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표 인기의 5가지 비밀

2018년 여름, 난데없이 ‘곰표’ 티셔츠가 SNS를 달궜다. 투박한 로고, 단순한 삼색을 사용한 티셔츠를 본 MZ세대는 “귀엽다” “신선하다”며 열광했다. 한정판 티셔츠는 빠르게 품절됐다. 그해 겨울 출시된 패딩도 마찬가지였다. 곰표가 SNS에서 이목을 끌자 이를 눈여겨본 기업들이 콜라보레이션을 하자며 대한제분의 앞마당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타이밍도 좋았다. 지난해 뉴트로 열풍이 유통가를 휩쓸었다. 처음부터 레트로 콘셉트를 내세웠던 곰표는 열풍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손잡을 업체도 신중히 골랐다. 밀가루를 연상시킬 수 있는 제품을 택했다.

판단은 옳았다. 콜라보 굿즈는 나오는 족족 완판 행렬을 걸었다.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았다. 업력 68년의 대한제분이 뜬금없이 곰표 브랜드 마케팅에 나선 건 ‘위기감’ 때문이다. MZ세대 중엔 곰표 밀가루를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숱했다. 이대로 가다간 미래 소비자를 놓칠 판이었다. 위기감에서 시작한 전략은 통했다.

곰표 마케팅은 MZ세대의 코드에 부합했고 대한제분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하지만 곰표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곰표 맥주를 마시고, 패딩을 입고, 팝콘을 먹는 MZ세대가 훗날 곰표 밀가루까지 구입할지는 알 수 없다. 트렌드는 잡았지만 ‘제분 업체로서 좋은 브랜드 마케팅이었을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곰표 인기의 비밀과 그 속의 한계를 분석해봤다.

대한제분인 2030세대를 타깃으로 진행한 ‘곰표’ 브랜드 마케팅은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은 곰표 밀맥주. [사진=뉴시스]
대한제분인 2030세대를 타깃으로 진행한 ‘곰표’ 브랜드 마케팅은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은 곰표 밀맥주. [사진=뉴시스]

패딩·화장품·맥주 등에 생뚱맞게 붙은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반짝 인기인 것도 아니다. 벌써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뉴트로 콘셉트와 이색 콜라보레이션을 내세우는 숱한 업체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화제다. 촌스럽고 투박한 곰표 브랜드가 유독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하얀 곰의 인기 원인을 분석해 봤다. 

숱한 업체가 먼지 쌓인 로고를 꺼내와 ‘뉴트로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소주와 AI스피커, 라면과 화장품, 치킨과 샌들 등 이종異種 브랜드간 콜라보레이션도 유행이다. 뉴트로든 콜라보든 고만고만한 제품이 쏟아진 탓에 뜨기도 전에 사장된 것도 숱하지만 빅히트 제품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다. 

68년 전통의 대한제분은 2018년부터 곰표 브랜드의 마케팅에 착수했다. 시작은 ‘위기감’에서였다. MZ세대(1980~2004년에 태어난 세대)가 중장년층과 달리 ‘곰표’하면 ‘밀가루’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기로 받아들인 대한제분은 2030세대를 타깃으로 곰표를 알리기로 했다. 

먼저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 ‘곰표 레트로 하우스’를 열고 연습장·메모지·에코백 등 각종 굿즈를 선보였다. 곰표 밀가루의 옛 패키지 디자인을 적용한 뉴트로풍 굿즈였다. 살포시 미소 짓는 곰 캐릭터 ‘표곰’과 투박한 글씨의 조합은 ‘뜻밖의 귀여움’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한제분은 2018년 여름 의류업체 4XR과 손잡고 곰표 반팔 티셔츠를 한정 출시했다. 밀가루 포대를 재치 있게 표현한 티셔츠는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그해 겨울엔 하얗고 투박한 곰표 패딩 점퍼를 냈고, 인증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곰표를 향해 콜라보 제의가 쏟아졌다. 대한제분과 손을 잡은 곳은 CGV·스와니코코·LG생활건강·애경산업·세븐브로이·CU 등이다.

CGV는 20㎏짜리 곰표 밀가루 포대에 팝콘을 담았다. 스와니코코는 쿠션 팩트·선크림·핸드크림에, LG생활건강은 주방세제 ‘자연퐁’에, 애경산업은 2080 ‘뉴샤이닝 화이트’ 치약에 곰표 BI를 입혔다. 최근 화제가 된 건 지난 5월 편의점 CU와 맥주 제조업체 세븐브로이와 함께 선보인 ‘곰표 캔맥주’다. 곰표 캔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 10만개가 동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궁금한 게 있다. 뉴트로 콘셉트에 이색 콜라보를 시도한 업체가 한둘이 아닌데, 왜 곰표의 인기만 솟구친 걸까. 무엇보다 마케팅의 타이밍이 좋았다. 2018년은 뉴트로 열풍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60살이 넘은 브랜드에 레트로 콘셉트를 내세운 것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고, 이듬해 뉴트로 트렌드가 유통가를 휩쓸면서 곰표 브랜드는 승승장구했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일수록 과거 ‘좋았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이 통한다”며 “경기 침체로 레트로 열풍이 쉽게 식지 않는 상황이어서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했다. 

재밌지만 너무 뜬금없지 않게

오래된 브랜드 곰표가 ‘낯설지만 재밌는’ 뉴트로의 속성과도 맞아떨어졌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는 “요즘에는 ‘○○표’라고 명명하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며 입을 열었다. “단순 투박한 디자인에 처음 보는 브랜드라는 점이 남들과 달라 보이고픈 MZ세대의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사진 찍고 인증하는 SNS 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유는 또 있다. 콜라보를 할 때 곰표 브랜드와 정체성이 맞는 업체를 택한 것이 시장에 통했다. 대한제분 측은 “콜라보를 했을 때 브랜드 인식 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곳과 손을 잡았다”며 “소비자가 곰표는 밀가루 브랜드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의류·화장품·생활용품 등은 밀가루와는 무관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의류업체 4XR과 출시한 티셔츠는 빅사이즈 제품으로, 곰의 듬직함과 커다란 밀가루 포대를 연상시켰다.

곰표 콜라보 제품은 ‘치약’ ‘주방세제’처럼 다소 뜬금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밀가루를 떠올리게 하는 제품과 콜라보를 한 것이 효과를 냈다. [사진=애경산업 제공]
곰표 콜라보 제품은 ‘치약’ ‘주방세제’처럼 다소 뜬금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밀가루를 떠올리게 하는 제품과 콜라보를 한 것이 효과를 냈다. [사진=애경산업 제공]

충전재를 빵빵하게 채운 흰색 패딩도 마찬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스와니코코와 애경산업은 각각 하얀 밀가루를 떠오르게 하는 미백 기능성 화장품과 치약을 출시했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곰표 치약을 편의점 한정상품으로 출시했다가 여러 유통채널로 확대했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며 “밀가루와 치약이라는 재밌는 조합이 MZ세대의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설거지할 때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LG생활건강 측은 “자연퐁과 밀가루가 깨끗한 설거지를 하도록 도와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곰표 자연퐁은 편의점에 입점한 지 얼마 안됐을 때도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윤 건국대(경영학과) 교수는 “재밌으면서도 너무 뜬금없지 않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며 “밀맥주 등은 제품 자체로도 궁금증을 유발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곰표가 ‘이미지 마케팅’에만 힘을 쏟은 건 아니다. 만족스러운 품질도 곰표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예컨대, 스와니코코의 ‘곰표 밀가루 쿠션 팩트’는 한정판으로 출시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품절돼 재생산에 들어갔다. 세븐브로이가 만든 곰표 맥주는 밀맥주라는 특징에 가벼운 맛과 달콤한 향으로 지지층을 형성했다. 덕분인지 출시 일주일 만에 30만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호기심에 구입했던 이들이 품질에 만족해 재구매한 결과였다. 
 

 

BI와 캐릭터의 범용성이 좋은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곰표 브랜드 특유의 세가지 색상(흰색·노란색·초록색)과 투박한 폰트는 레트로 감성을 살리면서도 어느 제품에나 깔끔하게 적용하기 좋았다. [※ 참고 : 곰표의 색깔은 지난해부터 흰색에서 민트색으로 바뀌었다.] 푸근한 인상의 표곰은 과하게 귀여움을 강조하지 않아 그 자체로 훌륭한 패턴이 됐다. 곰 캐릭터가 주는 친숙함 덕에 남녀노소 어느 소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곰표의 인기가 금방이라도 식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미를 강조하는 마케팅은 브랜드가 아니라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든다는 거다. 제분업체로서의 브랜딩 전략엔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박재현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곰표 마케팅은 현재 시대상엔 맞지만 파워 브랜드를 만드는 롱텀 마케팅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콜라보도 능사는 아니다. 화장품·패딩·맥주 등이 밀가루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단박에 맞히긴 힘들지 않나. 본업(제분)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소비자가 콘텐트를 유희적으로 소비하는 이상 새로운 브랜드에 밀리는 건 시간문제다.” 한껏 뜰 만큼 뜬 곰표는 또 어떤 선택을 할까. 곰표의 브랜드 마케팅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