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협동조합형 아파트 위스테이 가보니…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튼 국내 최초 ‘마을형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다. ‘마을의 가치를 아파트에 심겠다’는 콘셉트로 2년 전 착공한 ‘위스테이’다. 하지만 아파트와 마을이란 다소 이질적인 공간이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진 아직 의문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마을형 아파트’ 위스테이에선 어떤 변화가 시작되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위스테이별내의 ‘커뮤니티 오픈위크’를 취재했다. [※ 참고: 취재는 코로나19 수칙을 지키면서 진행했습니다.] 

지난 6월 입주를 시작한 위스테이별내가 첫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사진=더함 제공]
지난 6월 입주를 시작한 위스테이별내가 첫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사진=더함 제공]

2년 전. 텅 비어있던 경기도 남양주시 별가람 마을에 낯선 계획이 발표됐다. “지역에서 거점이 될 만한 공간을 아파트 형태로 시민 자산화해보자. 아파트 안에 마을을 심어보자.” 소셜디벨로퍼 더함의 제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황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지역주택조합과 같은 게 아니냐며 의심도 샀다. 그게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선분양 체제가 지배적인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에서 ‘어떤 아파트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20년 6월 국내 최초 마을형 아파트 ‘위스테이’는 별 탈 없이 입주민들을 받기 시작했다. 8월 28일 현재 전체 세대의 94%가 입주를 마쳤다. 비어 있던 아파트에 사람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을 위한 행사도 계획됐다. 

‘마을형 아파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근 주민들까지도 함께 어울리는 ‘커뮤니티 오픈위크’다. 입주한 마을형 아파트 주민들의 솔직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 8월 16일 남양주로 향했다. [※참고 : 위스테이는 8년 임대 아파트다. 입주민 전체가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가입한다. 형태는 임대지만 모두가 아파트의 지분을 갖는 셈이다.] 

서울의 동북 끝, 4호선 당고개역에서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가면 남양주 별가람 마을이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면 한산한 도로 옆으로 위스테이별내가 보인다. 입주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지나 단지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갔다.

차가 다니지 않는 단지 안쪽에서는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고 개와 산책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단지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간이천막과 동네카페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간이천막은 이날 오후에 열릴 벼룩시장을 위한 것이었다.

위스테이별내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위스테이별내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준비가 한창인 천막을 지나 동네카페로 들어갔다. 말이 카페지, 공동주방ㆍ대형 스크린ㆍ아동 놀이방ㆍ세탁실 등이 갖춰진 커뮤니티 센터였다. 이날 이곳에선 강연이 한창이었다. 십수명의 주민들이 카페 테이블에 자유롭게 앉아 강연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방과 카페를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부모 곁에 갔다가 다시 놀이방으로 가길 반복했다.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따라갔다. 벼룩시장을 위해 깔아둔 좌판 위에서 한 주민이 인형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그에게 입주소감을 물었다. “8월 초 입주했어요. 공동육아 때문에 공동체 생활방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파트로 오게 됐습니다. 전에는 땅콩집(한개 필지에 2개 가구가 지어진 집)도 생각했었어요.”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가 아파트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겨 설명을 부탁했다.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기도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빈 시간이 있잖아요. 틈새보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여기서는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는 공동육아를 위한 돌봄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또다른 주민을 소개했다. 

옆에 있던 그 주민은 “초등 돌봄을 공동육아로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다함께 돌봄센터를 9월부터 이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9개 가구가 모였던 공동육아를 위한 돌봄위원회는 지금 13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일주일에 5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고정된 시간에 서로의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맡아준다. 입주가 끝나는 8월 27일 이후에는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함께 키우는 아파트

동네카페, 공동육아, 그리고 마을. 언뜻 틀과 원칙이 견고한 ‘아파트’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위스테이를 지배하는 원칙은 ‘자율’과 ‘느슨함’이다. 아동돌봄을 설명하던 그 주민이 동네카페 문 앞을 가리켰다. 아동용 자전거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도 동네카페에 자주 오는데 자전거를 둘 때마다 정리가 안 되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규칙을 만들었어요. 함께 쓰는 공간이니까 어지럽히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거죠.”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자전거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분필로 선을 그린 흔적이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아이들끼리 자체적으로 만든 규칙의 흔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규칙이 있는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도 마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자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의 자전거 주차장 앞에는 동아리를 신청할 수 있는 책상도 있었다. 영화감상ㆍ마라톤ㆍ등산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포함해 십수가지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활동 역시 주민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애초 입주자를 모집할 때 이런 활동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따로 뽑았기 때문이다. 

동아리 모집 공간을 다듬고 있던 이상우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마을은 기존에 있던 공간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리지만 여기는 조금 다른 형태죠. 처음부터 어떻게 살지 동의를 하고 모였으니까 일종의 인공적 마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주민도 있지 않을까. 부스에 참여하지 않고 산책을 즐기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 막 3살이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입주민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 오니까 가장 좋은 건 아파트 안에 트여 있는 공원이 있다는 거예요. 사실 성격이 소극적인 편이라 공동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참여할 때는 참여하고 그러지 못할 때는 자유롭게 빠질 수 있어서 큰 부담은 없어요.”

다시 동네카페로 향했다. 2시간짜리 강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내 교육 프로그램은 ‘백개의학교’라는 플랫폼을 통해 진행된다. ‘백개의학교’를 운영하는 김양희(학교지기)씨는 부산에서 남양주로 이사를 왔다. 추가 모집에 당첨됐기 때문에 계약부터 입주까지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곳으로 왔는데도 김씨의 표정은 밝았다. 

느슨한 공동체 성공할까

“어른도 낯선 곳에 적응하기 어려운데 이제 일곱살, 아홉살이 된 아이들은 당연히 그렇겠죠. 가서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 이름을 다 알거든요.”

마을형 아파트 위스테이의 모토는 ‘느슨한 공동체’다. 원한다면 참여하고 그렇지 않다면 한발 빠져도 괜찮다. 강제성이 없다는 얘기다. 동네카페에서 진행되던 강연이 끝나고 난 뒤, 18개월이 된 아기를 안은 입주민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원래는 아파트로 오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서도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동체 아파트이지만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거든요.” 상상만 하던 ‘느슨한 공동체’는 이제 첫발을 뗐다. 앞으로 8년 마을형 아파트는 어떤 모습이 될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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