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익의 CSO 에세이

▲ 신분이 세습되면 갖가지 문제점이 나타난다. 거의 모든 불법과 편법, 그리고 비리는 세습 때문에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습은 구태다. 세습은 구체제, 앙샹 레짐(Acient Regime)이다. 반反민주다. 세습, 그게 바로 반反민주이며 반反경제민주화다. 21세기 대명천지의 열린 세상에서 권력을 세습하는 나라는 없다.
영국처럼 여왕이 있고 황태자가 있지만 그것은 국가적 관광상품일 뿐이다. 일본 천황도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권력을 일찌감치 쇼군將軍이나 총리대신總理大臣에 내줬다. 그래서 사실상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이 공산당 1당 독재여서 곧 망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과 유럽의 쇠퇴를 상쇄하고 싶어 하는 패배자의 마음 같아 보인다. 사실상 중국 공산당은 3당 체제다. 상하이방•태자당•공산청년당이 치열하게 경쟁해 권력을 나눠 갖고 있다.

무엇보다 권력이 세습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서구의 시각처럼 가까운 장래에 쓰러질 것 같다는 전제는 경솔하다. 세습을 타파한 근대의 역사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비롯됐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왕족과 귀족, 그리고 종교를 빙자한 기득권 승려들이 국가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고위직을 독점했다. 이에 맞서 중산층 부르주아지 그리고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다수는 승리했다. 앙샹 레짐은 무너졌다.

그런데 권력의 구질서는 붕괴됐지만 금력金力이 새로운 괴물로 등장했다. 모든 것에 앞서 ‘돈, 돈’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를 깊숙하게 반성할 때가 됐다. 공산주의도 무너지고 월가의 금융자본주의도 사실상 붕괴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에 따른 시장왜곡 현상은 물론 자본의 편법상속과 부당세습의 병폐가 극에 달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대선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자본이란 신분의 세습이 문제다. 거의 모든 불법과 편법, 그리고 비리가 세습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오너경영에 문제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경영인이라도 따로 기업을 만들기 전에는 오너가 될 수 없다.

능력있고 야망있는 인재들은 도중 하차가 많다. 그래서 진짜 인재는 대기업 집단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독립한 인재의 성공확률도 결코 높지 않다. 기득권의 진입장벽을 뚫기가 거의 불가능한 생태환경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재를 잃는 셈이고 개인으로서는 인생실패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전문경영자들은 오너나 총수의 눈치를 보는 악순환에 빠져서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다. 또 이차적으로는 자연인의 세습이 현실이라 대대로 충성을 강요받을 뿐이다. 내일을 희망삼아 기다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국가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낭비인가.

‘머크 파트너위원회’의 머크가문의 사위인 프랑크 S 하버캄 회장은 “350년 가까이 끊임없이 발전해 온 독일의 장수기업인 화학•제약업체 머크 그룹에는 머크가문 130명 중 2명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크 파트너위원회’는 지주회사 머크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위원회를 감시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스웨덴의 국민기업 발렌베리 가문 역시 5대째 내려오지만 한국재벌의 세습과는 분명히 다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은 대체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일본의 경우도 1945년 대동아전쟁 패망 후 맥아더 정권에 의해 재벌이 해체됐다. 물론 각 나라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같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지(暗默知•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를 자연스레 전달받도록 해야 한다. 이제 다수 국민은 ‘배고픔보다 부당함 때문에 배 아픈 것’을 치유 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야 한국은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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