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피해 갈수록 커지는데…
풍수해보험 가입률
턱없이 낮은 이유

54일간 이어진 장마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수마水魔로 입은 피해가 작지 않아서다. 문제는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정부정책 보험인 풍수해보험의 가입률이 0.37%(8월 11일 기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홍보 부족, 판매사의 무관심, 가입대상의 인식 부족, 정책보험의 한계 등으로 인해 보험 가입률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소상공인의 풍수해보험 가입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풍수해보험의 가입률이 턱없이 낮은 이유를 취재했다. 

자연재해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풍수해보험이 있지만 소상공인의 가입률은 매우 낮다.[사진=연합뉴스] 

2002년 태풍 ‘루사’ 5조1479억원, 2003년 태풍 ‘매미’ 4조2225억원, 2006년 태풍 ‘에위니아’ 1조8344억원.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기상재해 순위 1~3위의 피해 규모다. 언뜻 봐도 피해 금액이 상당하다. 심각한 재해만 그런 것도 아니다. 2016년 경주지진과 2017년 포항지진의 피해액은 각각 110억원, 551억원에 이른다.

올해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54일간 이어진 장마도 큰 피해를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3년 이후 최장기간을 기록한 장마 탓인지 38명이 사망하는 등 총 5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전국 5551세대, 9834명을 기록했다. 시설피해 건수는 4만9321건에 달했다(행안부 8월 24일 집계 기준).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올여름 장마로 1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처럼 집중호우와 태풍이 함께 발생했던 2011년과 2012년의 피해액이 각각 7303억원, 1조134억원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충분한 분석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에 수해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8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체감경기지수(BSI)는 각각 67.6, 49.2를 기록했다(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아졌고, 100 미만이면 악화했다고 보는 소상공인이 많다는 의미).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던 2월(전통시장 23.9)과 3월(소상공인 29.7) 이후 최저치다.

코로나19에 수해까지…


관련 조사가 매월 18~22일 이뤄진다는 걸 감안하면 장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참고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 적용된 것은 8월 23일이다.] 이 때문인지 자연재해를 입은 소상공인의 지원을 위해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로 인한 소비침체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자연재해 피해는 보상받을 방안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보험인 ‘풍수해보험’을 통해서다. 2008년 도입된 풍수해보험은 지진·태풍·홍수·호우·강풍·풍랑·해일·대설 등으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해준다.

가입 대상은 주택과 온실(비닐하우스)이었는데, 2018년 시범사업(전국 22개 시·군·구)을 통해 소상공인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시행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상가(시설·집계 비품 포함)는 최대 1억원, 재고자산은 5000만원 한도에서 실손보상 받을 수 있다. 소유자나 세입자 모두 가입이 가능하다.


지자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험료의 59~92%를 정부가 지원한다. 보험료 부담은 과하지 않다. 행안부에 따르면 상가를 빌려 장사하는 소상공인의 보험료 부담은 연간 2만9000원 수준이다. 상가 소유자도 연 5만3000원을 부담하면 풍수해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소상공인의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저조하다. 8월 11일 기준 풍수해보험에 가입한 소상공인은 5482명이었다. 보험가입 대상 소상공인(전국 144만6000명)의 0.37%에 불과한 수치다. 2018년 주택(단독주택)의 풍수해보험 가입률이 20.2%였다는 걸 감안하면 저조한 성적표라는 것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상공인의 풍수해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풍수해보험이 소멸성 보험이라는 특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풍수해보험은 피해를 당하지 않으면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하는 자동차 보험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소상공인으로선 어렵게 낸 보험료가 날아갈 수 있다고 우려할 만하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보험료를 부담할 소상공인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재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재난지원금도 보험 가입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다. 일례로 자연재난으로 주택이 모두 파손되면 실거주 가구당 1600만원, 침수가 발생하면 가구당 2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굳이 보험료를 내는 풍수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보상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조한 풍수해보험 가입률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니 굳이 풍수해보험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며 “풍수해보험에 가입해 보상을 받을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보험 가입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풍수해보험 가입률이 낮다는 지적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그때마다 보험료 지원을 확대하고, 현장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지자체·민간단체와 협업을 통해 가입률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가입률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풍수해보험을 몰라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소상공인도 적지 않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의 홍보 부족으로 풍수해보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소상공인이 많다”고 꼬집었다. 보험사들이 통상 정책성 보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풍수해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삼성화재보험·현대해상화재보험·DB손해보험·KB손해보험·NH농협손해보험)는 이구동성으로 ‘정책성 보험은 한계가 많다’고 항변한다.

보험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자연재해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풍수해보험의 손해율을 관리하는 건 쉽지 않다. 올해처럼 풍수해가 많이 발생하면 손해율과 보험요율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변동성이 큰 상품이라 무턱대고 보험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리스크를 따져봐야 한다는 거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보험사의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크게 남는 게 없는 정책성 보험에 신경을 쓰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방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풍수해보험을 자동차보험과 같은 강제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수해보험은 가입자의 의사에 따라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임의보험이다. 기상이변으로 자연재해의 발생 횟수가 늘어가고, 이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가입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풍수해 피해자 잦은 지역에서라도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성 보험의 한계

익명을 요구한 보험학과 교수는 “임의보험인 풍수해보험의 판매를 보험사에 맡긴 것 자체가 문제”라며 “보험사 입장에선 큰 메리트가 없는 풍수해보험 판매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습 풍수해 피해지역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거나 보험 갱신 시 보상 여부에 따라 보험료 일부를 환급하거나 할인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소상공인 풍수해보험의 담당 부서를 행안부가 아닌 소상공인 지원부서인 중소기업중앙회로 이관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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