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다자개발은행(MDBs)의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환영할 일이지만 유의할 점도 있다. 최근 다자개발은행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들의 부당행위를 조사하고 문제 적발 시 제재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다. 한번 제재를 받으면 해외사업이 치명타를 맞을 만큼 수위도 높다. 다자개발은행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하는 국내 기업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세계은행이 기업들에 청렴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데이비드 멀패스 세계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세계은행이 기업들에 청렴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데이비드 멀패스 세계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A사는 국내 엔지니어링 중견기업이다. 여느 산업처럼 엔지니어링 산업도 국내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A사는 일찌감치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A사의 해외사업은 최근 제동이 걸렸다. 지난 7월 1일 세계은행그룹(WBG)이 A사에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이 제재는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바누아투의 공항 프로젝트와 연관돼 있다. 무슨 일일까.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목표로 1945년 설립된 다자개발은행(MDBs)이다. 유무상 원조ㆍ투자참여ㆍ사업보증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도상국을 원조하는데, 2016년 기준 지원 금액은 642억 달러(약 77조3610억원)에 이른다. 국내 기업들도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문제가 된 바누아투 공항 프로젝트는 세계은행의 원조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 프로젝트는 바누아투 국제 항공 운송 관련 기반시설의 운영ㆍ안전ㆍ관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기획됐는데, A사도 참여했다. A사는 바누아투 3개 공항의 감리를 맡기로 하고 용역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계약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A사는 감리에 필요한 핵심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했고,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A사는 계약을 맺은 이후에 대체 인력을 물색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세계은행은 이를 ‘사기적 부정행위(Fraudulent Practice)’라고 판단했다.

세계은행은 다섯 가지 행위를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 첫째는 재정적 이익을 얻거나 의무를 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사기적 부정행위(Fraud)’, 둘째는 직간접적으로 상대방에게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안ㆍ교부ㆍ요구ㆍ수령하는 ‘부패행위(Corruption)’, 셋째는 2명 이상이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모의하는 ‘부당공동행위(Collusion)’, 넷째는 상대방이나 재산을 해하겠다고 협박하는 ‘강압행위(Coercion)’, 마지막은 세계은행의 조사를 방해하는 ‘조사방해행위(Obstruction)’다. 그중 사기적 부정행위가 제재 사례의 약 75%를 차지한다.

 

A사는 세계은행과 맺은 합의서상 조건에 따라 세계은행그룹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13개월간 참여할 수 없게 됐다. 그 이후 17개월은 조건부 비非제재 기간인데, A사는 합의서상 의무를 준수하는 조건으로 세계은행그룹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A사가 세계은행의 제재를 받으면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미주개발은행(IAD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등 다른 다자개발은행의 입찰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금융기구들이 한 기구가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면 다른 기구도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상호협약을 맺고 있어서다. 

세계은행은 부정행위에 따른 제재와 관련해선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과 미국 연방 조달규칙의 영향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반부패와 부정행위를 척결하는 것과 관련해선 국제금융기구 사이의 공조가 늘어나고 있다.

A사가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타격이 상당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A사가 세계은행의 제재 수위를 낮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2016년 세계은행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글로벌 시스템통합(SI) 업체 B사의 ‘청렴 프로세스’ 사례를 참고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 회사는 몽골 정부가 발주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사와 합작법인을 세웠다. 합작법인은 수주를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합작법인의 현지 파트너사가 정부 계약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1주일 해외여행)을 제공한 것이다. 결국 이게 화근이 돼 B사는 세계은행으로부터 2년 6개월의 제재를 받아야 했다. 

 

세계은행그룹의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된 B사는 세계은행이 제시한 ‘청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ICP)’을 구축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부패방지 국제표준인 ISO 37001(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취득하고, 이를 1년간 운영해 세계은행으로부터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검증받았다. 

B사는 제재를 받을 당시만 해도 윤리경영과 관련한 내부통제 정책ㆍ조직이 매우 미흡했다. 하지만 제재 이후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확고한 윤리경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세계은행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내 기업들엔 낯선 컴플라이언스

세계은행의 부당행위 조사와 제재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조사와 마찬가지로 국내 기업들엔 아직 낯설다. 하지만 세계은행으로부터 제재를 받으면 기업의 해외사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세계은행이 원조하거나 투자ㆍ보증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은 세계은행의 부당행위 제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세계은행이 제시한 ‘청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계은행은 제재의 종결 여부를 판단할 때 ‘청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이 수립됐는지, 그에 따라 문제가 개선됐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청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ISO 37001이 요구하는 사항과 매우 비슷하다.
 
A사도 B사와 마찬가지로 ISO 37001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걸 고려해볼 만하다. 아직도 국내 기업들은 컴플라이언스에 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국제 입찰에 참여하려면 컴플라이언스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 

글=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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