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중단에 생계 막막한 자영업자
오락가락 정부지침에 깊어지는 시름
실직자 신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도 코로나19 확산세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도 코로나19 확산세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8월 16일 정부는 서울과 경기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코로나19 재확산세가 극심해진 데 따른 조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3일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자, 이번엔 수도권 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5단계로 다시 한 번 상향조정했다.

문제는 잇따른 강화 지침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취약계층인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할 만한 이렇다 할 대책도 마련되고 있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난 8월 20일, 수백여 기업이 입주해 있는 영등포구 소재 한 산업단지. 점심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 분주해야 할 지하식당가가 한적하다. 군데군데 불이 꺼져 있어 쓸쓸한 기운마저 감돈다. 문이 굳게 닫힌 어느 식당의 입구엔 다음과 같은 알림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금일 영업을 중단합니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선 8월 1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기존 1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됐다. 전날 열린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30~40명대에 머물러 있던 일일 확진자 수가 8월 13일 100명대를 훌쩍 넘겼다. 

이튿날엔 166명, 15일엔 279명으로 치솟았다. 거리두기 2단계 조정은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실내에선 50인 이상, 실외에선 10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다. 고위험시설로 분류되는 12종에 해당하는 사업장도 문을 닫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하면서 고위험시설 12종의 영업이 중단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하면서 고위험시설 12종의 영업이 중단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2종의 고위험시설엔 ▲유흥주점 ▲콜라텍 ▲단란주점 ▲감성주점 ▲헌팅포차 ▲노래연습장 ▲실내 스탠딩 공연장 ▲실내집단운동 ▲뷔페 ▲PC방 ▲직접판매홍보관 ▲300인 이상 학원이 포함돼 있다. 앞서 말한 산업단지 내 지하식당가에 일부 식당들이 영업을 중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 : 정부의 지침에 따라 8월 30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2.5단계로 상향조정됐다. 이에 따라 프랜차이즈형 카페에선 포장ㆍ배달만 가능하고, 음식점도 오후 9시부터 오전 5시까지는 포장ㆍ배달만 가능하다. 본 기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되기 전인 8월 28일 작성됐다.] 

문제는 거리두기 2단계 발동에 따른 경제적 피해다. 이 피해는 한국 경제의 밑단을 받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영업중단 처분을 받은 곳 가운데 “당장 영업을 못하면 생계가 막막하다”며 근심에 빠진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뷔페를 운영하다 정부 지침 이후 영업을 중단한 김영근(가명ㆍ53)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일이라지만 밥줄이 끊긴 입장에선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코로나 사태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마저 막히면 수입이 전혀 없어 매우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밥벌이가 끊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비용 문제다. 들어오는 돈이 끊겼다고 나갈 돈마저 끊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재료비를 제외하고 임대료ㆍ인건비ㆍ관리비ㆍ세금 등으로 나가는 돈만 월 3000만원이다. 쉬지 않고 하루에 100만원씩 마진을 남겨야 겨우 본전을 챙길 수 있다. 

일주일간 문을 닫으면 하루 130만원, 보름을 닫으면 하루 200만원의 이익을 내야 한다. 문을 닫기 전 김씨가 하루에 올린 매출은 180만~220만원꼴이다. 영업을 중단한 지 벌써 2주일가량 됐으니 이번 달 수입은 마이너스가 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남편이 은퇴한 이후 사실상 가장 역할을 맡고 있는 방문판매사업자 정미경(가명ㆍ62)씨도 최근 한숨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이후 손발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판사업이 요주의 대상으로 떠올랐는데, 이번에 직접판매홍보관까지 출입이 막혔다.

정씨는 “코로나 때문에 고객들이 집으로 오는 걸 꺼리니까 회사에 있는 쇼룸(직접판매홍보관)에서 미팅을 했는데, 구청에서 집합하지 말라며 경고를 줬다”면서 “출근도 못하고 손님 응대도 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자영업자의 수입이 없어진 건 큰 문제다. 하지만 그들이 시름에 빠진 게 그 때문만은 아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지침에 더 힘이 빠진다”고 한탄하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영등포구에 있는 산업단지 내 지하식당가에서 한식뷔페를 운영 중인 박수진(가명ㆍ48)씨의 한탄을 들어보자. “2주만 영업을 중단하면 된다고 했던 구청 직원이 5일 만에 ‘정해진 기간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한번은 음식을 모두 준비해놓고 장사를 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박씨에 따르면 구청은 처음에 “1회용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자리 건너 한자리씩 앉히면 (뷔페도) 영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박씨가 영업 준비를 마치자, 돌연 “그렇게 해도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어쩔 수 없이 박씨는 준비했던 음식을 모두 폐기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뷔페는 금지했지만 ‘셀프바’나 ‘샐러드바’는 규제하지 않았다. 박씨는 “뷔페와 셀프바 모두 손님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 먹는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는데, 뷔페는 금지하고 셀프바는 허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구청마다 하는 말이 다르고 기준이 달랐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업종을 바꾸면 될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실제로 서울시청 측도 ‘업체가 직접 음식을 서빙하면 괜찮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뷔페를 직원이 서빙하는 방식으로 바꾸려면 도구를 바꿔야 하고, 홀서빙 인력도 충원해야 한다. 코로나19 정국이 어떻게 바뀔지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위험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이후 밥줄이 끊긴 건 자영업자들만이 아니다. 고위험시설뿐만 아니라 공연장ㆍ예식장 등 영업에 차질이 생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일거리를 잃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휴직기간 임금의 일부를 받거나, 영업이 재개된 뒤 복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됐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다시 나쁜 변수가 될 수 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직원이 이탈하는 것도 자영업자 입장에선 큰 손실이라서다. 자영업자 김영근씨는 “직원들도 오래 쉬는 건 큰 부담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새로운 사람을 뽑아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도 버겁고,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무작정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처음엔 무급휴직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임금의 50%라도 드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6일엔 일일 확진자 수가 441명에 육박했다. 400명을 넘어선 건 지난 3월 7일 이후 처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시행여부가 논의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3단계에 돌입하면 1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고, 카페ㆍ멀티방ㆍ영화관ㆍ오락실 등 중위험시설도 영업이 중단된다. 

정부 지침에 따라 휴업에 들어간 자영업자가 늘면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증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지침에 따라 휴업에 들어간 자영업자가 늘면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증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연히 취약계층인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최악의 경우다. 더 많은 자영업자의 생계가 위협받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부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3단계에 돌입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쏟아진다. 

십수년째 노래방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 이은숙(가명ㆍ65)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지원도 없고,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에선 무작정 협조하라고 한다. 2단계 격상 이후 일부 사업장이 문을 닫으니 남은 가게에 사람이 몰리면서 되레 더 위험해졌다. 차라리 3단계로 가는 게 속 편하다. 하루빨리 코로나 확산세를 진정시켜서 영업을 재개하는 게 더 낫다.”

아이러니하지만 한편으론 현실적인 말이다. 자영업자가 처한 현주소가 그만큼 힘들고 암울하다는 얘기라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절규가 서글프게 들리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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