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핸즈 박현홍 대표

빈貧과 아픔을 팔지 않았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따윈 필요 없었다. 대표와 직원은 월급을 공개했다. 후원금은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밝힌 뒤 썼다.  아동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 보듬을 필요가 있는 아동을 최장 10년간 1대1 멘토링 해주는 NGO다. 설립 초기엔 ‘어떤 멘토가 10년이나 멘토링하겠느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비용은 많이 들고 수익성은 떨어질 것’이란 조롱 섞인 핀잔도 받았다.
 
그럴수록 러빙핸즈는 진심과 진실을 내세웠고, 지금은 놀라운 혁신을 일궈내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동네친구 같은 멘토’ 박현홍(52) 러빙핸즈 대표를 만났다. 스무번째 주인공이다. 
[※ 참고: 천막사진관은 코로나19 수칙을 지키면서 촬영했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멘토와 멘티의 이름은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날때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다. 하이파이브면 충분하다.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반가운 친구를 만날때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다. 하이파이브면 충분하다.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 1장. 빗나간 친권과 천륜
 
영하 14.7도. 수은주는 어제보다 더 떨어졌다. 찬 기운을 실은 바람은 날카로웠다. 메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듯 날이 서 있었다. 2005년 2월의 한파는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따르릉!”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전화가 걸려온 건 그때였다. “열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열흘 넘게 방치돼 있어요. 추울 텐데….”  

센터 사람들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20여분 만에 도착한 고양시의 낡은 집. 얼음장 같은 집은 엉망이었다. 과자·라면 부스러기가 너절하게 흩어져 있었다. 거기서 만난 잿빛 얼굴의 소년은 얇은 이불에 몸을 맡긴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엄마 안 계셔?” 
“원래 없어요.” 
“아빠는?” 
“몰라요, 안 들어온 지 좀 됐어요.”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한 현홍은 소년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친 말이 날아들었다. “내 지금 지방에 와있는데, 금방 갈끼다. 모레까지 간다. 알았나!”

박현홍 대표가 직접 묶은 8자 매듭. 이 매듭은 각 줄을 잡아당길 때 더욱 강하게 묶인다. 멘토와 멘티는 누구 하나가 끌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현홍 대표가 직접 묶은 8자 매듭. 이 매듭은 각 줄을 잡아당길 때 더욱 강하게 묶인다. 멘토와 멘티는 누구 하나가 끌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다. [사진=오상민 작가]

이틀 만에 나타난 아버지란 양반은 ‘분憤’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내 아 어쨌노!  싹 갈아 엎는다이.” 현홍이 맞섰다. “아들을 한겨울에 열흘 넘게 방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가 헛웃음을 쪼갰다. “니 머꼬! 니가 아 아빠가.”

현홍은 ‘아차’ 싶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버지를 설득하는 게 먼저였는데, 감정이 앞섰다. 실수였다. 현홍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친권자가 원하면 아이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친권은 ‘천륜’이었다.

그날밤, 소년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먼발치에서 소년을 지켜보던 현홍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저 아이, 괜찮을까.’ 하늘에선 검은 구름이 뒤엉키고 있었다. 소년의 회색빛 낯이 오버랩됐다. 현홍의 미간이 구겨졌다. 2005년 겨울, 슬픈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2장. 집의 이상한 이중성

언젠가부터 현홍을 괴롭히는 질문이 있었다. 집의 ‘이중성’이었다.

누군가에게 집은 편안한 공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외롭고 무서운 공간이다. 이런 집의 역설은 어린아이들에게 더 잔인하게 적용된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나친 생각이 아니었다. 아동학대의 현장은 대부분 ‘집’이었다. 바깥시선이 침투하기 힘든 집의 ‘은밀한 속성’이 때론 학대를 부추겼다. 학대만이 아니었다. 아동방임·무관심 등의 문제도 집의 결함에서 시작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권親權(부모가 미성년자에게 가지는 신분상·재산상의 권리와 의무)’이었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아이를 간신히 격리해놔도 부모가 친권을 내세우면 헛일이 됐다.

친오빠에게 성적 상처를 입은 소녀도 ‘부모가 원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웃지 못할 모순이었지만 그게 법이었다. [※참고: 아동복지법 제4조 3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을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원原가정 보호 원칙’이다.]

집은 누군가에겐 편안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무섭고 외로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집에서 일어난다. 집의 이중성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집은 누군가에겐 편안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무섭고 외로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집에서 일어난다. 집의 이중성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현홍이 이런 끔찍한 모순들과 다시 마주친 건 2006년 1월이었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홍은 두 눈을 의심했다. 등뼈가 드러난 16살 소녀의 왼쪽 엄지발가락은 썩어있었다. 동상이었다. 치마 밑으론 배설물이 엉켜있었다. 3일 넘게 두손 두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앳된 소녀에게 잘못 아닌 잘못이 있다면 호기심에 가출한 것뿐이었다. 부모는 화를 참지 못했다. 아이를 감금했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학대였다.

현홍은 소녀를 임시보호소로 보냈다. 할 수 있는 건 부모와 소녀를 떼놓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녀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때론 미소를 머금고,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모는 끝내 친권을 내세웠고,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현홍은 고개를 숙였다. 자괴감이 절벽처럼 다가와 가슴을 압박했다. 현홍은 센터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찬바람이 왈칵 밀려들었다. 소녀의 건조한 눈망울이 바람에 실려 또다시 가슴에 꽂혔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중년여성이 센터의 문을 두드린 건 그때였다. “센터장님이시죠? 엊그제 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 “네, 여기 앉으세요.” 현홍이 열어놨던 창문을 닫았다. 바람이 숨을 죽였다. 정적이 흘렀다. 두달여 전 만났던 여섯 아이 엄마의 기억이 새삼 또렷해졌다.

아이들 쉼터의 공사를 돕고 있는 박현홍 대표 뒤로 한줄기 햇살이 내리쬔다. 강한 빛의 반대편엔 진한 그림자가 생긴다. 아동학대는 우리의 관심이 미치치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이들 쉼터의 공사를 돕고 있는 박현홍 대표 뒤로 한줄기 햇살이 내리쬔다. 강한 빛의 반대편엔 진한 그림자가 생긴다. 아동학대는 우리의 관심이 미치치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 3장. 막연한 기대와 퇴짜
 
“아이가 여섯이라고요?”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현홍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아이를 마구 낳았다지만 납득 못할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부담이 될 거다. 그 부담은 삶을 짓누를 테고. 애먼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상념想念에 잠긴 현홍의 휴대전화가 울린 건 그 무렵이었다. 발신자는 중년여성이었다.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실습을 해야 하는데, 찾아뵙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일주일 뒤였다. 현홍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방치돼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여섯명이나 돼요.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다행이었다. 교회 집사인 그녀는 아이들을 끔찍이 좋아했다. 친분이 깊은 5명의 집사와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여섯 멘토’에 ‘여섯 멘티’가 구성된 셈이었다.

이들은 ‘계절의 순환’을 함께 즐겼다. 봄엔 동산에 올라 노랑나비를 쫓았다. 여름엔 하늘빛에 맞춰 춤을 췄다. 가을엔 들녘의 냄새를, 겨울엔 눈의 정취를 만끽했다. 덩달아 엄숙했던 교회에도 활력이 깃들었다. 교회 안팎엔 ‘까르르’ 웃음소리가 온종일 넘실댔다. 어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곳은 ‘정겨운 집’이었다.

그렇게 1년, 현홍은 이리저리 얽힌 질문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래, 은밀한 집에서 방치될 우려가 있는 아이를 보듬을 방법은 오랫동안 관심을 쏟는 것뿐이다.” 1명의 멘토가 1명의 멘티를 끝까지 책임지는 ‘장기 멘토링’, 바로 그거였다.
 
답을 찾은 현홍은 수많은 NGO를 찾아다녔다. “최대 10년까지 지속하는 1대1 멘토링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현홍은 기대감을 품었다. 퇴짜를 맞을 리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현홍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의 마스코트 ‘초록이’.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의 마스코트 ‘초록이’.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4장. 빈곤 포르노의 늪

“글쎄요.” 또 퇴짜였다. 2006년 말부터 100여일. 누구도 현홍에게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았다. “1대1 장기 멘토링? 말이 좋죠. 그걸 누가 하겠어요.” 한 NGO 관계자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냥 후원금 모아서 주는 게 딱이에요.”

어찌 보면 당연한 답이었다. 가난이나 아픔을 적절하게 포장하면 후원금이 밀려들었다. ‘빈곤 포르노’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 참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란 모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사진 등을 말한다.]

비뚤어진 인식도 문제였다. NGO 업계는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이었다. 후원금을 내든 봉사를 하든 공급자가 만족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정작 수혜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나 ‘까닭 모를 호의’가 아니었다. 설령 돈을 원하더라도 덥석 쥐여줘선 안 됐다. 그건 타락을 방조하는 짓이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현홍의 진심을 알아주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체할 수 없었다. 현홍은 새로운 NGO를 만들기로 했다. 100여명의 지인이 ‘정기후원하겠다’면서 힘을 보탰다. 2007년 2월 평온했던 그의 삶에 ‘억센 물결’이 굽이치기 시작했다. 숙명이었다.

멘토링 과정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박현홍 대표.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멘토링 과정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박현홍 대표.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이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박현홍 대표가 중요한 부분을 접어놓으면서 수십번 읽은 책. 피터 드러커의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이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박현홍 대표가 중요한 부분을 접어놓으면서 수십번 읽은 책. 피터 드러커의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 5장. “아픔을 팔지 말라”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교육 철학자 프란시스코 페레- 

아동문제만큼 ‘편견’이 많은 이슈는 드물다. 숱한 이들이 아동문제 하면 학대를 떠올리지만 단견短見이다. 아동방임·무관심·결핍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계부·계모가 주로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아동 재再학대 가해자의 73.5%는 친부모다(보건복지부).

아동문제가 대부분 한부모‧조손‧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한다는 것도 주관적 편견이다. 일반가정의 아이들도 때론 학대‧방임에 시달리고,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다. 박현홍 대표가 아동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를 설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맞벌이는 증가하고 공동체는 약해졌어요. 이 과정에서 어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크게 늘었죠. 각종 아동문제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어요.”
 
지역아동학대예방센터 근무 시절, 박 대표는 수많은 사례를 경험했다. 집에서 학대 받은 아이들의 ‘심리적 비명’에 울분을 토했다. 집에서 일탈한 아이들의 ‘정서적 결핍’에 눈물을 흘렸다. 뼈아픈 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아동문제는 일단 터지면 구제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학대를 겪은 아이들은 주홍글씨가 돼버린 상처를 감내하지 못했다. 일탈한 아이들이 ‘일상’으로 되돌아올 확률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박 대표는 최장 10년에 달하는 ‘1대1 장기 멘토링’을 고안했다. ‘일이 터지기 전에’ 한명이라도 끝까지 보듬어 아동문제를 예방하자는 거였다.

‘1명의 아이를 끝까지’. 러빙핸즈의 이념이 적힌 초록 팔찌. [사진=오상민 작가]
‘1명의 아이를 끝까지’. 러빙핸즈의 이념이 적힌 초록 팔찌. [사진=오상민 작가]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많은 NGO가 외면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성은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2007년 2월 러빙핸즈를 설립한 그는 장기 멘토링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14년, ‘얼마 안 가  두손 두발 들 것’이란 세간의 조롱을 비웃듯 러빙핸즈는 알찬 실적을 내고 있다. 설립 이후 1000여명의 멘토를 양성했는데, 이중 173명이 장기 멘토링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200명이 넘는 멘토가 멘토링 중이다. [※ 참고: 러빙핸즈의 멘토링 과정은 4년부터 10년까지다.]
 
멘토링을 받는 아이들의 범주도 넓어졌다. 박 대표는 “지금은 주로 한부모․조손․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멘토링을 받고 있지만 일반가정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는 ‘뚝심’의 결과물이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빈곤 포르노’의 유혹을 떼쳤다. 빈貧과 아픔을 팔지 않았고, 멘토‧멘티의 관계를 포장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심’과 ‘투명성’을 앞세웠다. 이를 위해 자신과 직원들의 월급을 공개했다. 후원금을 받을 땐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박 대표의 고집과 러빙핸즈 활동가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지금이야 열매가 맺히고 있지만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박 대표가 눈을 감았다. 2008년 2월 러빙핸즈의 첫 결산총회장이 떠올랐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현홍이 보였다. 그는 감정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선 안 된다.” 박현홍 대표는 멘토링 교육 과정을 유료로 전환하고, 주변인에게 추천서를 받는 등 책임 있는 멘토를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바꿨다.[사진=오상민 작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선 안 된다.” 박현홍 대표는 멘토링 교육 과정을 유료로 전환하고, 주변인에게 추천서를 받는 등 책임 있는 멘토를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바꿨다.[사진=오상민 작가]

# 6장. 뼈아픈 첫 실패

도로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이었다. 영하 2.5도, 2008년 2월 새벽 출근길은 쌀쌀했다. 현홍은 몸이 살짝 떨려옴을 느꼈다. 매서운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러빙핸즈의 첫 결산총회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심 자신 있었다. 「후원금 8000만원: 인건비 4200만원(대표+직원), 운영비 1800만원, 멘토링 비용 2000만원.」 적자를 내지 않았고, 운영비도 적게 썼다.

“첫해치곤 이만하면 잘 했어. 괜찮아!” 하지만 현홍은 총회가 열리자마자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쳤다.

“운영비 1800만원은…”
“잠깐만요, 대표님!”

한 후원자가 현홍의 말을 잘랐다. 점잖은 말투였지만 질문은 날카로웠다. “숫자가 너무 러프해요. 운영비 비중도 크고요. 이렇게 하시라고 후원한 게 아닙니다.”

멘토링 실적에도 의문이 쏟아졌다. 매칭된 멘토‧멘티 숫자가 너무 적다는 질책이었다. 사실 현홍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후원금 중 일부가 운영비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린 뒤 사용했다. 약속한 것보다 운영비를 많이 쓰지도 않았다.

마포구 서교동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 아이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과 보드게임 등이 비치돼 있다. 러빙핸즈의 멘토·멘티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마포구 서교동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 아이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과 보드게임 등이 비치돼 있다. 러빙핸즈의 멘토·멘티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멘토링 실적은 더 억울했다. 설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러빙핸즈에 선뜻 멘티를 추천하는 곳은 없었다. 현홍이 직접 멘티를 발굴해야 했고, 신뢰성을 입증해야 했다. 

하지만 현홍은 반박하지 않았다. 해명은 변명을 부르고, 변명은 자위自慰를 부추길 게 뻔했다. 그건 위선의 단면이었다. 
그날 밤, 현홍은 직원과 함께 결산표를 꼼꼼히 복기했다. 숫자에 더 민감해야 했다. 두루뭉술해선 안 됐다.

“후원금 중 일부가 운영비에 들어간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리자. 거절하면 후원금을 안 받으면 된다. 중요한 건 진정성과 투명성이다.”

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새벽, 회사를 나서는 현홍에게 직원이 물었다. “잘될까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후원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멘토링 시스템은 고칠 게 많았다. 현홍은 얼어붙은 도로로 눈을 돌렸다. 빙판길에 갇힌 택시들이 ‘거북이 주행’을 하고 있었다.

현홍도 걷는 속도를 늦췄다. 모든 게 답답했다. 문득 얼마 전 멘토를 그만둔 희진이가 스쳤다. ‘괜찮은 멘토였는데….’ 아쉬움이 가슴을 적셨다.

장기 멘토링 시스템은 바닥부터 시작해야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오늘까지 왔다. [사진=오상민 작가]
장기 멘토링 시스템은 바닥부터 시작해야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오늘까지 왔다. [사진=오상민 작가]

# 7장. 누추한 환상
 
“민영아, 도착했어.” 대학교를 갓 졸업한 멘토 희진은 짬만 나면 멘티를 만났다. 강동구에서 용산구까지 24㎞, 먼 길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멘티의 이름은 민영, 중2 예쁜 소녀였다. 또래처럼 톡톡 쏴대긴 했지만 속정이 깊었다.

민영이는 네살 때 엄마를 잃었다. 여섯살 땐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와 다섯살 터울의 오빠, 민영의 세상엔 둘뿐이었다. 희진은 민영의 작은 세상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차를 마셨다. 주중에도 시간이 나면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럴수록 희진에겐 ‘욕심’이 생겼다. 민영이의 ‘결핍’을 채워주고 싶었다.

“쌤이랑 공부할래?” 시작은 작은 선의善意였다. 하지만 선의는 과욕을 불렀고, ‘갈등의 씨앗’이 됐다. 과외를 시작하자 희진은 잔소리를 해댔다. 민영이가 숙제를 빼먹으면 호통을 치기도 했다. 

남들은 ‘친자매 다 됐네’라면서 대견스러워했지만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희진은 ‘과외까지 해주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란 의문을 품었다. 민영은 ‘왜 날 구속하려 들까’란 불편함을 떼치지 못했다.

러빙핸즈에서는 멘토·멘티 매칭기념일 축하파티를 연다. 이날은 매칭 6주년을 맞이한 멘토와 멘티가 자리를 함께했다. 멘티를 챙기는 멘토의 모습이 정겹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에서는 멘토·멘티 매칭기념일 축하파티를 연다. 이날은 매칭 6주년을 맞이한 멘토와 멘티가 자리를 함께했다. 멘티를 챙기는 멘토의 모습이 정겹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무판에 못을 박는다. 못 사이를 실로 수없이 연결하면 어떤 모양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의 마음에 무수히 많은 걸 연결해 관계를 형성하는 멘토와 멘티의 모습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무판에 못을 박는다. 못 사이를 실로 수없이 연결하면 어떤 모양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의 마음에 무수히 많은 걸 연결해 관계를 형성하는 멘토와 멘티의 모습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민영이가 먼저 선을 그었다. 희진의 전화를 외면했다. 답답해진 희진이가 민영의 집에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희진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민영의 오빠였다. “동생이 힘들어 해요. 괴롭히지 마세요.”
 
‘난 좋은 멘토야.’ 희진은 이렇게 자부해 왔다. 누추한 착각이었다. 희진은 그날로 멘토를 그만뒀다. 남은 민영도 행복하지 않았다. 멘토와의 엇갈림은 무거운 죄책감을 불렀다.

며칠 후 현홍이 민영이를 불렀다. “이제 다른 멘토를 매칭해야 하는데, 괜찮아?” 민영의 볼에서 엷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엔 좋았어요. 근데 희진쌤도 결국 어른이더라고요. 전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데….”

현홍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민영이의 눈물이 러빙핸즈 멘토들의 문제를 꼬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희진처럼 욕심을 부리다 그만두는 멘토는 수없이 많았다.   

2008년 8월, 현홍은 고향 거제도로 내려갔다. “멘토링, 예방, 모두 착각이었을까?” 덧없는 질문이 머리를 뒤흔든 탓이었다. 이럴 때면 현홍은 아버지를 찾아가곤 했다.

저녁 8시께, 부자는 오랜만에 동네를 함께 걸었다. 현홍이 앞섰고, 아버지가 한참 뒤를 따랐다. 어스름 속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아버지…” 현홍의 말이 바람에 실려 왔다. 아버지가 걸음을 멈췄다.

러빙핸즈 가평센터는 여러 후원자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은 오로지 멘토와 멘티들을 위해 활용된다. 박현홍 대표가 목수를 도와 직접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 가평센터는 여러 후원자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은 오로지 멘토와 멘티들을 위해 활용된다. 박현홍 대표가 목수를 도와 직접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현홍 대표는 러빙핸즈 가평센터에 목공방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이 공간에선 아이들은 간단한 목공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이 곳을 새로운 꿈을 찾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현홍 대표는 러빙핸즈 가평센터에 목공방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이 공간에선 아이들은 간단한 목공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이 곳을 새로운 꿈을 찾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8장. 40년 만에 들은 답

아버지의 폐는 90%가 없었다. 폐결핵 탓이었다. 교회 목사인 아버지에겐 결점이었다. 큰 목소리로 설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동도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둘러싼 뜬소문이 참 많았다. “저 교회가 못 크는 건 목사가 무능하기 때문이래.” 소문은 걸핏하면 ‘거짓 바람’으로 돌변했고, 사람들의 입방아를 부채질했다.

속이 상할 법도 했지만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입방아를 찧는 이들을 보듬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살피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개중엔 뒷전에서 시답잖은 말을 늘어놓는 이도 있었지만 달리 대하지 않았다.
 
늦은 밤이든 새벽녘이든 아버지가 ‘봉사’에 나서면, ‘길잡이’는 장남 현홍의 몫이었다. 어두운 밤엔 손전등을 비추고, 비가 쏟아지는 날엔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런 현홍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아버지는 왜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한테도 헌신하시는 걸까.’

초등학교 땐 아버지에게 따져 물은 적도 있다. “기분 안 나빠요? 저 아저씨들이 뒤에서 욕했다니까요.” 아버지는 엷은 미소를 지을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40여년, 산들거리는 바람이 해안을 타고 불어왔다. 말없이 걷던 아버지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현홍을 불러 세웠다. “어떤 상황에서든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들어줘라. 친구가 되면 섭섭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아버지의 말이 바람에 실려 왔다. 40여년 만의 답이었다. 이번엔 현홍이 걸음을 멈췄다.

가정 방문하는 박현홍 대표. 박 대표는 관계의 지속성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가정 방문하는 박현홍 대표. 박 대표는 관계의 지속성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현홍 대표가 얼마전 새롭게 매칭된 멘티와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현홍 대표가 얼마전 새롭게 매칭된 멘티와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에서 발간한 멘토링 사례집. 수많은 멘토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에서 발간한 멘토링 사례집. 수많은 멘토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9장. 부자연스러운 착각

고향에서 돌아온 이튿날, 현홍은 멘토들과 머리를 맞댔다. 흔들리는 멘토의 방향성을 잡아야 했다. 사실 문제점도 많았다. 몇몇 멘토는 ‘내 한마디면 멘티가 바뀔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반면 일부 멘티는 멘토에게 조언을 받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란 환상에 빠져 있었다. 모두 부자연스러운 착각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우리가 멘티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건 아닐까”. 멘토들의 회의를 경청하던 현홍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동네친구 어때요?” 멘토들이 귀를 세웠다. 동네친구, 분명 색다른 접근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자는 거예요, 친구가 그렇잖아요.”

현홍은 가장 먼저 멘토·멘티의 매칭 방식을 ‘동네’ 중심으로 바꿨다.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였다. 멘티들에게 ‘우리 동네에 내 편 있어’란 자부심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반대로 멘토 자격은 더 까다롭게 만들었다. 무료였던 멘토 교육비를 ‘유료’로 돌렸다. 지인 3명의 ‘추천서’도 필수서류로 만들었다. ‘동네친구일수록 신뢰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러빙핸즈 멘토들은 그렇게 ‘동네친구’가 돼갔다. ‘날 만났으니 멘티가 성장할 거야’란 기대감 따윈 내려놓고 일상을 함께했다. 그냥 밥 먹고, 시시콜콜한 얘기 나누고…. 말 그대로 ‘동네 멘토링’이었는데, 놀라운 변화가 수반됐다.

‘멘티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멘토가 부쩍 줄었다. 일부 멘티는 멘토를 꿈꿨고, 실제로 몇몇은 멘토가 됐다. NGO 활동가로 영역을 넓힌 멘토도 나왔다. 동네친구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순환’이었다.    
 

멘토정기모임에서 ‘불멍(불 멍하니 보고 있기) 시간’을 가졌다. 스피커에선 장작불 타는 소리가 들려오고 참석자들은 조용히 불꽃을 바라봤다. 사유의 시간이었다. ※참고: 행사는 소화기를 배치하고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사진=오상민 작가]
멘토정기모임에서 ‘불멍(불 멍하니 보고 있기) 시간’을 가졌다. 스피커에선 장작불 타는 소리가 들려오고 참석자들은 조용히 불꽃을 바라봤다. 사유의 시간이었다. ※참고: 행사는 소화기를 배치하고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에서는 매달 멘토 정기모임을 진행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러빙핸즈에서는 매달 멘토 정기모임을 진행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정답이 없다. 멘토 정기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비슷한 입장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사진=오상민 작가]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정답이 없다. 멘토 정기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비슷한 입장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사진=오상민 작가]

#10장. 풀지 못한 과제 

설립 14년째, 러빙핸즈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휴먼대상 복지부 장관상(2009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희망멘토링 부문 대통령 표창(2017년) 등 굵직한 상을 받은 건 알찬 성장의 징표다.

하지만 러빙핸즈가 풀어야 할 난제는 여전히 숱하다. 무엇보다 아동보호 시스템이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학대 받은 아이를 임시보호조치하는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난 게 고작이다. 학대아동을 부모와 쉽게 격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 대표가 수십 년째 예방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과 캐나다는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는 순간 부모와 아이를 격리해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친권이 우선이죠. 숱한 아동문제가 집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방법은 지금도 하나예요. 아동문제가 터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죠. 러빙핸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학생이 된 지호(사진 맨 왼쪽)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박현홍 대표의 멘티가 됐다. 박 대표의 새 멘티 병주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멘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다. 어깨동무한 모습이 정겹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학생이 된 지호(사진 맨 왼쪽)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박현홍 대표의 멘티가 됐다. 박 대표의 새 멘티 병주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멘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다. 어깨동무한 모습이 정겹다. [사진=오상민 작가]

지난 7월 초. 현홍의 옛 멘티 ‘지호’가 러빙핸즈를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현홍의 멘티가 됐는데, 벌써 대학생이 됐다. 얼마 전 멘티 과정을 끝마친 지호는 요즘 ‘멘토교육’을 받고 있다. 현홍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셈이다. “현홍 쌤에게 받은 관심을 또다른 멘티에게 꼭 돌려줄 거예요.”

때마침 초등학교 5학년 병주가 수줍은 얼굴로 현홍을 찾아왔다. 지호를 졸업시킨 뒤 맞은 현홍의 새로운 멘티다. 현홍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호를 처음 봤을 때 딱 저만했는데… 하하.”

현홍이 왼손으론 지호를, 오른손으론 병주를 감쌌다. “지호 너 언제 이렇게 컸어?(현홍)” “쟤도 금방 저만해질 거예요(지호).” 현홍이 멋쩍게 웃었다. 지호와 병주가 키득거렸다. 어깨동무 사이로 웃음바다가 일렁였다. 동네친구 셋이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사진=천막사진관]
[사진=천막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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