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 전세 소멸론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며 전세가 시장에서 빠르게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세 ‘실종’이나 ‘멸종’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정부가 전세 보증금을 이용한 갭투자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보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전세의 설자리가 사라질 가능성도 높다. 정말 순식간에 시장은 월세로 재편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전세소멸론을 분석해 봤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전세가 ‘멸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7월 31일부터 주택 세입자는 2년을 살고 나서 또다시 2년을 살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이 생겼다. 갱신계약을 할 때는 기존 임대료의 5% 이상 올릴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강화하면서 전세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월세처럼 매달 현금으로 돈을 받을 수도 없는데 보증금마저 마음대로 올리지 못한다면 누가 전세를 놓겠냐는 비판이다.

전세가 정말 사라진다면 주택시장은 한동안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전세는 목돈만 있다면 2년간 보증금으로 내놓고 계약이 끝나면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는 임차인이 잃는 지폐는 단 한장도 없다. 

당연히 세입자는 전세를 선호한다. 매달 수입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월 임대료를 내야 하는 월세는 임차인의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갑작스럽게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 살아야 한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전세 거래량과 가격 =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전세 매물이 말라버렸다는 분석도 쏟아졌다. 전세는 정말 줄었을까.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실거래 자료를 통해 매물 대신 거래부터 살펴봤다. 대상은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2020년 1~7월 전세 거래로 잡았다. 2020년 1월에는 3402건, 6월에는 2582건, 7월 현재까지는 1984건이 전세로 거래됐다. 

8월이 지나지 않은 탓에 실거래가에 반영되지 않은 전세 거래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2019년 7월 3016건) 1000건 이상 줄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선이 생기는 7월 31일 이후 체결된 계약이 속속 신고되기 시작하면 감소폭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전셋값은 어떨까. 예상대로 집주인들은 전세가격을 올리고 있을까. 결론부터 보면 2020년 1~7월 주택 전셋값은 올랐다. 2020년 1월 101.0이었던 주택전세가격지수(KB부동산 리브온)는 7월 102.5로 1.5포인트 상승했다. 2018년과 2019년엔 같은 기간 0.7포인트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세 사라질까 = 전셋값이 오르고 임대인들이 전세에 더 매력을 못 느낀다면 전세는 빠르게 사라질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월세로 임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데도 전세로 임대했던 임대인들은 왜 그랬던 것일까. 전세의 탄생 배경은 과거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높은 이율에 있다. 

목돈을 은행에 맡기면 매년 10%씩 이자가 붙던 때가 있었던 만큼 월세를 받는 것만큼이나 전세 수익도 나쁘지 않았다. 월 임대료는 밀릴 가능성도 있지만 전세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국내 기준금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토막 나면서 상황은 변했다.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도 수익률이 신통치 않자 전세 보증금은 또다른 용도로 쓰였다. 갭투자였다. 주택을 한번에 매입할 수 없는 자금을 보유한 사람들이 세입자의 보증금만큼 부담을 덜어 집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 중 갭투자의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1월 서울에서 거래되는 주택의 48.4%는 ‘보증금 승계’ 조건을 건 매매로 거래됐다. 새로운 임대인이 집을 매입할 때 세입자가 있다면 전체 주택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금액에서 세입자의 보증금만 제외하는 방식이다. 

세입자의 계약이 끝날 때 보증금을 넘겨주면 되기 때문에 당장 수중에 돈이 많지 않아도 주택을 매입할 수 있었다. 2020년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중(KB부동산 리브온)은 56.0%였다. 아파트로 따진다면 집값의 44.0%만 있고, 절반 이상의 가격이 모자란다 해도 집주인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 다시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기준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인 5월이다. 서울 주택의 ‘보증금 승계’ 조건 매매 비중은 1월 48.4%에서 4.0%포인트 늘어난 52.4%가 됐다. 서울에서 거래되는 주택의 절반 이상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깔고 거래가 됐다는 얘기다. 

들쭉날쭉한 반전세 비중

강남 4구로 좁혀서 보면 이런 집은 72.7 %에 육박했다. 중저가 아파트가 포진된 노원·도봉·강북·구로·금천·관악 6개 구 24개 아파트 단지에서도 49.9%였다. 물론 모든 ‘보증금 승계’ 매매가 투기를 위한 ‘갭투자’인 것은 아니다. 

 

반전세 비중은 주택 별로 다르게 움직였다.[사진=뉴시스]
반전세 비중은 주택 별로 다르게 움직였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세입자와의 계약이 끝나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계획을 밝힌 집주인도 많았다. 그러나 집값의 절반에 육박하는 전세 보증금을 단번에 돌려주기 어려운 것은 갭투자든 실수요든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월세 전환보다 보증금 일부를 낮추고 월세를 받는 ‘반전세’ 거래가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O2O 플랫폼인 다방은 2020년 1월과 비교해 6월의 서울 다세대·다가구 주택 반전세 거래 비중은 6.7%에서 7.4%로 커졌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반전세 비중을 살펴보니 1월 13.0%에서 7월 11.0%로 줄었고, 단독·다가구 주택은 13.2%에서 14.5%로 늘었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7월 이후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급격한 전세 ‘멸종’이 아니더라도 세입자가 월세 전환의 부담을 느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국토부는 ‘쿠션’으로 전월세전환율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체할 시간은 없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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