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없는 날 그 후 … 특별한 하루는 그저 하루였다
택배 없는 날 그 후 … 특별한 하루는 그저 하루였다
  • 이지원 기자
  • 호수 403
  • 승인 2020.08.25 0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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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단 하루 후 남은 문제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택배시장에 ‘쉼표’가 찍혔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의 일이다. 4만여명의 택배기사가 첫 여름휴가를 떠났다. 이들은 아이들과 바다로,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그동안 못 받은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1년의 단 하루’의 휴가로는 택배기사의 숨통을 틔워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택배 없는 날 그 후에 벌어질 일들을 취재했다. 

택배기사들에게 28년 만에 첫 여름휴가가 주어졌다.[사진=뉴시스]
택배기사들에게 28년 만에 첫 여름휴가가 주어졌다.[사진=뉴시스]

택배기사 백영수(52)씨는 택배일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났다. 택배업계가 사상 처음으로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면서 주말(광복절)을 포함한 3일간의 휴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백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기도 했지만 여태 여행다운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에게 휴가가 주어진 건 1992년 국내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이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법정근로시간이나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데다 대체인력이 없어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기사에게 ‘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국택배연대노조의 이런 주장을 한국통합물류협회가 받아들이면서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ㆍ한진택배ㆍ로젠택배 등 4개사와 우체국 소포위탁배달 소속 택배기사 4만여명이 휴가를 떠났다. 

당초 휴가 이후 ‘물량폭탄’ 우려가 쏟아졌지만 임시공휴일이던 17일 업무를 재개하면서 택배기사들은 밀린 물량을 소화했다. 택배업체 관계자는 “7월 말 택배 없는 날 지정이 공식화하면서 고객사와 협의해 물량을 조정해 왔다”면서 “명절 때에도 많은 물량을 처리한 경험이 있어 과도한 부담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택배 없는 날을 추진한 전국택배연대노조도 택배기사들에게 1년에 단 하루라도 쉬는 날이 주어졌다는 데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세규 전국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평소 화요일에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데 업무를 재개한 월요일에 화요일 수준의 물량이 몰렸다”면서 “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계기로 택배기사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택배 없는 날이 정례화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년에 단 하루’ 휴가로는 택배기사 처우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숱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선 “쉬어도 쉬는 게 아니지 않나. 휴일 끝나고 나면 택배기사님들 더 고생할 게 뻔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조삼모사다” “택배 없는 날이라더니 14일에도 근무하시는 분들 많더라” 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틀린 말이 아니다. ‘택배 없는 날’에도 쉬지 못한 택배기사는 생각보다 많다.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 등 5개사 외에 일양로지스ㆍKGB택배ㆍ경동택배ㆍ대신택배 등 중소형 택배사들은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내 택배기사가 총 5만4000여명(6월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만4000여명의 택배기사에게 휴가는 ‘남의 일’이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업체는 기업물류 등에 특화돼 있는 데다, 특수고용직 외에 정규직 비중이 높아 택배 없는 날에서 제외됐다”면서 “향후 이들을 포함한 모든 택배기사에게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택배 없는 날’ 이후엔 무얼 해야 할까. 무엇보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장시간ㆍ고강도 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과로사하는 택배기사가 매년 증가하고 있어서다. 

용혜인 의원(기본소득당)이 발표한 ‘택배노동자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9명의 택배기사가 사망했고, 그중 7명이 과로사(2명은 사고사망자)했다. 특히 과로사한 택배기사는 2017년 4명, 2018년 2명, 2019년 2명 등으로 올해 들어 급증했다. 

용혜인 의원실 측은 “2012년 이후 발생한 택배노동자 질병사망자 18명 모두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면서 “이중 2020년 6월까지 7명이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과도한 업무시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가 택배노동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택배기사의 장시간 · 고강도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사진=뉴시스]
택배기사의 장시간 · 고강도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기사가 감당해야 할 물량은 평균 30~40% 급증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늘어난 물량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3~16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기사의 처우를 지금 바로 개선하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세규 교육선전국장 이렇게 지적했다. “택배기사는 오전 6~7시에 출근해 오후 1~2시, 길게는 3시까지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그 이후 배송을 시작한다. 택배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은 사실상 무급노동인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물량이 급증하면서 분류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배송출발 시간은 지체되고 있다. 이는 결국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들이 원청인 택배사에 한시적으로라도 택배 분류작업 인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택배업체들의 의지다. 택배기사들의 요청에도 분류작업 인원을 보충한 업체는 현재까지 없다. 주요 택배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장시간ㆍ고강도 노동의 악순환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의 2분기 매출액은 2조6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839억원으로 같은 기간 16.9% 늘었다. 호실적을 이끈 건 택배사업 부문이었다. 2분기 택배처리 물량은 4억2300만 박스(이하 대신증권 추정치)로 전년 동기(3억2120만 박스) 대비 31.8% 증가했다. 그 결과, 택배사업 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1%, 102.6% 증가한 7798억원, 476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과로사하는 택배기사가 급증했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과로사하는 택배기사가 급증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택배업체가 택배기사의 배송 건당 수수료를 올려준 것도 아니다. 택배사가 배를 불리는 동안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배송 건당 수수료는 17년간 800원 안팎에 머물러 있다. 배송 수수료가 제자리걸음하면서 과거 하루 평균 200~300개를 배송하던 택배기사들은 300~400개의 물량을 부담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금배지들은 지금까지 법안 하나 처리하지 않았다. 택배기사의 처우를 개선할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안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엔 ▲택배서비스 사업자에 손해배상 연대 책임 의무 부과 ▲산업재해 취약 영업점 규제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종사자에 휴식 보장·안전시설 확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택배기사들에게 ‘특별한 하루’가 아닌 ‘살 만한 날들’이 주어주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셈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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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찬 2020-08-25 15:11:31
항상 힘들게 노력하시는 택배기사분들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루빨리 택배기사님들에 휴가 혜택도 나아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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