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경영 | 김득신金得臣의 근성 ②

▲ 윈스턴 처칠은 김득신처럼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끈기와 노력으로 수상까지 올랐다.
바보 자식을 둔 아버지 중에는 천재가 많다. 만년 꼴찌에 낙제생이었지만 노력해서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보라. 처칠가家는 명문가였다. 국회의원 ·재무장관을 지낸 아버지 랜돌프 처칠, 아일랜드 총독을 지낸 할아버지인 존 스펜서 처칠은 윈스턴과 달리 어려서부터 뛰어난 수재였다고 한다.

역사는 아이러니컬하다. 삼대(三代)까지는 천재와 수재를 허락하나 4대와 5대 이상은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원소袁紹 가문도 ‘사대삼공四代三公’의 당시 명문가였다. 하지만 5대째 원소와 원술에 이르러서는 졸지에 ‘바보가家’로 전락했다.

수재 소리를 듣던 아버지 김치도 김득신을 보고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장남을 바보로 낳았으니 말이다. 김치의 아버지 김시회, 할아버지인 김충갑이 과거에 급제하는 소년등과를 이루지 않았던가. 사대문과를 이룰 시점이 코앞인데 장남이 책 한 줄을 읽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프고 착잡했을까.

윈스턴 처칠에게 제1 필독서였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아버지의 애독서이기도 했다. 만년 꼴찌 처칠에게 아버지 랜돌프의 책 선물이 미래를 바꿨듯이 아버지 김치도 어떻게든 장남 득신이 책을 읽고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김치는 사실, 조선 중기 당대의 석학이었다.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경상도 관찰사를 마치고, 문형文衡의 자리인 대제학大提學에 오를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김치 또한 동시대를 산 ‘월상계택月象谿澤(이정구 ·신흠 ·장유 ·이식)’처럼 ‘설서說書’ 출신이기 때문이다.

설서란 ‘세자에게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는 정7품’ 관직명을 말한다. 과거급제자라고 해서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학문과 인품이 세자를 가르치고 모범이 될 정도로 훌륭해야만 가능했던 자리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주인공 허연우의 오빠인 허염이 과거급제 후, 세자시강원에 처음으로 나아가 세자 이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세자가 허염에게 ‘허 문학’ 운운했는데, 이때의 문학文學이란 벼슬은 정5품 관직명을 말함이다. 장원급제자라고 해서 바로 정5품 벼슬이 내려지는 것은 난센스다. 작가가 ‘허 설서’라고 하는 것 보다 ‘허 문학’이라고 해야 드라마 재미가 배가 된다고 한다면 굳이 아는 체 하지 않으련다.

설서說書(정7품)→대제학大提學(정2품). 이 코스는 당사자가 큰 과실이 없다면 당연한 품계 과정이었다. 따라서 득신의 아버지인 김치가 얼마나 뛰어난 수재형 인재인지를 가늠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일까. 김치는 20세 아들에게 자신의 애제자인 12세 소년 박장원朴長遠(1612~1671)을 평생 친구로 안배해 놓았던 것이리라. 그렇게 백곡과 구당의 평생지교가 시작됐다.
박장원이 누구인가. 그는 본관이 고령으로 훗날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의 증조부를 말한다. 자는 중구仲久이고, 호는 구당久堂으로 기록에 따르면 대사헌, 예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1625년(인조 3년) 스물 두살의 득신은 아버지를 객사로 잃는다. 이후에도 아버지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묵묵히 지킨다. 머리가 나빠 잘 잊어버리던 득신은 박장원과 몇 년 전에 한 약속도 잊지 않고 잘 지켰다고 하니 딱 보면 알 수 있는 메모를 잘 한 덕분이리라. <다음호에 계속>

심상훈 편집위원 ylmfa97 @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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