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멀게 느껴지는 이유

무상급식ㆍ무상보육ㆍ무상교육ㆍ아동수당ㆍ청년수당, 심지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기본소득까지…. 이 제도들은 사회복지정책일까 아닐까. 겉으로 보면 ‘사회복지정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르면 ‘사회복지정책’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사회복지를 넘어서는 과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사회보장기본법’엔 어떤 오류가 숨어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기본소득이 그동안 멀게 느껴졌던 이유를 살펴봤다. 이정우 교수가 답을 줬다. 

기본소득 논쟁을 제대로 공론화하려면 사회보장기본법부터 손봐야 한다.[사진=연합뉴스]
기본소득 논쟁을 제대로 공론화하려면 사회보장기본법부터 손봐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참 잘 썼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이긴 했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이란 걸 난생처음 받아 써본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경제 효과도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원금은 대부분 동네마트나 식당, 길거리 점포 등에서 쓰였고, 지역 소상공인들의 매출도 늘었기 때문이다. 지원금 지급 후 소비자심리지수도 개선됐다(한국은행).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좋은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는 노릇이니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개중에는 지원금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된 걸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고, 국가 재정의 부실화를 꼬집는 비판도 있다. 정책 입안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적들임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긴급재난지원금의 등장과 함께 ‘기본소득’ 관련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도입 여부를 떠나 논의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굉장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고, 이번 논의는 그 지향점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 기본소득이란 과연 뭘까.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동일한 수준의 ‘현금급여(일종의 연금 혹은 일시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타당성과 통일성, 표준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참고 : 이런 기본 속성에다 차이점(독창성 등)이 더해지면 ‘OO기본소득’으로 부를 수 있다. 지자체들이 코로나19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해놓고 보면 기본소득에 반감이 생길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지금껏 우리가 논의해왔던 기존 사회복지정책보다 훨씬 파격적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현가능성 차원에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생각해왔던 것에 비해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거다. 

무상급식은 현행법상 사회복지정책에 속하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무상급식은 현행법상 사회복지정책에 속하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기본소득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 기본소득 역시 사회복지정책 중 하나다. 우리나라 사회보장법의 기본틀이 잘못 짜여 있어 ‘기본소득은 별난 제도’란 등식이 성립됐을 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우선 사회복지정책의 3가지 원칙부터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보험의 원칙’이다. 일반적인 보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사전에 제도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일정 기간 납부한 다음, 이 재원을 토대로 가입자들에게 특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급여를 지급한다. 대표적인 제도가 국민연금제도다. 

둘째는 ‘부조의 원칙’이다. 어쩔 수 없이 어려움을 겪는 특정 대상을 국가가 나서 도움을 줘야 한다는 거다. 가령, ‘소득 하위 70% 노인계층’을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우리나라의 기초연금제도는 이 원칙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참고 : 부조의 원칙은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필요한 만큼만 지원한다는 점에서 ‘가장 합당한 제도’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개인별로 소득이나 자산을 조사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 조사 과정에서 신청자 본인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수치심이나 갈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면 과연 ‘가장 합당한 제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사회복지’를 얘기하면 ‘부조의 원칙’부터 떠올린다.]

사회복지정책의 3가지 원칙

셋째는 ‘공급(혹은 부양)의 원칙’이다. 이는 ‘사회보상의 원칙’과 ‘보편성의 원칙’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입었거나 국민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으면 거기에 맞게 합당한 보상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보훈제도ㆍ의사상자보호제도ㆍ북한이탈주민보호제도ㆍ범죄피해자구조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별도로 국가는 경제수준과 시민사회의 성숙도에 따라 무조건적인 사회복지정책을 펼칠 수도 있는데, 이게 바로 보편성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무상급식ㆍ무상보육ㆍ무상교육ㆍ아동수당뿐만 아니라 기본소득도 여기에 포함된다. [※참고 : 이 3가지 원칙과 여기 소개한 정책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제도의 경우, 국가는 정책 입안자의 사상이나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 상황,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해 공급의 원칙이 아닌 부조의 원칙을 택할 수도 있다. 어떤 걸 선택하느냐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런 사회복지정책의 세가지 원칙을 보면, 기본소득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기본소득을 사회복지정책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해 왔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기본틀인 ‘사회보장기본법’에서 정의한 ‘사회보장’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 조항을 보자. “‘사회보장’이란 출산ㆍ양육ㆍ실업ㆍ노령ㆍ장애ㆍ질병ㆍ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소득ㆍ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 잘 보면, 두 원칙만 있고, 공급의 원칙이 없다. 

원칙 없는 사회보장기본법

그 자리에 엉뚱하게도 전술에 불과한 ‘사회서비스’를 넣었다. 그러다 보니 공급의 원칙에 입각한 무상교육ㆍ무상급식ㆍ청년수당뿐만 아니라 기본소득까지 사회복지정책에서 제외됐던 거다. 이 때문에 국가유공자보훈제도, 의사상자보호제도, 북한이탈주민보호제도, 범죄피해자구조제도 등도 현행법상 사회복지정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기본소득제도’를 더 깊숙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너무 앞서간 제도’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회복지정책의 세가지 원칙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기본’이다. 올바른 논쟁을 이어가려면 기존 법체계부터 바르게 손봐야 하지 않을까. 원칙은 뿌리다. 뿌리가 없으면 아무리 큰 나무라도 작은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글 =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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