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재무설계 中

“나중에 전부 돌려받을 수 있다.” 보험설계사들이 종종 사용하는 ‘유혹적인 말’이다.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데, 납입금마저 사라지지 않는다면 고객 입장에서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런 보험 중엔 필수보장항목이 교묘하게 빠진 경우가 숱하다. 비싼 돈을 내지만 정작 사고에 대비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한국경제교육원㈜이 한 부부의 보험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보험에 가입할 땐 보장항목을 꼼꼼히 따지는 게 좋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험에 가입할 땐 보장항목을 꼼꼼히 따지는 게 좋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내년 월급이 삭감될지 모른다는 소식을 들은 한명훈(가명·35)씨와 그의 아내 차수현(가명·36)씨. 내년 이야기지만 두 사람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한씨만 일을 하는 외벌이 부부인지라 연봉이 줄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부부를 괴롭혔다. 아내 차씨가 요새 아르바이트 전단지에 부쩍 눈길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부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거리도 숱했다. 대표적인 건 집 문제였다. 부부는 자가 아파트(경기도 오산·2억1000만원)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택담보대출(총 1억3000만원)을 끼고 산 탓에 매월 80만원을 원리금으로 내야 했다.

대출금을 다 갚고 나면 ‘내집’이 마련된다고는 하지만, 대출금이 빠져나갈 때마다 앞자리가 바뀌는 통장 잔액을 볼 때면 한숨부터 나왔다. 교통편이 불편한 시외지역임에도 예전보다 주택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이 부부에겐 그나마 위안거리다.

문제는 부부가 내집 외에 준비해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상담에서 부부의 가계부를 조사한 결과, 부부는 저축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별도의 재테크나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5년 후면 부부는 40대에 접어든다.

이때부턴 본격적으로 퇴직 후 삶에 신경 써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준비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게 부부의 소득은 월 410만원(남편 390만원+아동수당 20만원)이지만 매월 54만원씩 적자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는 상여금(연 500만원)으로 메우고 있었다.

일단 부부의 재무 목표부터 세워보기로 했다. 부부는 대출 상환→목돈 만들기→자녀 교육비 마련 순으로 목표를 정했다. 대출금을 빨리 먼저 갚아야 다른 지출에도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길 거란 판단에서다. 1차 상담에서 식비(25만원), 통신비(6만원), 용돈(15만원) 등 46만원을 절감해 54만원 적자를 8만원까지 줄였지만 부부의 재무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지출을 줄여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씨 부부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먼저 월 75만원씩 지출하는 보험료를 살펴봤다. 한씨 부부는 남들에 비해 꽤 많은 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먼저 한씨의 보험료는 변액CI종신보험(21만원)·암보험(4만원)·치아보험(6만원)·화재보험(2만원)·운전자보험(5만원) 등 38만원이다. 차씨는 18만원짜리 변액유니버설보험과 실손보험(5만원)에 가입했다. 이밖에 두 아들에게 각각 7만원짜리 자녀보험을 들었다.

먼저 한씨의 보험을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에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암보험·운전자보험 등 살면서 하나쯤 필요한 보험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보험이 보장하는 위험이 한씨에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해당 보험이 보장하는 사고나 재해·질병의 발생률을 적절히 고려해 보험상품에 가입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씨의 경우엔 21만원짜리 종신보험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나름 건강에 자신 있는 한씨는 사망 후 납입한 보험료를 다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해당 보험에 가입했다. 한씨가 가입한 보험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주 계약금의 일정비율(50~80%)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치명적인 질병이란 중대한 암·뇌졸중·급성심근경색과 말기 신부전증, 말기 간질환 등이다.

문제는 한씨에게 불리해 보이는 보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암의 경우 가장 치명적인 악성흑색종은 보장항목에서 제외돼 있었다. 뇌질환에도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조건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이 보험은 ‘중대한 뇌졸중’만을 보장하는데, 여기서 중대한 뇌졸중은 신경이 영구적으로 결손돼 혼자서 걷는 게 힘들고 다리를 저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를 의미한다.

한씨의 보험을 통해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벼운 뇌졸중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심장질환 보장도 마찬가지다. 허혈성심장질환이 급성심근경색보다 발병률이 높지만 이 보험에선 급성심근경색만 보장하고 있었다. 차씨의 변액유니버설보험(18만원)도 한씨의 종신보험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부부는 종신보험과 변액보험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보험료는 75만원에서 36만원으로 39만원 줄어들었고 부부는 450만원의 해지환급금을 받았다.

다음은 신용카드 할부금(15만원)이다. 부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집에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사들이면서 할부금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할부금은 가급적 빨리 갚는 게 좋다. 그대로 두면 월 고정지출로 인식해 할부금을 다 갚은 뒤에도 또다시 해당금액만큼 지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부부는 앞서 받은 해지환급금 중 일부(75만원)를 사용해 할부금을 모두 갚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신용카드 할부금은 앞으로 가계부에서 제외된다.

마지막으로 식비(100만원)를 한번 더 살펴봤다. 성장기 자녀를 둔 4인 가구치고 그리 많은 지출액은 아니지만, 좀 더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평소 차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대량으로 식재료를 사다가 한꺼번에 많은 반찬을 만들곤 했다.

이렇다 보니 제때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음식물이 적지 않았다. 조금 힘들더라도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소량으로 식재료를 구입해 필요할 때에만 조리하기로 했다. 부득이할 경우엔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식비를 줄이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씨 부부는 식비를 100만원에서 80만원으로 20만원 더 줄여보기로 결정했다.

2차 재무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보험료(39만원), 신용카드 할부금(15만원), 식비(20만원) 등 74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8만원 적자였던 부부 가계부도 66만원 흑자로 돌아섰다. 주택담보대출금(80만원) 같은 고정지출이 있다 보니 한씨 부부는 다른 상담자들처럼 몇백만원씩 저축여력이 생기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진 못했다. 부족분은 차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차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벌어질 일들이다. 자녀들을 돌볼 시간이 부족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따로 학원을 보내거나 부모님께 맡겨야 한다. 자연히 그에 따른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또 66만원으로 어떻게 효과적인 재무설계를 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자세한 방법은 다음 시간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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