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 프로젝트 중간보고서

‘정의연이 싫으니, 위안부도 싫다.’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위안부 인권운동을 이끌어온 단체에 문제가 있으니, 위안부 할머니도 싫다는 논법으로 접근하면 애먼 할머니들만 홀로 남는다. 시민단체의 논란은 위안부 인권운동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우린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75주년 광복절특집-들리나요 프로젝트’를 제시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답보 상태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답보 상태다.[사진=연합뉴스]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다. 정부는 할머니들이 ‘괜찮다’라고 하실 때까지 할머니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것이다.” 8월 14일 오전 11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이해 열린 정부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금세 공허해졌다. 같은날 오후 2시에 국회에서 열린 ‘기림의 날’ 토론회에서 벌어진 해프닝 때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과정에서 문화예술인의 활동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의원 전원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이었다. 

위안부 인권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같은당 소속 김상희 국회부의장, 정춘숙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ㆍ양이원영ㆍ이수진(비례)ㆍ인재근 국회의원과 용혜인 원내대표(기본소득당) 등이 공동주최자에 이름을 올려놨지만 끝내 불참했다. 이 때문에 한 참석자는 “주최자가 행사에 안 온 게 정상입니까”라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각각의 의원들은 외부일정을 불참 사유로 들었지만, 윤미향 의원의 경우는 달랐다. 토론회가 열리는 날 윤 의원은 검찰에서 밤샘 조사를 받았다. 그는 정의연 이사장 재직 당시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모집하고 기부금을 부실회계 처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 덕분에 다른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덕분에 위안부 인권운동은 세계적인 평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뜻깊은 날의 의미가 퇴색했다. 

관련 주요 단체의 각종 후원금 유용 의혹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일엔 충격적인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88억8000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한 ‘나눔의집’이 정작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한 금액은 2억원에 불과했다는 거다. 이들 단체를 향한 시민들의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피해 할머니를 볼모로 후원금을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더 큰 문제는 위안부 인권운동을 이끌던 시민단체가 흔들리는 사이 ‘진짜 가해자’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일본이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 미완未完으로 남아있다. 2015년 12월 일본 정부의 기금 출연(10억엔)을 골자로 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으면서 해결되는 듯 보였지만, 과정은 엉성했다. 한 맺힌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서에 ‘불가역적ㆍ최종적 해결’이란 문구를 적시해 논란을 키웠다. 위안부 인권 문제를 앞으로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 할머니들의 끊임없는 사과와 배상요구에 부담을 가져왔던 일본 측에 상당히 유리한 조항이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두고 재협상을 공약했다. 2018년 1월 이용수 할머니를 청와대로 초대한 문 대통령은 “지난 합의는 잘못됐다”면서 “빠른 시일 내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합의의 문제점을 검증할 TF팀을 구성하고, 한일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ㆍ치유재단을 해산했지만(2018년 12월) 후속조치는 깜깜이다. 

흔들리는 위안부 운동의 본질


무엇보다 합의가 파기된 시점에서 진전된 내용이 없다. 후속조치를 위한 컨트롤타워도 없다. 위안부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부처는 여성가족부지만, 부처 내 권익정책과의 일부 업무로 한정돼 있다. 이마저도 피해자의 생활안정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우리는 피해 할머니들의 생활안정 지원과 기념사업을 전담하고 있다”면서 ”조사ㆍ연구 사업은 여가부 내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부설 연구소나 외부 연구기관에 위탁해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엔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이하 대일항쟁조사위)가 있었지만, 이 조직은 2015년 12월 해산했다. 현재 행정안전부 산하의 공익법인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업무를 이관해 맡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 공익법인으로 위상이 격하된 만큼 위안부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는 게 여의치 않다. 

위안부 역사를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건 ‘75주년 광복절특집-들리나요 프로젝트’에서도 엿보인다. 이 프로젝트는 더스쿠프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부천사회적기업협의회, 한국사회공헌협회 등이 ‘위안부의 아픈 역사, 이젠 시민이 기록하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의 목소리가 담긴 정부 최초 위안부 구술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이하 들리나요)」를 바탕으로 ‘펜슬드로잉’ 영상을 제작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게 첫번째 목표였다. 

8월 10일 첫 번째 영상을 공개했고, 기림의 날인 14일엔 두 번째 영상을 선보였다. 각각의 영상은 포털 다음(카카오갤러리)과 동영상 플랫폼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들리나요 서포터즈’를 조직해 영상을 홍보하고 있는 국도형 한국사회공헌협회 회장은 “들리나요 영상을 통해 아픈 역사에 공감하는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피해자 할머니가 몇분 남지 않은 지금은 운동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고 설명했다. 

목소리 내기 두려운 관계자들

반면 평소 위안부 관련 이슈에 목소리를 내왔던 인사들의 참여는 적었다. 위안부 관련 재단에 연구원으로 있던 한 관계자는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선 괜한 오해를 받을까 난감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반대로 동조하면 친일세력이 되거나 위선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위안부 인권운동이 정쟁에 휩싸인 채 공감대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운동을 멈춰선 안 된다. 시민들을 중심으로 방향을 쇄신해서라도 확산해야 할 때다. 아직도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대로 멈추면 영원한 숙제로 남게 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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