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 원칙 잃고 우왕좌왕 2차 재난지원금

청와대와 여당은 통신비 지원금액을 9200억원을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큰돈’이다.[사진=연합뉴스]
청와대와 여당은 통신비 지원금액을 9200억원을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큰돈’이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의 경제충격이 심각하다. 2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자 폐업이 속출한다. 일용직과 상용직을 가리지 않고 해고 바람이 불면서 실업률이 치솟는다. 급기야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래 22년 만의 역성장이 기정사실화했다. 

다급해진 정부가 10일 7조8000억원 규모의 네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짰다. 한 해 네차례 추경 편성은 59년 만이다. 512조3000억원 슈퍼 본예산 외에도 1~4차 추경 규모가 66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추경 가운데 41조7000억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 그 결과 4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가채무는 올해에만 106조원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43.9%로 높아진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상 어려움을 언급하며 코로나 피해가 큰 업종과 직종에 집중하는 맞춤형 재난지원 추경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피해지원 및 저소득층 생계지원, 고용안정과 돌봄지원 등 맞춤형 긴급재난지원 패키지로 명명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생뚱맞은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을 청와대가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한정된 재정 여건 상 피해가 큰 업종과 직종을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선별’ 원칙에 어긋난다.

목적도 석연찮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늘어난 비대면 활동에 따른 통신비 부담을 경감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2분기 전체 통신비 지출은 1년 전보다 2% 감소했다. 다수 이용자가 정액요금제를 쓰고 있어 비대면 상황이라고 통신비 지출이 크게 늘지 않았다.

채택 과정도 즉흥적이다. 앞서 여권은 2차 긴급재난금 지원 범위를 놓고 내부 논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9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간담회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가 될 거라며 통신비 지원을 건의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동의했다. 

정부는 당초 만 35~49세는 제외하는 것으로 발표했다가 민주당 요청으로 하루 만에 전 국민 지원으로 바꿨다. 만 13세 이상 4640만명에게 2만원씩 지원하는 데 예산 9200억원이 소요된다. 

야당들은 진보ㆍ보수 가리지 않고 비판적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포퓰리즘’을 넘어 ‘이낙연 포퓰리즘’이 자라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맥락도 없이 끼어들어간 통신비 2만원 지원 계획은 황당하다”고 했다.

야당들은 대안도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독감 백신을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접종하는 것이 통신비 지원보다 훨씬 필요하고 긴급하다고 제안했다. 정의당은 통신비 지원금액이 시장에 풀리지 않고 통신사에 잠겨 소비진작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원래 정부 방침대로 더 두텁게 지원을 받아야 할 업종과 계층에 쓰라고 주문했다.

시민단체도 나섰다. 납세자연맹은 “코로나로 지친 국민에게 다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래세대를 담보로 1조원 빚을 내는 것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합리적인 비판이자 대안이다.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은 정부여당이 내세운 선별지급 원칙에 위배되고, 피해구제 효과는 더더욱 미지수다. 추석 민심과 내년 서울ㆍ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내후년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 대책, 선별 지급을 반대하는 이들 달래기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통신비 지원금액 9200억원을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효과를 낼 수 있는 ‘큰돈’이다. 가을과 겨울, 코로나와 독감이 겹치는 트윈데믹을 막으려면 독감예방 접종이 긴요하다. 9000억원이면 3만원 안팎인 독감 백신을 국민 3000만명에게 무료로 접종해줄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급증한 실업급여비 한달분(1조원)에 근접한다. 노후 사회간접자본 개선 등 내년도 교통안전 강화 예산(1조원), 정부가 미래 먹거리라며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9년까지 집행하겠다는 연구개발비(1조96억원)와도 맞먹는다. 

더구나 4차 추경은 돌려쓸 돈이 없어 7조8000억원 전부를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해야 한다. 국민의 빚, 미래세대 부담으로 돌아올 나랏돈은 한 푼이라도 꼭 쓸 곳에 써야 한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통신비 지원 예산을 도려내 소상공인 지원한도를 높이거나 근로자 고용 유지 및 안정자금을 늘리는 등 더욱 긴요하게 요구되는 분야로 돌려야 마땅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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