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스타트업, 위기 속 기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수많은 기업이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적절한 투자만 받는다면 누구보다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거다.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선보인 ‘스타트업 무상지원 프로그램’이 이목을 끄는 이유다. 다만,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한 국내 대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Arm과 실리콘 카탈리스트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초기 단계의 반도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rm과 실리콘 카탈리스트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초기 단계의 반도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향후 몇년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문가들의 일반적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기업이 바뀐 환경 속에서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건 막 걸음마를 뗀 스타트업이다. 안정적인 제품군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뜻밖에도 “반도체 스타트업들에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일까.

세계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지난 5년간 13억 달러(약 1조56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 1회 이상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는 그중 절반이 넘는다. 2016~2017년 반도체 스타트업을 향한 펀딩이 190%나 늘었다(세미코 리서치). 전망 있는 분야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두각을 보인다면 투자도 충분히 이뤄진단 거다. 스타트업에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는 이유다. 

다만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과정은 쉽지 않다. 자금을 확보하려면 투자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스타트업답게 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혁신은 빠르게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혁신을 꿈꾸지만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반도체 스타트업들을 위해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나섰다. 바로 스타트업을 위한 무상지원 프로그램인 ‘Arm Flexible Access for Startups’이다. 비용이 저렴하면서 위험 부담은 적은 방법으로 초기 단계의 반도체 스타트업이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표다. 

 

Arm은 지난해 7월 Arm Flexible Access를 론칭했다. 연회비를 내면 Arm이 가진 모든 반도체칩 기술 설계자산(IP)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상 스타트업은 제품을 생산할 때까지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신규 프로그램은 초기 단계의 반도체 스타트업을 위한 것으로 연회비조차 없다. 이때 ‘초기 단계’의 기준은 최대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하의 자금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기준에 부합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제품 설계나 시제품 제작, 제품 테스트 등을 할 때 Arm의 광범위한 반도체 IP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반도체 스타트업의 한계

이뿐만이 아니다. Arm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연결할 수 있고, 글로벌 교육 자료나 각종 툴에도 접근 가능하다. 대기업은 수천명의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지만 스타트업은 대부분 몇명 단위에 그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면 팀에 대기업 출신의 능력 있는 엔지니어·개발자를 영입할 수 있단 얘기다. 이들과 협업하면 스타트업은 한층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딥티 바차니 Arm 오토모티브·IoT 사업부 수석 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는 “지금처럼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에선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빠르고 안정적인 생산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며 “Flexible Access를 통하면 신생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자에게 더 강한 신뢰를 얻어 자금 조달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반도체 스타트업에 지금의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반도체 스타트업에 지금의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이 생존하는 데엔 신속하고 효율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반도체 스타트업의 소규모 엔지니어링 팀은 종종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단일 칩 시스템(SoC) 설계를 하는 동시에 고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짧은 기간 내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시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업체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해야 한다. 

Arm이 실리콘 카탈리스트와 협약을 맺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실리콘 카탈리스트는 세계서 유일한 반도체 전문 인큐베이터 기업이다. 이 회사는 반도체 스타트업을 벤처캐피털과 앤젤캐피털에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이게 해준다. 실리콘 카탈리스트는 초기 자금을 받은 스타트업이 막상 자금을 확보한 후에 기술 라이선스 비용 등 값비싼 간접비를 치르느라 자금난에 빠지는 악순환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에 비즈니스 멘토링과 무상설계자동화(EDA) 툴 접근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Arm Flexible Access 프로그램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실리콘 카탈리스트의 파트너인 랜스 벨 박사는 “지금이 반도체 스타트업이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벨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침체기에는 마케팅이나 R&D 활동을 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서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은 앞서 나갈 수 있다. 바로 의도치 않게 고민할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된 스타트업이다. 창업자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자신들의 비즈니스와 투자를 재평가하고, 현재의 위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걸로 사업을 바꿔야 할지 등을 다시 고민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AI 칩 공급업체 Halio, 팹리스 반도체 회사 Atmosic 등 수백개 기업이 Flexible Access로 Arm 기술을 활용해 성과를 거뒀다. Arm은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향후 3년간 매년 10개의 국내 반도체 기업에 Flexible Access를 지원한다. 협약 이후 다국적 기업 벤처 최초로 자상한 기업(자발적 상생협력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 반도체 스타트업이 팬데믹 사태라는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필 버 Arm 자동차·IoT 부문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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