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신용거래 괜찮나

빚을 내서 주식투자에 나서는 ‘빚투’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증권사 신용거래가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투자자의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신용거래를 허용하고 있어서다. 투자금의 출처가 여유자금인지, 빚으로 마련한 건지도 따지지 않는다. 신용거래의 위험성이 높아지기 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증권사 신용거래의 리스크를 살펴봤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투자자가 늘면서 증권가 신용융자 잔고가 15조원을 돌파했다.[사진=뉴시스] 

직장인 김철호(가명·43)씨는 흔히 얘기하는 ‘동학개미’다. 김씨는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한 직후 베팅을 시작했다. 아내 몰래 모아둔 비상금 500만원을 종잣돈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수익률이 나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속설인 ‘초심자의 행운’이 작용한 탓이었다.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진 우량주를 사들였던 김씨는 투자 한달 만에 10%(5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주가 상승기를 잘 활용하면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투자금액을 늘렸다. 종잣돈은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로 3000만원(연이율 2.4%·월 6만원)이었다. 한달에 5%의 수익만 올려도 원리금을 갚는 것과 무관하게 1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를 괴롭히는 공매도는 금지됐고, 넘쳐나는 유동성에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행·항공주에 투자한 것이 패착이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크게 반등할 것이란 예상에 베팅했지만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으로 1000만원(이자율 5.56%)을 빌려 ‘물타기(추가매수)’를 했지만 속수무책. 그의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김씨가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4000만원에 달했지만 투자금은 갈수록 부족해졌다.

그때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증권사가 빌려준 돈으로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융자’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담보로 잡을 수 있는 투자금(순자산)만 있으면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김씨는 신용거래를 통해 코로나19와 제약, 상장이슈가 있었던 종목에 각각 2500만원(총 5000만원)씩 투자했다. 하지만 단기매매로 대응한 것이 화를 불렀다. 더 오를 거란 생각에 사들인 주식이 하락하며 손실을 키웠고, 김씨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신용거래 1000만원을 더 투자했다.

그렇게 김씨의 신용거래 금액은 눈 깜짝할 사이에 6000만원(이자율 9.5%)으로 늘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증권사가 정한 최저담보비율 140%를 밑도는 일이 발생했다. 약간은 낯선 최저담보비율에서 파생된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김씨는 은행에서 빌린 4000만원과 신용거래 6000만원 총 1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에 실패하면서 주식 평가액은 8300만원으로 감소했다.

신용거래로 6000만원을 빌렸다는 걸 감안하면 주식가치 대비 담보비율이 138.3% (주식평가액 8300만원÷신용거래액 6000만원×100)로 떨어졌다. 증권사의 반대매매 기준인 140%를 밑돌게 된 셈이다. [※참고 : 증권사는 최저담보비율이 140% 아래로 떨어지면 고객이 신용거래로 매입한 주식을 되파는 반대매매를 통해 대출을 회수한다. 증권사에 원금손실 위험이 없는 이유다. 하지만 투자자는 신용거래로 발생한 빚과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김씨는 최저담보비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에서 비상금대출 300만원(이자율 4.0%)을 추가로 받았다. 무리한 ‘빚투’가 김씨에게 남긴 건 마이너스 수익률과 매월 갚아야 할 이자 59만1000원(신용대출 6만원+마이너스통장 4만6000원+신용거래 47만5000원+비상금통장 1만원)이 전부였다.

가파르게 늘어난 ‘빚투’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타면서 ‘빚투(빚내서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월 24일 기준 신용거래융자잔고는 15조726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 8조3862억원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신용거래융자의 가파른 증가세에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용거래융자는 레버리지 효과로 큰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이지만 주가가 반대로 흐르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어서다. 증권사에서 1000만원을 빌려 매입한 주식의 가치가 500만원으로 하락하면 갚아야 할 돈이 1500만원으로 늘어난다.

저금리 시기와 달리 높은 이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신용거래 이자율은 기간과 등급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부분 6~10%로 매우 높다. 8월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2.3%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2.6~4.3배 높은 수준이다. 증권사가 신용거래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조달비용, 관리비용, 업무원가 등이 은행과 달라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시장금리와 증권사 신용거래 이자율을 단순히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빚투’로 늘어난 신용거래융자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 최근 주요 증권사가 신용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증권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안이었다. 투자자의 신용거래를 억제할 수 있는 규제는 최소담보비율 140% 규정이 유일하다.

증권사는 신용거래를 이용할 수 없는 고객으로 미성년자·재외국인·외국인·법인 등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투자자의 신용과 관련한 사항은 ‘신용연체정보가 등록된 고객’이 전부다. 연체 기록만 없다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증권사의 신용거래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산의 출처도 중요하지 않다. 고객 자산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라도 신용거래는 가능하다. 빚으로 또 다른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용거래를 실행할 때 투자자의 신용등급은 확인하지 않고 있다”며 “증권사 계좌의 순자산액이 100만원 이상이면 신용거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의 순자산이 대출 등을 통해 마련한 것인지, 여유자금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며 “신용거래 계좌 개설 단계에서 신용거래의 특징과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권사의 말을 믿기엔 한계가 있다. ‘빚투’ 증가세가 가파른 상황에서도 신용거래 이자율을 낮추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리크스를 부추기는 영업에 나선 증권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어제오늘의 일인 것도 아니다.


신용등급 상관없는 신용거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금융투자협회가 신용등급에 따른 신용거래 제한을 권고했지만 이를 따른 증권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정부의 노력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8월 담보자산별로 신용공여 담보비율을 달리하는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신용거래가 투자자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방관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신용거래의 가이드라인과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벌고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적인 금융회사와 투자자에게 맡겨두면 ‘빚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