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종목 20년의 변화

주식투자에서 장기투자처로 꼽히는 것은 우량주다. 우량주는 시가총액이 크고 기업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우량주의 위엄도 산업구조의 변화 앞에서는 무색했다. 산업 구조가 제조업에서 4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과거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순위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가도 하락세를 탔다. 장기투자의 원칙도 산업구조의 변화는 당해내지 못했다.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4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증시 주도주도 변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누구나 알고 있는 주식투자의 제1원칙은 ‘장기투자’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1996년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10년 동안 주식을 소유할 생각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는 말로 장기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투자자가 장기투자 대상으로 주로 선택하는 건 대형주다. 일반적으로 시가총액이 크고 거래량이 많은 종목을 우량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덩치가 크고 안정성이 높아 장기투자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장기투자는 코스피 시장에서도 통했을까. 2000년과 2010년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투자성적표를 살펴보자. 
2000년 6월 30일 기준 코스피 시장 시총 상위 10개 종목은 삼성전자·SK텔레콤· KT(옛 한국통신공사)·한국전력·SK하이닉스(옛 현대전자)·포스코(옛 포항제철)·KT&G(옛 담배인삼공사)·삼성전기·KB금융지주(옛 국민은행)·LG유플러스(옛 데이콤) 등이다. 이 가운데 인수·합병(M&A)으로 2000년 주가를 확인할 수 없는 KB금융지주와 LG유플러스를 제외한 8개 종목의 투자 수익률을 분석했다(수정 주가 기준). 비교 시점은 2010년과 2020년 6월 30일이다.

시총 순위의 변화만큼이나 투자성적표도 크게 엇갈렸다. 8개 종목 중 20년 동안 주가가 꾸준히 상승한 종목은 2개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국내 주식시장의 간판스타인 삼성전자다. 이 회사의 주가(수정 주가 기준)는 20 00년 7601원에서 2010년 1만5480원, 올해 5만2800원으로 상승했다.

20년 투자수익률은 594.6%, 연평균 34.7%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821.22포인트에서 2108.33포인트로 256.7%(연평균 12.8%) 올랐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상승률이다. 다른 한곳은 KT&G다. 2000년 2만828원이던 주가가 2010년 6만2000원, 올해 7만8200원으로 상승했다. 2000년 3조8962억원이었던 시총도 올해 10조7362억원으로 증가했다.

주가가 가장 많이 떨어진 업종은 통신주였다. 2000년 시총 순위 2위로 주가가 37만5585원이었던 SK텔레콤의 주가는 올해 21만1000원으로 하락했다. 주가가 43.8% (16만4855원) 떨어진 셈이다. KT의 주가는 같은 기간 10만1048원에서 2만355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통신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에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화의 상징인 포스코의 주가는 20년간 롤러코스터를 탔다. 2000년 9만4994원이었던 주가는 2010년 46만65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산업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4차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힘을 잃었고, 올해 주가는 17만4000원으로 떨어졌다. 포스코는 올 2분기 사상 첫 ‘분기 적자(-1085억원·별도 기준)’를 기록했다.

저조한 장기투자 결과


전통산업의 부진은 2010년 코스피 시총 상위 종목의 수익률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당시 시총 2위였던 포스코의 주가는 2010년 이후 62.7%나 하락했다. 포스코 대신 시총 2위 자리를 노렸던 현대차의 주가는 10년간 32.3%(14만4500원→9만7700원) 떨어졌다.

코스피 시장 시총 상위 종목을 휩쓸었던 금융업의 주가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삼성생명(당시 4위)의 주가는 10만35000원에서 4만4700원으로 떨어지며 반토막이 났고, 신한금융지주(당시 5위)의 주가도 37%(4만5650원→2만8750원) 이상 하락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 신한금융지주와 삼성생명의 시총 순위는 각각 18위, 28위로 내려앉았다. KB금융지주(당시 9위)의 시총 순위가 2010년 9위에서 올해 17위로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시총 상위 종목의 주가 변화는 투자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국거래소의 자료를 보면, 2010년 상반기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시총 10위권 기업은 KB금융지주와 한국전력이 있었다. 두 회사의 주가는 10년간 각각 28.5%(4만7500원→3만3950원), 38.2%(3만1600원→1만9500원) 하락했다. 장기투자 성적표가 저조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올해 시총 상위 10개 종목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자. 가장 큰 특징은 주가가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30만원대를 오르내리던 삼성바이오로직스(시총 3위)의 주가는 지난해 12월 23일(42만2500원) 40만원을 돌파한 이후 70만원대(6월 30일 기준 77만5000원)까지 거침없이 올라갔다. 6개월 투자수익률은 83.4%(주당 35만2000원)에 이른다. 또다른 제약·바이오 종목인 셀트리온(시총 5위)의 주가도 올해 초 18만원에서 30만6000원으로 12만6000원(70%) 상승했다. 

IT 관련주인 네이버(시총 4위)와 카카오(시총 8위)의 상승세도 매섭다. 2018년 10월 액면분할 이후 20만원대를 밑돌던 네이버의 주가는 지난해 말 18만6500원에서 올해 26만7000원으로 43.1% 올랐다. 같은 기간 카카오의 주가는 15만3500원에서 26만7500원으로 오르며 74.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종목들의 특징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제약·바이오, IT 관련 업종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투자의 제1원칙인 장기투자도 산업구조의 변화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로 또다시 바뀐 산업의 지형도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아서다.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주도주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코로나19 사태로 4차 산업혁명 관련주가 주도주로 자리를 잡고 있다”며 “기술주를 향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시를 선도하는 종목의 가장 큰 요건은 여전히 실적”이라며 “기술주에 투자할 때도 반드시 펀더멘털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런 버핏은 장기투자를 강조하면서 “투자자가 할 일은 좋은 회사를 찾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회사란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다.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는 지금,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남을까. 지켜볼 일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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