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 숱하지만 대세까지 바뀌랴

깜짝 흑자를 냈다. CEO간 협상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대로 거래 종결일(8월 11일)을 넘기고 좌초하는 줄만 알았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새 국면을 맞았다. 그런데도 실제로 인수가 진행될 거라고 믿는 시선은 많지 않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하고,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위험도 그대로라서다. ‘인수 무산’의 대세를 바꿀 정도의 호재는 아니란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깜짝 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아시아나항공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아시안항공의 매각이 무산되면 원인을 두고 치열한 갈등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안항공의 매각이 무산되면 원인을 두고 치열한 갈등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8월 7일 아시아나항공이 ‘깜짝’ 실적을 공시했다. 이 회사는 올해 2분기 1151억원의 영업이익, 116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21억원, 2993억원 늘어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플러스 실적을 낸 건 6분기(2018년 4분기)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여객이 대폭 줄었지만, 화물 실적이 선방했다. 화물 부문에서 6391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화물기 전세편을 적극 편성하고, 여객기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벨리 카고(Belly Car go)’ 영업을 늘린 덕분이다. 임직원 무급휴직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도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2분기 영업비용은 7035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884억원) 대비 55.7%나 절약했다.

이틀 뒤, 8월 9일에도 이 회사를 둘러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대면 협상 제안을 전격 수용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이다. 

그간 HDC현산은 대면 협상을 기피해왔다. 거래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위해 자료와 입장 전달을 공식적인 문서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던 HDC현산이 돌연 “지금부터라도 인수인과 매도인이 서로 만나서 협의를 조속히 진행하자”면서 태도를 바꿨다.  

두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던 아시아나항공 인수 거래에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호실적은 반가운 일이다. 그간 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을 품는 순간 HDC현산의 우량한 재무구조가 동반부실에 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금호그룹의 경영실패, 미중 무역전쟁,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악재가 이어진 가운데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심각한 부실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닫힌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여행심리가 살아나는 데 최소 2~3년이 걸릴 거란 전망이 쏟아지면서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망설이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올해 2분기 화물 실적으로 일궈낸 깜짝 흑자는 항공업계 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협상의 물꼬가 어렵게 트인 것도 호재였다. HDC현산이 대면 협상을 수용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거래는 무산 수순을 밟고 있었다. HDC현산이 지난 7월 “신뢰할 수 없는 재무제표에 근거한 막연한 낙관적 전망만으로는 결코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할 수 없다”면서 ‘12주 재실사’를 요구했는데, 이를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현산이 마치 충분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거래 종결을 회피하면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채권단도 거들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재실사 요청은 과도한 요구로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흑자전환 성공했지만 …

지난 4일엔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거래 종결일(8월 11일)을 정하고 HDC현산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종결일까지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주식매매계약서(SPA)에 따라 12일부터 금호산업측이 계약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래가 무산되기 직전의 위기였다. 

그러다 돌연 HDC현산이 대면 협상을 제안하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조만간 양사 대표가 직접 만나 계약 이행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실제 인수 성사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M&A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여객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이상 영업이익 흑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항공사는 물류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측의 대면 협상 역시 형식적인 만남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재실사에 대한 입장차가 여전하다. 사실상 인수 포기로 기울 수밖에 없는 HDC그룹의 마음을 돌려세울 만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업계는 항공업이 살아나기 위한 조건으로 여객 수요 회복을 꼽는다. 화물 업황이 호조를 보이더라도 한계는 뚜렷하다는 거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는 12대다. 전체 항공기(85대) 중 14.1%에 불과하다. 결국 사람을 항공기에 태워야 나머지 70여대의 여객기를 하늘에 띄울 수 있고, 휴직 중인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여 경영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진정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항공협회는 올해 하반기 국제선 월평균 여객 전망치를 12만983명으로 잡았다. 지난해(504만967명) 대비 97.6% 적은 수치다. 이로 인한 국제선 매출 피해액은 8조797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1분기 아시아나항공은 부채비율 1만6859.1%(개별 기준)를 기록했다. 몇 번의 분기 흑자로 개선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항공업 전망이 불투명한 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면 협상을 두고도 양사는 동상이몽에 빠져 있다. HDC현산은 보도자료에 ‘재실사를 전제로 한 협상’을 내세웠다. 반면 금호산업 측은 ‘거래종결을 위한 대면협상’이라고 설명했다. 재실사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갈등이 뚜렷한데도 어느 한쪽이 ‘노딜’을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설령 거래가 무산되더라도 양측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시그널을 줘야 나중에 법정 공방을 벌일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거래가 무산되면 HDC현산은 계약금(2500억원)을 놓고 반환 소송을 걸 공산이 크다. 채권단과 금호그룹 역시 손해배상 소송으로 맞불을 놓을 게 뻔하다. 거래 실패 이유를 두고 불거질 책임론 공방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불투명한 인수 작업 미래

양측의 대면 협상마저 어그러지면 다른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긴 힘들다. 산업은행은 ‘플랜B’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가 돼 경영을 다시 정상화한 뒤, 시장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신속히 재매각을 추진하는 게 채권단의 기본 방침이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인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플랜B 준비는 당연하다”면서 “아시아나항공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동성 지원이나 영구채 주식전환 등 채권단 주도 경영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빅딜, 아직까지도 무산의 그늘이 더 짙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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