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의 역지사지]

▲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려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올해 9월 2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직 경제장관들이 모여 최근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 토론회에서 재벌기업의 고용 없는 성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내용은 이랬다. “수출이 늘어나면 사람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대기업은 사내하청 또는 비정규직으로 인원을 충원한다.” “정규직에 비해 처우가 형편없는 하청기업과 비정규직은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게 강 전 장관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그는 대기업들이 사내하청을 최소화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점차 실현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직업이 필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대기업의 고용변화에 의존할 것인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원가를 줄여 싸고 좋은 제품을 생산해야만 다른 기업에 비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기업에게 고용을 늘리라고 주문하는 이야기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인건비의 상승으로 수많은 기업이 자사 공장을 중국•베트남 등지로 이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인건비가 상승해 제3의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게 현실이다.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규어•랜드로버가 지금은 인도의 타타자동차그룹에 속해 있는 이유는 원가상승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대기업은 경영기법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적은 고용으로 높은 매출과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자연스런 모습이다. 이제는 국가경제의 경쟁력 모습을 바꿔야 한다.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건설부양과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우선순위로 쓰였지만 고용효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내수 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생산성을 증가시켜 이들이 ‘고용의 기관차’가 되게 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이 필요로 하는 숙련•기술•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제무역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확대돼 20년 전 재화 수출입 대비 18% 규모였던 것이 최근에는 25%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선진국은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인정해 왔다. 그 결과 서비스 산업은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서비스 산업이 각국 경제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2003년 현재 서비스 산업이 GDP와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각각 77.4%, 80.9%, 영국은 각각 75.0%, 80.9%에 이른다.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도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제조업의 생산성에 근접해 있다.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서비스 산업은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 서비스 산업은 전통적으로 저생산성과 노동집약성을 특징으로 하는 낙후산업으로 치부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서비스산업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류를 하고 우리나라의 경제 특성과 장단점을 구분해 선진국의 서비스 산업에 대한 발전과정을 참조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후대까지 이어질 국가경제 로드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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