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방역수칙 기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의 핵심은 ‘사람들이 밀집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하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업종의 영업을 제한한 이유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터디카페는 문을 닫았는데, 룸카페는 버젓이 영업 중이다. 뷔페는 안 되는데 셀프바는 된다. 대체 무슨 기준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일관성 없는 방역수칙의 기준을 꼬집어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이후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실 수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이후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실 수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중국 송나라 유학자 육상산의 말로,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 얼마 전 김부겸 전 장관이 ‘2차 재난지원금’ 문제를 논하며 언급한 적 있는 이 말은 주로 정치권에서 인용된다. 정치 분야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박탈감을 경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명확한 ‘기준’이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기준이 없으면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정치적 사안을 두고 국민들이 반발했던 이슈 가운데선 공정성을 담보할 만한 확실한 기준이 없었던 경우가 많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도 마찬가지다. 납득할 만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은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인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와 직결돼 있어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부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잇따라 강화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린 탓이었다. 지난 8월 16일 서울과 경기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한 데 이어 19일엔 2단계 방역조치를 더욱 강화했다. 23일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래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30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5단계로 다시 한번 상향조정했다. 

정부의 강화된 방역수칙엔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몰리는 걸 막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겼다. 방역수칙 내용이 주로 많은 사람이 몰릴 수 있는 사업장의 영업을 제한하는 데 집중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선 ▲실내 스탠딩 공연장 ▲PC방 ▲뷔페 ▲직접판매홍보관 ▲대형학원(300명 이상) 등 고위험시설 12종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2.5단계에선 영업을 제한하는 사업장의 범위를 넓혔다. 가령, 프랜차이즈 카페는 매장 이용을 금지하고, 음식점도 오후 9시부터 오전 5시까진 포장ㆍ배달만 허용했다. 300명 이상 대형학원만 제한했던 방역수칙도 10명 이상 300명 미만 학원까지 확대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자영업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영업을 못해 생계가 막막해졌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방역수칙의 애매한 기준이 자영업자들의 좌절감을 더 키웠다. 프랜차이즈 카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매장 이용을 제한하면서 손님이 뚝 끊겼고, 매출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면서 “그런데 다른 카페들을 보면 버젓이 운영 중인 곳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수칙에서 제한하고 있는 사업장이 ‘프랜차이즈형 카페’에만 국한해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카페는 정상 영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실상 카페나 다름없는 유사 사업장(패스트푸드점 등)도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이상한 기준은 또 있다. 스터디카페와 독서실은 집합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룸카페ㆍ방탈출카페ㆍ만화카페 등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또한, 뷔페는 고위험시설로 분류돼 문을 닫았지만 출장 뷔페와 ‘손님이 음식을 직접 가져다 먹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셀프바는 서비스가 지속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만이 아니다. 일반 학원은 대면 수업이 금지됐지만, 운전면허학원은 수업이 가능하다. [※참고 : 정부는 지난 4일 추가 지침을 내려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프랜차이즈형 제과점ㆍ빙수점ㆍ아이스크림점도 집합금지 업종에 포함했다. 하지만 나머지 업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런 기준 없이 방역수칙을 만든 건 아니다. 방역수칙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설명에 따르면 나름의 기준이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모든 업종과 모든 사업장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다 보니, 위험성이 높은 곳부터 관계부처와 지자체 협의 하에 결정한다”면서 “특히 접근성과 밀집도, 활동도(비말 발생 가능성) 등이 높은 곳부터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의 설명을 십분 감안해 접근성ㆍ밀집도ㆍ활동도 등으로 위험성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의문이 남는다. 이 기준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느냐는 점이다. 가령,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하더라도 가맹점 수가 10개 미만에 불과한 소규모 프랜차이즈는 영업이 제한되고 있다. 반면 일반 카페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밀집도가 높은데도 정상영업이 가능한 곳이 숱하다. 

어설프게 적용된 기준 탓에 뒤늦게 지적을 받고 방역수칙이 조정되거나 혼선을 빚는 일도 다반사다. 일례로 광주광역시는 처음엔 지하에 있는 목욕탕ㆍ사우나ㆍ멀티방ㆍDVD방만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가 반발을 산 이후에야 지상에 있는 시설까지 영업중단 조치를 취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편의점 내 취식 문제를 둘러싸고 혼선을 빚기도 했다. 당초 정부는 오후 9시 이후엔 ‘편의점 내에서 조리된 음식(치킨ㆍ어묵 등)을 취식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전자레인지나 온수를 이용해 조리하는 제품(컵라면ㆍ김밥 등)을 먹는 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 말은 달랐다. 오후 9시 이후 야간 취식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거였다. 

문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기준에 눈물 흘리는 건 결국 벼랑 끝까지 내몰린 자영업자들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라 업종 변경을 고려하고 있지만 방역수칙이 언제 바뀔지 몰라 걱정된다는 자영업자들도 적지 않다. 

소규모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철(가명ㆍ37)씨는 “교습소를 운영하다가 몇년 전 규모를 키워 학원으로 업종을 변경했는데, 수업이 중단된 이후엔 다시 교습소(9인 이하)로 업종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다”고 한탄했다.  

일부에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자영업자들의 사정을 일일이 헤아리기보다는 방역을 우선해야 할 때”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방역수칙에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겠다’는 본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뷔페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영업제한 조치를 피한 카페와 음식점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그 가게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문을 열어도 걱정, 문을 닫아도 걱정이란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방역 사각지대를 막고, 일부 자영업자에게만 가해지는 불합리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국민이 분노하는 건 불공정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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