룹 토대가 됐던 사업체들은 거의 모두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김 회장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사업 진출이나 인수ㆍ합병(M&A)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새 사업을 창업한다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대비해선 그에 걸맞은 디지털 경영시스템의 조기 구축도 주문했다.

그는 또 취임사를 통해 ‘경청하고 소통하는 경영자’ ‘회사와 임직원의 동반성장’ ‘기업의 사회적 역할 다하기’ 등의 다짐도 했다. DB그룹의 많은 변화를 예고한 가운데 새로운 반세기를 향해 꿈의 도전장을 내민 ‘김남호의 뉴DB호’에 큰 격려를 보내고 싶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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