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줄이자는 건지
인센티브 더 받겠다는 건지

배출권거래법 제정의 취지는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러려면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느냐에 따라 기업별로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권을 얼마나 할당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할당량을 공개할 의무가 없어서다. 기업들의 초점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값싸게 배출권을 사는 데에 맞춰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게 옳은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법에 숨은 허점을 취재했다. 

배출권거래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리 줄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배출권거래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리 줄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환경부가 배출권거래법(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정책도 상당 부분 달라지게 됐다.  주요 개정 내용은 크게 네가지다. 환경부는 먼저 배출권을 무상할당할 업종이나 업체의 기준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체에는 책임성을 강화하는 한편, 국민 생활과 밀접한 기관(지방자치단체ㆍ학교ㆍ의료기관ㆍ대중교통 운영자 등)에는 배출권을 전부 무상할당하도록 했다. 

둘째, 무상할당 업종은 줄였다. 그동안 환경부는 ‘탄소누출(온실가스 배출권 비용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규제가 적은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상할당 업종을 선정해 비용을 면제해줬다.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에는 62개 업종 중 36개 업종이 무상할당을 받았다. 내년에 시작하는 3차 계획기간(2021~2023년)엔 69개 업종 중 29개 업종만 무상할당을 받는다. 7개가 줄어든 건데, 여기엔 자동차 업종도 포함돼 있다. 

셋째, 배출권 할당 단위가 ‘시설’에서 ‘사업장’으로 변경됐다. 종전에는 사업장에서 기존 시설을 온실가스 저감시설로 교체하면 기존 설비에 할당된 배출권을 취소하고, 신규 배출권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게다가 신규 배출권이 할당되다 보니 업체의 감축 노력에도 할당량이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번 할당 단위 변경을 통해 절차도 간소화하고, 불합리한 상황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끝으로 배출권 거래 중개회사(증권사 등)도 배출권 거래를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종전에는 할당대상업체와 정부가 지정한 배출권 시장조성자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고, 3자 거래는 금지해왔다. 그런데 거래 주체가 많지 않고, 수급불균형 등 시장 유동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활성화 방안을 꺼내 들었다. 종합하면 환경부가 현실에 맞게 시행령을 적절히 손봤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게 있다. 환경부가 배출권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원론적으로 보면 배출권거래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배출권거래법이 만들어진 취지는 뭘까. 

배출권거래법의 목적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장 기능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환경부가 배출권을 유상할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출권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한 목적은 환경부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이재 기후경제과장의 말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감축 압력이 높아지는 만큼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을 활용한 지원사업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기업별 할당량만 비공개

문제는 배출권거래법 시행령이 배출권거래법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명확해야 한다. 환경부가 기본적으로 유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하는 건 페널티의 일종이다.

또한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적용하기 위해선 어느 기업이 얼마만큼의 배출권을 할당받았는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 할당량을 넘겨 배출권을 얼마나 사들였는지 등이 공개돼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공개하는 자료 어디에도 어떤 기업이 배출권을 얼마나 할당을 받았는지 나오지 않는다. 공개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이이의 구민회 변호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는 “온실가스 할당량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을 비교할 수 없다”면서 “결국 배출권거래법의 애초 목적이 달성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구 변호사는 “환경부가 시행령만 바꿔도 무엇을 공개할지 정할 수 있는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 문제”라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건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따라 발전소들이 유연탄 사용을 줄여서다.[사진=뉴시스]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건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따라 발전소들이 유연탄 사용을 줄여서다.[사진=뉴시스]

어쩌면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2015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눈에 띄게 줄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실제로 배출권 할당대상업체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5억4270만톤(t)에서 2018년 6억150만t으로 되레 10.5% 늘었다. 2019년에는 전년 대비 2.0% 줄어든 5억8941만t을 기록했는데, 그럼에도 2015년보단 늘어난 수치다.

더구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이유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라기보다는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따른 결과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크게 감소한 업종은 발전에너지업종이었는데, 이는 발전소 가동률 감소와 연료 전환(유연탄→액화천연가스)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구민회 변호사는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이 주요 목적이 돼야지, 거래 활성화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기업별 할당량이 공개돼야 할당량이 적절히 배분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진짜 감축을 하는 곳과 배출권을 사서 목표치를 채우는 곳을 구별할 수 있다. 그래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고작 시행령 개정이 전부다. 그걸 하지 않고서 온실가스 감축이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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