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석유중간제품 면세 요구 논란

코로나19 탓에 수요는 줄고, 정제마진은 연초 대비 77% 줄었다. 올해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36.9%(수출액 기준) 감소했다. 이 때문인지 올 1분기엔 5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정유4사의 암울한 현주소다. 그러자 정유업계가 석유중간제품 면세(개별소비세 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타당한 요구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유4사의 석유중간제품 면세요구 논란을 취재했다. 

정유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유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유업계의 한숨이 깊다. 실적부터 엉망이다. 올해 상반기 정유4사(SK이노베이션ㆍGS칼텍스ㆍ에쓰오일ㆍ현대오일뱅크)는 총 5조10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분기 영업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악재는 국제유가였다. 연초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4월 중순에 역대 최저인 1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고, 정유사들의 재고평가 손실(앞서 매입한 원유의 가치하락)이 커졌다. 결국 정유4사는 1분기에만 총 4조377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에 따라 올해 정유업계 영업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업계만의 일은 아니다. 엑손모빌(미국), 셰브론(미국), BP(영국), 로열더치셸(영국ㆍ네덜란드), 토탈(프랑스) 등 5대 석유메이저들의 1분기 총 순이익은 85억 달러로 전년 동기(155억 달러)보다 45.2% 줄었다. 이 가운데 셰브론만 순이익이 늘었는데, 그 이유는 해외자산 매각과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이었다. 셰브론 역시 안심할 상황이 아니란 거다. 

특히 엑손모빌의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9년 엑손과 모빌의 합병 이후 처음으로 분기 단위 순손실(약 6억1000만 달러)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미국 다우존스 30개 종목에서도 제외됐다. 일부에선 “석유시대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정유업황이 회복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정유4사 중 3곳은 2분기에도 총 737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오일뱅크만이 흑자(132억원) 전환에 성공했다. 국제유가가 4월 바닥을 친 이후 배럴당 40달러대로 안정화되면서 재고평가 손실이 줄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와 정제마진 하락 등이 실적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 큰 문제는 정유업계의 악재들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 올해 1~6월 석유제품(HS코드 2710 기준) 수출물량은 3040만9464톤(t)으로 전년 동기(3221만3073t)보다 5.6% 줄었고, 금액으로는 192억9707만 달러에서 121억7406만 달러로 크게 줄었다.

수요가 늘어나지 않으니 정제마진이 좋을 리 없다. 올해 초 배럴당 7.4달러였던 평균 복합정제마진은 8월 3주차 기준 1.7달러까지 내려와 있는 상태다. 일반적으로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이 돼야 정유사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코로나19에 회복 더딜 듯

또 다른 악재는 불투명한 감산 합의다. 주요 산유국들은 감산 합의를 통해 국제유가를 떠받치고 있지만, 이런 합의가 얼마나 더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도 합의가 지켜진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합의를 잘 지키면 손해, 안 지키면 이득을 보는 경우가 숱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수요 위축 가능성을 감안하면, 유가와 정제마진 회복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오일뱅크는 남미산 초중질유를 들여와 이익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사진=뉴시스]
현대오일뱅크는 남미산 초중질유를 들여와 이익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정유업계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설득력이 없는 행위는 아니다. 정유업계의 요구는 세금납부기한 추가유예와 석유중간제품의 면세 등 두가지다. 우선 세금납부기한 추가유예는 선례가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정유사들이 부담하는 4~6월분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의 징수를 7~9월로 유예한 바 있다. 정유4사가 부담하는 석유수입ㆍ판매부과금은 월 1조4000억원 수준이다. 세금부담이 큰 만큼 징수를 한번 더 유예해 달라는 거다. 

문제는 석유중간제품 면세 요구다. 석유중간제품이란 ‘석유제품 생산공정의 원료용으로 투입되는 잔사유’를 말한다. 부가가치가 낮은 중질유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행 개별소비세법에 따르면 석유중간제품은 리터(L)당 17원의 개별소비세가 붙는다. 조건부 면세를 적용받는 석유제품은 의료용ㆍ의약품제조용ㆍ비료제조용ㆍ농약제조용ㆍ석유화학공업용 원료 등에 한정돼 있다. 석유제품의 원료는 면세 대상이 아닌 셈이다.

정유업계가 2014년부터 생산공정용 석유중간제품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조건부로 면세해 달라고 건의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은 중질유에 과세를 하지 않거나 석유제품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석유중간제품의 면세를 요구하는 건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실제로 정유업계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엔 석유중간제품이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중간제품을 고도화설비로 정제하면 프로필렌이나 휘발유를 뽑아낼 수 있고, 국내 정유사들은 상당한 수준의 고도화설비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정제마진이 좋지 않을 때는 원유보다 중간제품을 쓰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럽연합(EU) 등에 속한 주요 66개국 중 우리나라만 석유중간제품에 과세를 하고 있으니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석유중간제품 면세가 답일까


하지만 정유사의 석유중간제품 면세 요구를 들어줬을 경우 발생할 부정적 파급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석유중간제품도 원유나 다름없다. 따라서 석유중간제품에 붙던 개별소비세가 사라지면 정유사들의 원료 선택폭이 넓어져 특정 제품을 수입할 가능성이 생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개소세가 붙지 않는다고 석유중간제품을 무한정 투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면서 “최대 4% 안팎만 투입할 수 있어서 석유제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반박했다. 

따져봐야 할 부정적 효과는 또 있다. 정유업계의 볼멘소리가 국민 정서와 괴리감이 있다는 점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가 경기가 어려울 땐 정부에 손을 내민다는 지적이 적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7월 30일 생산공정용 중질유에 대해 조건부 면세하는 내용을 담은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할 점도, 따져봐야 할 점도 숱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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