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구의 稅務와 世務 ❷ | 정부 부동산 대책의 모순

부동산을 둘러싼 국민들의 원성이 높다. 23번의 대책을 내놓고도 시장 안정화에 실패한 건 정부의 무능과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을 생각하면 집값 상승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 상승세의 기울기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만을 타깃으로 한 좁은 관점의 대책으론 이를 완만하게 꺾는 게 불가능하다.

정부가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사진=뉴시스]
정부가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사진=뉴시스]

‘부동산 블루’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치솟은 집값 앞에서 “내 집 마련하는 건 평생 어렵겠다”는 좌절감이 팽배한 탓이다. 반면 정치인과 고위 관료는 급등한 가격으로 다주택을 쥐고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다주택자 고위 공직자에게 부동산을 처분하라는 정부의 지시는 이런 불만에 되레 불만 붙였다. 

청와대에서 주택정책을 담당하는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은 강남 아파트를 놔두고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은 불패’란 시그널을 정부가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강남 아파트를 남기고, 청주 아파트를 매도했다가 구설에 오른 뒤에야 결국 강남 집을 내놨다.

치솟는 집값을 두고 정부가 손만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꺼냈다. 대출을 조이고, 규제 지역을 늘렸다. 추가 대책도 시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집값 하락을 예상하는 전망은 많지 않다.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폭우 속에서 거리에 나와 집회를 열고 분노를 표출할 정도다. “부동산 대책이 되레 집값만 끌어올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미숙한 정책도 문제지만 정책보다 집값에 영향을 더 미치는 중요 변수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바로 시중에 풀린 돈의 양, 즉 유동성이다. 유동성이 늘어나면 화폐가치가 하락한다. 똑같은 1만원이더라도 돈의 가치는 40년 전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1980년대에 짜장면이 350원이었다면, 지금은 5000원을 훌쩍 넘는다. 단순 비교하면 40년 전에 비해 현재 시중에 14배나 많은 돈이 더 풀려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집값도 최소한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만큼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가령 2019년 기준 통화량 증가율(연 7.5%)로 보면, 집값은 다른 변수가 없다면 연 7.5%는 오른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 돈의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광의통화(M2)는 올해 5월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돌파한 3053조원으로 전월 대비 35조원이나 늘었다. 

가치 하락세는 앞으로 더 가팔라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통화량을 결정짓는 미국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상황이다. 국내만 따져 봐도 ‘코로나19 충격 회복’ ‘한국식 뉴딜 정책’ 등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집값도 더 뛴다. 

치솟은 집값이 무서운 국민들

물론 민심이 들끓는 건 집값이 뛰어도 너무 많이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로 다른 도시와 서울 집값을 비교해보자. PIR이 10포인트라는 건 10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평균 수준의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시의 PIR 지수는 2019년 기준 20.55포인트로 332개 조사 국가 중 26위를 차지했다. 집값이 높기로 악명 높은 도시도 서울보단 사정이 낫다. ‘뮌헨(18.32포인트)’ ‘로마(15.91포인트)’ ‘도쿄(13.76포인트)’ ‘뉴욕(11.10포인트)’ 등이 대표적이다. 

평당 2억원을 넘어선 도쿄, 부의 상징으로 알려진 뉴욕의 집을 사기 위해 걸리는 시간보다 서울에 집을 장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국민들 속에 천불이 날 만하다. 

유동성 과잉이더라도 집값을 관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가령 국내 물가상승률을 보자.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0.4%에 그쳤다. 역대 최저치다. 시중에 엄청난 돈이 풀렸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정부의 모순적인 태도를 엿봤다. 물가상승률 통계에 들어가는 항목은 국민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재화다. 앞서 언급했던 짜장면도 포함된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는데 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품의 값은 오름폭이 적었을까. 이는 소비부진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부가 이들 재화의 급격한 상승을 통제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동산은 중요한 세원

반면 집은 어떤가. 집값은 물가상승률 통계에 포함되는 항목이 아니다. 생활물가처럼 강력하게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정부의 국정철학이 ‘부동산 가격 안정’이었을지라도,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세수稅收의 대상이다. 

집값이 오르면 당연히 세수도 늘어나니 좋다. 쉼 없이 쏟아져 나온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엇박자를 냈던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대책을 낼 때마다 여러 정무적 판단이 개입됐을 게 뻔하다. 

지금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추가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유동성 과잉을 생각하면 집값 하락은 실현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고 집값을 주요 세원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을 거두기 어렵다. 올해는 역대 최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예정돼 있다.

그보단 오히려 우상향하는 집값의 기울기를 낮추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이 기울기를 낮추는 데에 부동산 정책의 역할은 미미할 공산이 크다. 오히려 대대적인 경제 활성화 정책이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 대신 실물시장에 흘러가게 할 만한 그런 효과적인 방법 말이다. 국민 소득이 집값만큼 오르면, 아무리 아파트 값이 치솟아도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홍석구 정율 세무회계 대표 | 더스쿠프
seokgu1026@jungy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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