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경제성장률 갑론을박

민감한 이슈일수록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는 일이 흔하다. 국민의 살림살이와 직결된 경제 지표는 단골 소재다. 지난 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정쟁의 도구로 쓰였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1위에 올랐다”며 축포를 터뜨렸고, 야당은 “민심을 모르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도 야당도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다. 국민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이젠 진영논리를 벗어던질 때도 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OECD 경제성장률 갑론을박에 숨겨진 이야기를 취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K-방역과 확장재정정책 덕에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경제성장률 1위에 올랐다고 자평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K-방역과 확장재정정책 덕에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경제성장률 1위에 올랐다고 자평했다.[사진=뉴시스]

지난 11일 집중호우 긴급점검을 위해 열린 국무회의, 문재인 대통령이 고무적인 소식을 전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올해 경제성장률 1위로 예상될 만큼 가장 선방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OECD가 같은 날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 담긴 내용이었다. OECD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8%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6월 발표한 전망치보다 0.4%포인트 상향조정된 수치였다.

37개 회원국 가운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가장 높았다. “적극적인 위기대응 정책이 빛났다”는 게 OECD의 평가였다. 문 대통령은 “방역의 성공이 경제의 선방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방역의 성공이 있었기에 정부의 확장재정에 따른 신속한 경기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 밖 논쟁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야당의 반발이 빗발쳤다. 문 대통령의 설명과 180도 다른 주장을 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이튿날인 12일 “애당초 악화일로를 걷던 우리나라와 호황이었던 선진국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면서 2021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되레 37개국 중 34위로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OECD 전망치의 신뢰성에도 의문부호를 붙였다. 조사기관마다 전망치가 다른데 우리나라 내부사정을 훤히 알지 못하는 OECD의 전망만으로 때 이른 축포를 터뜨린 게 아니냐는 거였다. 

보수언론에서도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가 언급한 OECD의 전망치가 “기준 시점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8월에 조정된 수치였고, 다른 33개(미국ㆍ슬로베니아ㆍ그리스 제외) 국가의 전망치는 6월 OECD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발표된 수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파가 6월에 더 컸으니 8월에 발표된 우리나라 전망치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참 이상하다. 같은 OECD 보고서를 두고 왜 두 진영의 주장이 극단으로 갈릴까.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더스쿠프(The SCOOP)는 문제의 발단이 된 OECD 경제성장률부터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OECD는 매해 5월(또는 6월)과 11월 두차례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37개 회원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 보고서에 실린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특정 국가의 경제동향을 집중적으로 분석ㆍ평가하는 ‘국가별 검토보고서’가 2년 주기로 발표된다. OECD가 지난 11일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가 여기에 속한다. 일부 보수언론에서 국가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기준 시점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전망치 1위 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준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37개 국가의 기준 시점을 OECD 6월 경제전망으로 동일하게 놓고 봐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2%로 가장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2차 확산할 경우’라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로 가정해놓고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5%(8월 한국경제보고서에선 -2.0%)로 가장 높다. 

내부사정에 밝지 않아 OECD 보고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어떨까. 지난 10년간(2010~2019년) OECD의 경제성장률 전망치(5월 전망 기준)와 실제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본 결과, 평균 오차는 0.59%포인트였다. 가령, 2010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0%였다면 그해 OECD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1% 내지 3.59%였다는 얘기다. 

그럼 국내 기관에서 발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어땠을까. 한국은행과 민간연구기관 중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는 편에 속하는 LG경제연구원의 기록을 살펴봤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의 평균 오차는 0.65%포인트, LG경제연구원은 0.55%포인트였다.

LG경제연구원은 OECD보다 오차가 적었지만 한국은행은 더 컸다. OECD의 전망이 국내 기관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 : 한국은행은 매해 1ㆍ4ㆍ7ㆍ10월, LG경제연구원은 4ㆍ7ㆍ10월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다. 그중 4월 전망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가 OECD 경제성장률 전망치 1위에 오른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고무적인 결과인 것도 맞다. OECD 역시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역조치로 코로나19를 가장 성공적으로 차단한 게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고 “OECD 회원국 중 가장 선방한 나라”라는 문 대통령의 낙관적인 평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당의 주장 중 일리 있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위지만, 2021년 전망치로는 37개 국가 중 34위(코로나19 2차 확산 시 30위)에 불과하다. K-방역의 힘으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덴 성공했지만 추가적인 성장을 이끌 만한 여력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OECD는 우리나라 고용률과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용률은 OECD 평균인 68.8%보다 2.0%포인트 낮은 66.8%에 그쳤다. 노동생산성도 82(OECD 평균=100)에 불과했다. OECD는 “한국은 다른 회원국보다 여성ㆍ청년층의 고용률이 낮다”면서 “고령층이 퇴직하고 나면 (국민)소득이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는 정부가 언급하지 않은 부정적 평가가 숱하다. 특히 소득분배 부문의 성적표가 낙제점에 가까웠다. 세후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 지수는 37개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높았고, 노인 상대빈곤율은 가장 높았다. 

소득분배 성적은 낙제점

더 심각한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질 거란 점이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서다. 인구구조 변화로 노동공급이 감소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부담도 커질 거란 얘기다.

OECD는 2060년 우리나라의 노년부양비가 80%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잠재성장률 역시 2005~2020년 평균 3%에서 2020~2060년 평균 1.2%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1위에 오른 것도 사실이고, 2021년 34위로 떨어진 것도 맞다. 분배지표가 엉망인 것도, 잠재성장률이 악화한 것도 냉정한 평가다. OECD의 객관적인 보고서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입맛대로 해석한 건 정부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진영논리에 빠져 경제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한 결과다.

경기불황이 장기화하고 코로나19 2차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해 충격에서도 미처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진영논리를 극복할 때도 됐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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